글을 자주 쓰기로 결심한 지 두 달도 안 되어서, 일을 다시 시작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알약 같아서, 잊을 만하면 떠오른다. 물을 목구멍에 넣어 알약 두 개를 삼킨다. 혼자 산지 5년이나 되도록 나는 가장 나에게 무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있기를 거부했다. 바깥의 소리에, 요구에 집중했다. 내가 하는 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을까. 다시 앞에 앉아 두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게 된 것이.
눈만 감으면 무수한 추억들이 나를 반긴다. 무려 수년 전 일임에도 생생한 추억들. 이따금 런던과 뉴욕이 그리우면 표를 끊어 무작정 떠난 날들. 프리랜서 사업자라는 달콤한 핑계로 세계 각지에서 살아본 날들. 코로나 이후 5년은 나에게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안겨준다. 벌써 문 앞에 찾아온 2026년. 모두에게 새해 안부를 전한다. 잘 지내나요, 저도 잘 지내요. 벌써 서른이네요. 서른의 나는 어떤가요. 사십까지 10년밖에 안 남았네요. 그 시간 또한 게 눈 감추듯 시간이라는 작자가 먹어버릴 테지. 그래서 무슨 글을 쓰고 싶냐고 물으면 그냥 적어요. 나를 알기 위해 적어요. 이걸 읽으면서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궁금해할 텐데 그게 핵심이에요.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게 좋아요. 계속 궁금해해 주세요.
새해 계획이란 걸 거창하게 적고 싶다가도 이내 체력에 포기하고 마는 게 서른 살인 건가. 글쎄, 22살이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22살의 나보단 30의 내가 낫긴 해. 8살이라는 차이 아래 얼마나 많은 성장을 했는데 그래.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나를 보살피는 건 왜 나아진 적이 없을까. 이제서야 깨닫는다.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뭘 원하니. 무엇을 좋아하니. 어떤 게 싫을까. 사람은 어떤 사람이 좋니. 너 주변에 한 사람만 남겨둘 수 있다면 그게 누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니. 너의 기준대로 살아 본 적이 있니. 기준이 있긴 하니.
서른, 여름엔 베를린에서 살기로 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오늘 이야기를 꺼냈더니 흔쾌히 좋다는 답변이다. 남은 건 계획뿐이겠지. 우린 서른이고, 그 친구는 서른하나고. 나이는 계속 먹어갈 테고 우리는 체력이 점점 바닥날 테고 이 바닥도 그렇고 그런 바닥이 되겠지. 다시 한번 좋아하는 것에 불태워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다. 체력을 기르고 싶다. 영감을 얻고 싶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 무엇보다도 지금 너랑 미래에 이루어질지도 아닐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계속해서 떠들고 싶다.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잠들어버린 줄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