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3
초등학교 고학년, 야한 장면이 서술된 수위 높은 인터넷 소설이나 아주 전형적인 일본산 AV 같은 것을 돌려보거나 얘기하며 다 같이 성에 눈 뜨던 시기가 있었다. 남자애들 중 짓궂은 몇은 뜬금없이 "섹스!!!"라고 외치고 다 같이 와하하 웃고, 쉬는 시간에 여자애들을 당황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허공에다 대고 험핑 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전혀 부끄럼 없이 폭력적인 농담을 던지던 이십 년 전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성장해 있는지 가끔 궁금하다. 그들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면서 여자를 아끼는 법을 배웠는지, 섹스가 섹스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말이다.
아무튼 나도 그즈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모든 게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는 깊은 기독교 뿌리를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성경 공부를 하고, 수련회를 가고, 찬양팀에 들어가 춤추고 노래하고 또 심지어 그걸 특출 나게 잘해서 교회 어른들한테서 예쁨 받던 아이였다. 거의 청교도스러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많은 기준을 충족시켜야 된다는 무언의 압박 아래서 자랐던 나에게 성에 대한 호기심은 당연히 표출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궁금한 것을 질문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못 받을 것 같은 생각에 지레 접어두는 이유도 컸다.
그래서 나는 그 나이 때의 애들이 그러듯 친구들과 인터넷에 의존했다. 궁금한 건 점심시간에 수다 떨며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 이런저런 키워드를 검색해 보며 성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확장시켜 갔다. 너무 신났어서 그랬는지 아님 인터넷 지식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부모님과 공유하던 컴퓨터에 "누드"라는 키워드를 검색한 기록을 남겨버렸다. 나이가 들고 나도 결혼, 육아에 대한 내 견해가 잡히면서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대비 상황과 설명해 줄 포인트들을 정리해 놓는다 하더라도 정작 그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 부모님도 그랬던 것 같다. 아마 그들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완료되지 않은 대화를 생각보다 일찍, 준비 없이 마주하게 돼서 당혹스러웠겠지. 그래서 그들은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왜 이런 걸 검색했느냐고. 나는 나대로 예상치 못한 대면에 당황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날 공교롭게도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던 둘째 이모는 마구 웃으며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다른 가족들에게 소문내겠다며 놀리며 깔깔댔다. 그날 그 일이 어떻게 일단락됐는지 이후의 일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혼나고 놀림받으며 눈물을 계속 뚝뚝 흘렸던 것 같고, 얼굴이 아주 오랫동안 뜨거웠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도 훈계와 조롱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외가 가족들이 다 알게 될 때까지 그 누구도 나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아님 성교육을 받을 기회라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웃음거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나서의 내 성적 호기심은 금기어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중학교 때부터 혼자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가족들의 간섭을 요리조리 피하며 (혹은 간헐적인 간섭만 받으며) 꽤 독립적인 청소년기를 지냈다. 모든 면에서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결정 내리고 책임지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첫 오피셜 연애와 첫 경험을 또래보다 늦게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연애에 호기심이 많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일탈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공부하느라 바빴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또 결정적으로 남자한테 인기가 없었다. 간간히 나를 좋아한다며 다가오는 남자가 스킨십을 하려고 하면 나는 호기심보다 두려움에 지레 발 빼는 경우가 많았다. 이십 대가 돼서야 첫 경험을 하고서 깨달았다, 아, 지금까지 내 여자로서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던 상태였구나. 나는 예쁨 받는 법도 나를 예뻐하는 법도 모르고 살았다고, 내 생애 첫 성관계를 끝내고 난 후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도, 몸이 아프지도, 술 마신 게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20년 넘게 잘못된 성가치관과 엄격한 잣대로 나 자신을 대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슬펐을 뿐.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번의 연애와 이별 후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성관계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자연스레 학습하게 됐다.
10대 후반 대학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로 오게 된 후부터 10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알려져 있듯이 여긴 게이 문화(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된 곳이고, LGBTQ+ 커뮤니티가 매우 활동적인 곳이라 주위에 성소수자가 매우 매우 매우 많다.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 직장동료들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그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 내가 그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한국의 지인과 가족들에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퀴어를 서포트한다. 가족도 폴리틱도 종교도 대중도 뭐라 할 권리가 없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을 감명 깊게 봤다. 영화 중 셀리그먼이 색정증 환자 조에게 위로 차 하는 말이 있다.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 않는가'. 그러게, 왜 여성의 성욕은 금기시되어야 하는 걸까. 여성뿐만이 아니다. 게이는? 레즈비언은? 내가 가지고 태어난 몸이다. 금기된 약물이나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 범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결정권이고 남이 뭐라 할 영역이 아닌데. 생각해 보면 섹스는 사실 다리로 걷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당연한 것 아닌가. 성관계는 쉬쉬 하면서 임신과 출산은 신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 여성 혐오인지 생각해 봤으면.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공부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모든 퀴어피플이 부끄럼 없이 자신을 드러냈으면. 그리고 성을 둘러싼 몇천 년짜리 케케묵은 터부도 다 같이 타파해 버렸으면.
내 몸을 알면 알수록 관계는 즐겁다. 너무 클리셰한 성인 매거진 속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