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파란만장, 4박 6일 방콕
3년 만에 여행 매거진에 글을 올릴 기회를 얻었는데! 드디어 출국이란 걸 했는데! 이 여행기를 쓸까 말까를 고민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가게 된 휴가였고 준비기간이 짧았던 만큼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기에 늘 그렇듯 완벽하고 완전한 여행을 꿈꿨다.
그런데...
자유여행 인생 12년 만에 이렇게 매일이 사건 사고의 연속인, 파란만장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준비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이상하게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고 재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렇다고 몸이 이상했던(아픈 게 아니라 정말 이상했던) 일을 말하는 것도, 기대가 컸던 호텔의 형편없는 대응과 싸움질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돌아오는 출국 심사 엑스레이 검색대에 휴대폰을 놓고 와서 멘붕이 된 일과, 마지막 화룡정점. 캐리어가 박살난 사건을 말하는 것도 여행기와는 성격이 멀어 보였고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프롤로그를 썼지. 그렇다면 무언가 쓰긴 써야겠다. 지금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의 힘은 위대하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4박 6일의 기억 중 임팩트 사건만 요약해보기로 했다.(귀찮아서 그런 거 아님. 진짜 아님. 아님.. 아무튼 아님.....)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이미 출발 몇 달 전부터 여행 카페를 들락거리고 있었기에 대충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막상 체감하고 나니 힘에 부치거나 서운한(?) 점들이 있었다.
예약은 SNS로 카드는 모바일로
그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유명 왓아룬 사원의 야경을 보겠다고 리버사이드 여러 식당을 물색했다. 좋은 자리는 적고, 수요는 많아서 예약이 쉽지 않다기에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 10개 가까이 후보지가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메일 또는 홈페이지에서 예약했으련만 요즘은 죄다 페이스북 채팅으로 예약을 받는 추세였다.
하...... SNS는 보는 것도 겨우 하는 나... 기억에 없는 계정을 겨우 찾아서 앱도 깔아 보았으나 채팅을 하려면 채팅 앱을 또 깔아야 하네? 이름이 채팅인데 그나마도 바로바로 답이 오면 다행이련만 한번 얘기하면 다음 날 답이 온다. "음.. 첫째줄은 이미 예약이 찼는데? " "그럼 둘째 줄은?" 하고 물으면 24시간은 기다린 끝에, "지금은 셋째 줄만 비어 있단다." 이런 식. 5군데에 예약을 걸었는데 원하는 자리가 없어서 그냥 때려치웠다. 휴대폰 용량이 가득 차서 있던 앱도 다 지우고 있는 판에 당일에 노쇼 확인 연락이 또 온다는데 앱을 더 깔고 가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안 가 안 가!! 안 간다고!!(하지만 결과적으로 셋째 줄이라도 예약했어야 했다.)
방콕은 쇼핑몰마다 투어리스트 카드가 발급된다. 그러면 그 카드를 들고 물건을 구매할 때 할인 가능한 매장에서 할인받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죄다 큐알을 찍어 받는 모바일 형식이었다. 이게 불편한 게 뭐냐면 물건을 사고 카드를 디밀면 할인이 되는지 안되는지 그냥 알려주면 끝나는 거였는데 이제는 일일이 내가 모바일에서 스크롤을 내려가며 확인을 해야 하는 거다. 나는 그마저도 휴대폰을 보여주며 "돼? 안돼?"를 묻긴 했지만 빠른 변화에 따라가려니 좀 버거웠다. 카드로 발급되는 자원을 절약하자는 의미에는 공감하지만 아날로그형 인간에겐 좀 아쉬운 점이랄까.
그대로 있어주는 거리, 분위기, 그리고 사람.
방콕은 5년 만에 다시 갔지만 변하지 않는 그 고유의 거리와 랜드마크들이 아직 그 자리에 건재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그냥 반가웠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방콕을 12월에 많이 갔는데 그때마다 느낀 게 여름 나라인 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유독 화려하게 챙긴(?) 다는 것이다. 곳곳에 트리 장식과 캐럴이 나오고(저작권 적용 안 받는 거니? 신경 안 쓰는 거니?) 유명 관광지마다 크리스마스 포토 존을 마련해 놓았다. 이번에도 여지없었는데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유독 들뜨는 것은 절대 가늠되지 않는 '겨울 크리스마스'에 대한 어떤 막연한 동경에서 발로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기 소유가 가능하고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라 절대 싸움이 붙어선 안된다고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인심이 많이 팍팍해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미소의 나라답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다. 작은 일에도 까르르 잘 웃고, 조금의 친절을 베풀어도 아주 고마워했다.
나는 이번에도 팁 외에 그들이 좋아한다던 한국 마스크 팩에 준비해 간 라벨지 인사를 붙여 방을 청소해주시는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호텔에겐 화가 났지만 청소하시는 분들의 잘못은 아니므로)
태국을 자주 가니 예전에 만들어둔 문구를 라벨지로 출력해 매일 밤 마스크 팩에 붙여 팁과 함께 올려두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도 '청소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건 당신을 위한 선물이에요.'라는 말로 번역기를 여러 번 돌려서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읽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이것은 청소. 당신을 고맙습니다. 선물' 이렇게 번역될지도....
할까 말까, 갈까 말까 할 땐 일단 하고 본다.
그래서 왓아룬 야경을 식당에서 보는 것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크루즈를 타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헝가리 배 사건 이후로 이상하게 해외에서 배 타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여태까지 방콕 야경 안 보고도 잘 놀았는데 싶었지만 동행인이 엄마이니 만큼 남들 보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친구랑 갔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클럽, 아니 루프트 탑에 가서 칵테일이나 한 잔 마셨겠지.) 근데 무슨 배는 또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나름 심사숙고 끝에 고른다고 고른 것이 값은 세배나 비싸고 소수 정예만 태우면서(코로나 민감) 구명보트, 구명정 모두 구비하고 있는(안전 민감증 환자) 코스요리가 나오는(다른 배는 뷔페. 코로나 민감) 비싼 호텔 크루즈를 예약했는데 장고 끝 악수였다.
웰컴 드링크도 나오고 분위기는 그럴싸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내가 타기 전에 2시간 맞냐고 확인까지 했는데 (다른 배는 너무 길어서 2시간짜리 이 코스를 선택했는데) 맞다고 했는데 3시간 태웠다. 육지로 가는 마지막 배 셔틀 놓칠 뻔. 좋은 카메라 소지하고 있으면서 SNS 사진 왕창 올리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탈만함. 연인이 간다면 한 번은 탈만 함. 하지만 나는 한 번 탄 것으로 족한다. 이제까지 내가 왜 방콕에서 크루즈 탈 생각을 안 했는지 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해봤으니까 다신 하지 말자고 반성(?)했으니 이런 경험도 나쁘진 않다.(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2018년도에 아이콘 시암이라는 큰 쇼핑몰이 생겼다. 내가 방콕을 마지막으로 간 이후로 생겼으니 나에겐 신생 관광지. 지하 한 층을 쑥시암 이라는 수상시장으로 꾸며 놓아 길거리 음식의 위생 걱정을 줄이면서 기분은 낼 수 있게 참신한 아이디어가 발현된 곳이다. 하지만 그 층 외엔 그냥 커다란 쇼핑몰.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분위기였다. 깔끔하고 시원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의견과 그저 그런, 서울에도 존재하는 큰 쇼핑몰일 뿐이었다는 의견. 여기는 고민 없이 리스트에 당연히 넣었다. 한때 깔끔한 야시장의 독보적 자리를 차지했던 아시아티크라는 곳이 코로나 이후로 폐점된 곳이 많아 죽어가고 있다고 했으니 새로운 곳에 갈 필요가 있었다. (크루즈도 여기서 타야 했고.)
쑥시암은 예상대로 넓었고, 조금 신기했고, 생각보다 많이 먹진 못했지만 무언가 풍성하긴 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는 거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원래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에 가도 쇼핑은 마트 털기 위주로 진행되는데 이 큰 쇼핑몰에는 마트도 없다. 저녁이 되면 분수쇼도 하고 밤이 되면 곳곳에 사진 찍을 곳들도 많지만 역시 나는 현대 여성(?)은 아니다. 쇼핑몰보다는 현지 시장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구식이다.
다음에 간다면 배를 왕창 고프게 해서 쑥시암만 다녀오리.
한국 사람만큼 믿을만한(일 잘하는) 사람 또 없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모든 판도가 바뀌었다. 여행지에 대한 검색은 2020년 이후 것만 유효한 상태가 되었다. 정보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기우였다. 2022년 블로그도 넘쳐흘렀다.(역시 나 빼고 다들 가고 있었어!!!) 카페에 단어만 검색창에 넣어도 기가 막힌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쇼핑몰마다 거의 있는 '애프터 유'라는 카페를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망고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이번엔 가보자고 마음을 먹고 검색을 했다. 아이콘 시암점에 가기로 하고 필요한 정보들을 모았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검색한 내용이 모두 들어맞았다. 주말에는 대기시간이 20~40분. 번호표 배부. 회전율은 빠름. 6층에서 한 바퀴 쇼핑하고 와도 됨. 하지만 자기 번호 부를 때 없으면 지나감. 보기엔 예쁘지만 먹으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비주얼.
우리는 앞에서 대기를 했다. 방송으로도 번호를 불러주는데 1에서 10까지 태국 숫자를 알고 있는 나는 앉아서 태국어 듣기 평가를 하며 잘 알아듣는 나를 기특해했다고 한다.(영어 듣기는 포기한 인생...)
겨우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받았다. 우리 뒤에 온 어떤 한국 아저씨가 우리 쪽을 향해 (실제로는 와이프를 보고) "저게 베이비(스몰) 사이즈야?"라고 하는 말이 들린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향해, "네. 이게 베이비예요"라고 답해준다. 질문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답을 하자 아저씨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꾸벅 인사를 한다. 한국 사람에게 받은 정보는 한국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내가 자주 가고 좋아하던 마사지 샵이 코로나로 결국 폐업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다. 스탬프 도장도 모으고 있었는데... 결국 RESET 하고 새로운 곳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패하기 싫어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는 스파 3군데를 정했다. 일단 예약을 카톡으로, 한국어로 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라고 했지만... 한국말로 말 걸었는데 사장님이 없을 때는 직원이 영어로 답을 해와서 긴장 놓고 있다가 급 당황했다. 그중 한 군데는 사장님 직통 카톡 아이디도 알아냈는데(스토커 아님, 카페에 있는 정보) 가끔씩 카페에 직접 등판하셔서 무한 친절 댓글도 다시는데 아무리 영업마인드라 할지라도 신뢰감이 생겼다. 요즘 여행자들 사이에서 필수처럼 여겨지는 트래블 월렛 카드는 모른다고 하시길래 내가 가면 알려드려야지 하고 마음먹기도 했다.(실제로 알려드림)
엄마는 이곳 마사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고 그래서 마사지가 끝나고 감사하다는 카톡을 드렸더니 진심 어린 답변이 왔다.
대체적으로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은 마사지사 관리도 굉장히 까다롭고 엄격하게 한다고 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인식과 한국인 사이에 빠르게 퍼지는 입소문이 무서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조금 생각해볼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여행을 가기 전 정보를 얻을 때나, 여행지에서나 믿을만한 건 한국 사람이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여기 가면 한국 사람밖에 없어요'라는 리뷰를 보면 나는 바로 패스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70%까진 괜찮아. 100%는 싫어.)
그리고...
정말 한국 사람(?) 일처리에 감동받은 것은 귀국 후였다.
이는 에필로그에서 쓰겠다. (귀찮아서 급마무리한 거 아님. 할 말 다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