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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27. 2022

참을 만큼 참았다.(방콕)

3년 만의 출국, 5년 만의 방콕-프롤로그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시점은 사실 봄부터였다.

코로나 제재가 풀리며 자유도 늘어났지만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올 한 해, 국외여비를 몇 건이나 처리했는지, 남의 이티켓을 눈이 빠지게 몇 번을 봤는지 셀 수가 없다.(세고 싶지 않다.) 국외여비 업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이 많아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기 싫어하는 업무인데 올해 내겐 그 일이 거의 메인 업무가 되어버렸다. (다른 일도 늘어났음을 이를 악물고 타자를 쳐본다.)

 그러니 원래 내재된 여행 병자인 나로서는 이 환경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들썩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신, 귀국 전 검사 등의 여러 가지 제재가 있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 빼고 다 가네? 의 울분은 두려움을 덮었다.)


 하지만 인생이 내게 그렇게 호락호락 할리가.

봄부터 마음을 먹고 동행인과의 결정을 여름에 내렸음에도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변수가 발생했고 그렇게 우리의 계획은 8월에서 9월로, 다시 10월로 연기되었다.

 목적지도 결정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를 대비해 여름부터 몇 군데 후보지 여행 카페를 계속 들락거리며 동향을 살폈고 수시로 항공권을 검색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나는 계속 남들 항공권을 들여다보며 일을 했고 다른 이들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언제 가세요?"

"이제 가시기로 했나요?"

주변에서 물을 때마다(얼마나 요란스럽게 굴었으면 ) 나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상대방은 이내 머쓱해하거나 이제 제발 좀 가라고 웃었다.

 여행은 못 가는데 매일 이 나라, 저 나라, 여행 카페를 들락거리니 괜히 아는 건 많아져 여행이나 출장을 앞둔 사람들은 내게 출입국 기준을 물어왔고 나는 또 대답 자판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주곤 했다. 그래 놓고 또 어이가 없어서 옆에 선생님께 말했다.

 "저, 질본청 해외 담당 직원 같지 않아요?"


 어디든 상관없다, 이젠 날씨도 상관없다.(날씨에 민감한 자) 가기만 하자! 그랬는데 어느새 우기 시즌을 넘어 건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귀국 전 검사를 두려워하던 시절은 모든 검사가 폐지되어 옛날 일이 되었고 '아직은 이르지.' 했던 사람들도 슬슬 나가기 시작했으며 뒤늦게 찾아온 코로나로 당분간 자유의 몸(?)이 되자 더더욱  마음이 촉박해지기 시작했다. 여름에 가자던 계획은 빨라야 11월 중순이나 돼야 갈 수 있는 날짜까지 다가와 버렸다. 정말 정말 이젠 가야겠는데? 나, 여름휴가도 안 갔는데? 진짜 올 한 해 일만 했는데? 이대로 휴가도 없이 한 해가 가버리는 건가?

 급박하고 절박한 내 마음과 달리 동행인은 최종 '동행 불가' 결정을 내렸고 그래도 가야 했을 나는 새 동행인(?)을 급히 섭외한다.

 준비기간은 한 달 남짓. MBTI가 JJJJJJJJJ인 나로서는 한 달의 준비기간은 말이 안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결국 결정한 곳은 방콕.

 가장 잘 아는 곳. 준비할 것이 가장 적은 곳. 심리적 부담이 적되 친밀도가 높은 곳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현금이 20여만 원이나 남아 있으며 그중에 섞여 있는 구권을 빨리 써야 하는 이유도 한몫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자주 가던 곳들은 없어진 곳이 많았고, 새로 뜨는 곳들은 생판 처음 보는 곳이었다. 결국 일정의 80%는 처음 가는 곳이고 결국 생짜로 1부터 다시 공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글 지도는 어떻게 쓰더라? (방향치)

 유심은 어디서 샀지? 잘 쓸 수 있겠지?(기계치+걱정 쟁이)의 기본적인 물음부터,

오랜만에 가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잘만 하고 다녔던,

공항에서 택시 사기 안 당할까? 음식 먹고 탈 나면 어쩌지? 같은 심화된 걱정(?)들이 자꾸 들어 괴로워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시간은 없고, 알아볼 건 많은데 일정이 마음에 들게 딱딱 떨어지지가 않아 심기가 불편하기도 했고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일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걸 지켜보자니(이건 그냥 내 인생 룰인 듯) 가기도 전에 에너지가 소진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다.

가야 한다는 것. 가면 나는 행복해진다는 것.

아니, 어쩌면 가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여행을 가야 비로소 온전한 나로, 현재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강제로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에서 분리되어야만 나는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애쓰고 노력했던 나를 아끼고 보듬어 줄 여유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바쁜 짬을 내어 가기 전 이 마음을 기록해둔다.


아직 정보량이 100% 마음에 들지 않아 특별 기내식, 쇼핑리스트, 라운지 공부를 더 해야 하는 이 시점에도 말이다....

내가 묵을 호텔이 있는 아속 중심지 캡처. 요즘 건기인데도 계속 비가 온대서 매일 실시간 라이브 캠을 멍 때리며 쳐다보고 있음. https://youtu.be/zzJjopSj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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