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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Oct 23. 2019

마침내 갔다 왔다. 그놈의 마카오

에필로그/인간 만드는 여행

몇 년 전.

 "저는 새로운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이런 거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 그럼 여행 싫어하시겠네요?"

 "네? 아~니요! 저 여행 진짜 좋아하는데."

 "에이~뭐예요. 말이 안 맞잖아요."

 딱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앞뒤가 안 맞았기 때문이다. 그렇네? 그렇구나? 나... 뭐지?


며칠 전 재미 삼아 인터넷으로 해본 MBTI 결과 중 일부다. 다중이 같은 내 성격을 어느 정도 맞게 설명했다.(이미 처음부터 정형화된 특성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고 고급스럽게 기술해놓았네..)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는 변화를 수용한다는 점이 바로 위와 같은 내 상황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며 새로움의 연속인데  불확실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움을 배가 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나의 사전 준비이다. 방문할 식당의 메뉴와 가격까지 확인해서 예산을 책정하는 무시무시한 계획주의자이니까.

 그래서 '꽃보다 청춘'같은 프로를 참 재미있게 열심히 보긴 했으나 그들이 납치(!)되어 여행지에 도착하고,  현실 파악을 한 뒤에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나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갑자기? 짐도 없이? 물가도 모르는데? 밥은 뭐 먹고? 등등의 과도한 몰입의 결과)

  여행은 그 예측 불가능에서 오는 게 묘미이고 그것이 진짜 여행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각자의 스타일이 다른 것이니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간혹 나에게 그게 무슨 여행이냐며 자신의 여행 스타일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길래 하는 말이다. 남 일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을 쓰지 않지만 저렇게 꼭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만나면 '너랑 갈 거 아니니까 신경 끌래요? 너는 그럼 그렇게 쭉 살던가. 뭔 상관?'이라고 한마디 해주곤 한다.(저기 적혀 있네요. 연민이나 동정심이 있지만 가차 없기도 하다고.. 가만 두면 온순하지만 건드리면 자주 물어요.ㅋㅋ)

 아무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삼시세끼 다 먹고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보내는 일상의 연속 같은 여행이지만 내게는 엄연히, 분명히 다르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내게 그것은 '회피'이다. 회피이기 때문에 일시적 도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돌아와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피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내 문제에 대해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될 수 있다.

 밤 잠 못 자게 만들던, 나를 잠식할 것 같던 문제도 한 걸음 일상의 나에게서 물러나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애면글면 잊으려 애썼던 괴로움도 여행지의 행복 속에선 '그거 뭐 별거라고...' 여유로워진다. 여행만 가면 다들 싸운다던데 오히려 배려가 흘러넘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종종 말한다.

 "너 여행만 가면 천사 되잖아."(평소에는 못돼 쳐 먹었으면서.. 가 생략되어 있음)

 그토록 예민했던 촉수가 뭉툭해지면서 절대 하지 못했던 '그럴 수도 있지 뭐'의 너그러운 자세가 된다. 그래서인지 평소의 나였다면 할 수 없었던 이해 못할 행동도 여행지에서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왜 그랬지?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사리분별을 못했나?'

그래도 그게 꼭 싫지만은 않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지만 아직도 알지 못한 나의 다른 한 면을 발견하게 해 준 게 여행이라면 그것 자체로 또 의미가 있는 거니까.

 물론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나는 재투성이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유리구두 한 짝을 벗어놓고 온다. 다음에 다시 찾아가서 신으려고. 그럼 또 며칠 동안은 착한 신데렐라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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