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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an 12. 2023

참을 만큼 참았다.(방콕)

에필로그-방콕 갔다 와서 감동은 이상한 데서 받기.

 다 끝난 줄 알았지만 출국 심사 과정에서도 한바탕 난리를 겪고, 라운지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대한항공에 탑승했다. 출발할 때와 달리 연착도 없이 정시 출발. 의자를 뒤로 젖히고 편하게 오려고 앞 구역에서 제일 뒷자리를 지정해둔 상태였다. 돌아갈 때도 만석이 아니라서 3 좌석에 엄마랑 나 둘이 앉았고(누가 앉을까 봐 마지막 사람이 탑승할 때까지 목을 빼서 미어캣처럼 살핌) 엄마는 감기약을 먹고 안전벨트 불이 꺼지자마자 눕코노미를 시전 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졸렸지만 늘 그렇듯 잠들진 못했다. 꾸벅꾸벅 간헐적으로 졸고 있는데 기내식이 나왔다. 엄마는 깊은 잠에 빠졌고 라운지에서 앙갚음하듯 음식물을 잔뜩 들이 넣고 탑승했던 지라 밥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먹을게요." 하고 나도 잠을 청했다. 청했지만 잠은 그 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2시~3시쯤 됐던 것 같다. 엄마도 일어났다. 지금 먹지 않으면 다음 밥 타임이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어서 승무원 언니(예쁘면 다 언니)한테 비빔밥 달라고 했다.

 방콕행에서는 특별기내식으로 해산물식, 글루텐 제한식을 사전 신청해서 남들보다 빨리, 맛있게 먹었는데 돌아올 때는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신청을 안 했더랬다. 잘 안 넘어가지만 독서등 하나를 켜놓고 불빛에 의지하며 꾸역꾸역 먹어 본다.

방콕행 기내식-글루텐 제한식을 신청했을 때 운이 좋으면 스테이크가 나온다더니 스테이크 영접. 집 냉장고엔 1년전에 사둔 맥주가 썩어가도록 안 먹는데 또 비행기에서 맥주 탐하기.  
인천행 기내식-이미 조명부터 어두침침하니 내 마음을 대변

 밥을 먹고 혹시나 자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다. 비싼 돈 주고 TV 달린 비행기 탔는데 모니터를 켤 의지도 없다. 오히려 밥을 먹었는데 어째 배가 살살 아프다. (약을 먹었는데도 다담날까지 배가 아팠던 것으로 보아 체했던 것으로 추정)

 새벽 4시 언저리 활주로 착륙. 눈이 우박처럼 내리고 있다. 자, 일단 무사 도착! 그랬으면 됐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밀린 업무이지만 그건 차차 생각하자. 한숨 자고 오후에 살살 집에서 일을 해볼 생각을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행기가 커서 그런지 비즈니스 다음으로 우리 수하물이 나와야 하는데 비즈니스 짐이 꽤 오랫동안 나온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마음이 너그러웠다.

 "그래도 이제 우리 거 나올 거야. 일반 이코노미였으면 진짜 언제 나왔을지 모르겠다." 거들먹거리는데 내 캐리어가 나오고 엄마 캐리어가 나왔다. 이 몰골로

바퀴 누가 훔쳐갔나요?  바퀴만 빠졌으면 수리가 가능했을지도...

"하..............." 육성으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지막까지 내게 이래야겠니? 당연히 여행자보험은 늘 가입하고 가지만 실제로 청구할 생각을 하고 드는 건 아니었다. 어떤 서류들을  구비해서, 어떻게 청구하고,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나 지금 그것도 알아봐야 하는 거지?

 일단 공항버스가 많이 없어진 만큼 출근시간과 맞물리지 않게 공항 철도를 빨리 타야 했다. 배가 아프고 잠은 못 자서 신경이 곤두서 있지만 지하철에서 다시 검색에 들어간다. 준비할 서류가 8~9가지 된다고 했다. 한숨이 난다. 일단 덮는다. 이번엔 대한항공 수하물 보상을 알아본다. 비교적 간단했다. 엄마의 항공권 번호와 수하물 번호를 입력해야 해서 메일 주소만 내 걸로 남겨두고 신청을 한다. 접수되고 몇 시간 내에 전화가 온다고 했다. 젖은 솜뭉치 같은 몸을 가까스로 이끌고 집 도착. 정리를 대충 끝내고 계속되는 복통에 약을 집어먹고 한숨 자고 일어난다.

 오후에 재택으로 밀린 일을 시작해보려 했지만 그것은 나의 헛된 꿈. 엄마 전화가 울린다. 대한항공에서 전화가 왔다고 메일로 새 캐리어 모델을 보냈다고 확인을 해달라고 했단다. 일 처리가 그야말로 5G다.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열어보고 엄마의 의중을 확인한 후 빠른 확인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회신을 줬다. 일 빨리 하는 사람들 나는 너무너무 사랑한다.(반대인 사람들은 굉장히 미워한다.) 대한항공도 나에게 빠른 답변 고맙다며 즉답이 왔다.

우리 모두 이렇게만 일해봅시다.

 여전히 수면은 부족하고 배도 아프고 맘대로 되지 않은 여행에 심기가 불편하지만 이 와중에 감동이다. 오지랖 넓게 이런 서비스를 악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대한항공은 (모두가 알겠지만) 딱 하나만 빼놓고는 (아직은) 대체로 만족스럽고, 작은 부분에서 세심함을 느낀 적이 많아서 내겐 참 좋은 항공사다.

 앞광고도 뒷광고도 주변에 관계자도 전혀 없음을 말해둔다.(앞 광고는 해보고 싶고 관계자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가 더 남았다. 서류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필요하다는 여행자보험 서류. 생전 여행자보험 가입증서를 받은 이후로 다시 들여다본 적이 없는 가입 메일을 다시 찾아내서 메일을 날린다. 오.... 여기도 칼답이 왔다. 준비해야 할 서류를 보니 한숨이 나지만. 신청 포기하게 하려고 이런 건 아니겠지? 또 의심병이 잠깐 도졌지만 그럴수록 의지를 불태우며 필요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수리 AS 전화번호까지 찾아내서 수리불가확인서를 달라고 요청한다. 새벽 4시에 도착했는데 지금은 저녁 6시고 나는 여전히 정신이 몽롱하고 배는 아프고 일은 시작도 못했다. 일은... 10시가 넘어서 겨우 몇 가지를 했다.


시간이 더 필요해. 제자리를 찾을.

 당연히 다음날은...할말하않.

 여행자 보험의 그 수많은 서류는 더 이상 보완 요청을 할 수 없도로 완벽하게 제출했고 필수서류도 아닌 인천공항에서 네 바퀴가 멀쩡히 달려있는 사진도 첨부했다.(나는 집요한 사람이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부치기 전에 캐리어 손상에 대비하여 늘 사진을 찍어둔다. 이렇게 쓸지는 몰랐지만.)

 다행히 며칠 내로 대한항공의 새 캐리어도 도착했고 여행자보험은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금방 접수되어 입금되었다.(내 인건비 1원 남김없이 엄마에게 입금해 주었다.)

 오랜만에 간 해외라 그런지 내가 너그러움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떠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한가득 안고 간 곳에서 자꾸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일 처리를 이상하게 하는 직원들을 너무 만났더니  제대로 힐링을 하지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생각해보면 그 나라의 분위기는, 그곳의 사람들은 늘 그랬다. (좋게 말하는 여유 있는) 나는 늘 그런 채로 잘 받아들였고 떠나기만 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인드가 곧잘 스위치 되곤 했었는데 이번엔 그게 잘 안 됐다. 뭐 물론 유독 이상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당연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몇 년 동안 방전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다음엔 조금 더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더 긴 일정으로 가야겠다.(이것이 이글의 주제. 오늘도 미괄식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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