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는 친구를 나라 밖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그녀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그 해에 해외를 두 번이나 나간 뒤 척박한 현실에 몸이 묶여 이후로 10년짜리 여권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채 여권 만료기한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너의 구세주가 되겠어' 몇 번의 우여곡절을 거친 뒤(가기 전에 늘 곡절이 있는 건 나만 이런 걸까) 그렇게 우리는 각자 마음의 부담의 짐을 하나씩 얹은 채 '가고 보자' 괌행을 결정짓는다.
잘못한 게 없어도 입국심사는 늘 긴장된다.
지난겨울부터 들썩거리다 결국 극적으로 3월 말로 결정. 그렇게 11년 만에 가게 된 괌.
아무리 구암시라 부를 정도로 관광객(특히 한국인)만 넘쳐난다고 해도 미국령은 미국령이다. 가기 전 준비해야 할 서류가 타국보다는 많다. 예방접종 증명서, CDC 서약서(항공사마다 다른 듯), 비자면제 신고서, 그리고 이제 QR 코드로만 받는 전자세관신고서까지.(이건 또 대한항공만 종이서류를 안주는 듯도) 2월에 몹시 바쁜 친구를 대신해 모두모두 내가 미리미리 준비하고 알려준다.(아니다. 누가 됐든 그냥 언제나 내가 다 준비한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른 아침 연착 없이 정시에 출발해 제시간에 도착. 뻔한 질문만 한다고 해도 그래도 입국심사는 입국심사다. 긴장되는 순간.
친구가 앞서 가고 그 뒤에 서서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하나 입모양을 살핀다. '오, 호텔이 어디냐고 물었나 보군' 한참 긴장 타고 있는데 뒷 그룹의 아줌마들 대화가 들린다.
"뭐라 뭐라 물어쌋는다. 우짜노?"
"하다 안되면 종이 다 주라. 이것도 줘보고. 저것도 줘보고"
'아니에요... 모 연예인처럼 못 알아듣는다 싶으면 한국말로 큰 소리로 '광광?? [관광?]' 이렇게 얘기해 줄 거예요..'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하고 내 차례를 맞이했다.
"왜 와써?"
"놀로 왔는뎅"
"며칠 있을 건데?"
"(꼴랑) 나흘"
"괌 처음 온 거야?"
"두번째거등"
"어디에 묵을 건데?"(질문 왜 이렇게 많이 해..)
"나 웨스틴."
"아, 아까 앞에 간 애가 니 친구야?"
"응. 걔가 내 친구."
"잘 가"
"안뇽"
휴. 무사통과. 숙소 예약 시 조인 픽업이 포함이었던 특전이 있어서 여행사 데스크로 갔다. 혹시라도 다른 팀이 너무 많아서 돌고 돌아 호텔 도착하는데 오래 걸릴 것 같으면 그냥 택시 타고 가자는 2안을 계획해 놨는데 우리랑 다른 팀 한 팀밖에 없고 심지어 우리가 늦게 나왔네? 머쓱
호텔에 메일 쓰기. 영어는 내가 안 하고 파파고가 하니까
이번에도 호텔에 미리 메일을 썼다. 호텔의 구조상 좋은 방을 얻어야 바다가 보이는 구조라 무조건 좋은 방 달라고 미리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커넥팅 룸 말고, 고층 중에서도 바다가 잘 보이는 뷰를 원해. 내가 듣기로 17-20라인이 뷰가 좋다더라?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이왕이면 반영되면 좋겠네. 왜냐하면 여행 기간에 내 생일이 포함되어 있거든. 니네가 내 말 들어주면 진짜 좋겠다'라고 쓰고 집요하게 출발 이틀 전에 또 메일을 썼다.
'나 기억해?(스토커 같군..) 나 드디어 모레면 도착해. 내가 말한 거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언니는 늘 나를 호텔계의 블랙리스트라 부른다... 하지만 파파고의 힘을 빌려 영어 메일을 쓰는 내가 진상을 부려봤자..)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저기 저 직원 한국인 같지?" 하고 그 직원 앞으로 달려갔다.
"헤헤... 저 좋은 방 달라고 했는데요.. 헤헤헤..."
"아.. 요청 메일이 있어서 저희가 오션뷰 중에서 바다랑 가장 가까운 룸으로 해드렸어요. 근데 옆방이 커넥팅 룸이라 소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소음 OR뷰 중에 선택하란 소리 같았다. 우리는 뷰를 골랐다. 옆방이 조용하길 바라며.
(지내는 동안 옆방이 너무 조용해서 우리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밤에 테라스에서 사람을 발견했다며 친구가 놀라 뛰어들어왔었다. 가족이라고 했는데 일본인인가 추측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지만 실제로 오류가 아니라 사실일 경우가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아, 그리고 저희 내일 투어 갈거라 비치 타월 빌리려고 하는데..."
"어... 저희가 원칙적으로 내부 물품 반출이 안 되는데요."
"네? 제가 메일로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가능하다고 했는데요.?"
"투어 간다고 말씀하셨나요?"
"네. 3월 25일에 리티디안 투어 갈 건데 수건 대여 가능하냐고 물으니까 가능하다고, 대신 돌아와서 반납은 방에 두면 된다. 했거든요" (정말 나는 이렇게 정확하게 물어보았다.)
"아... 그러시면.... 저희가 지금 수건 추가로 해서 방으로 드릴게요"(보아라. 이럴 거를 대비하여 메일로 모든 근거를 남겨 두어야 한다.)
그렇게 룸으로 진입한다.
룸으로 들어와 맞이한 테라스에서 본 뷰
그리고 한 가지 더. 생일이라고 했더니 준비해 준 그들의 이벤트
쿠키와 생일축하 풍선과 메시지. 요런 거 작지만 큰 감동
작은 이벤트가 추억이 된다.
체크인 시 웰컴 드링크 쿠폰을 주었다. 당일 로비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가기 전 숙소의 모든 정보를 구석구석 찾아 내 가는 내게 웰컴드링크 정보는 없었다. 새로 생긴 건가? 만약 알았다면 나는 이미 그 쿠폰으로 어떤 종류의 음료를 먹을 수 있는지, 나는 무엇을 먹을지 이미 정해두고 왔을 것이다. 일단 우리는 스타벅스로 향한다.
영어 폭탄이 떨어졌다.... 다 가능하다고 하면서 왜 저렇게 길게 말해........ but 다음이 중요해서 그런 거야.....?
"아... 그러면 있잖아(이미 피로해짐) 저... 스트로베리.. 어쩌고... 저거 돼?"
"아.. 그건 안돼. 왜냐하면 말이야. ^%&^(*)%%^*()_+)*&^"
그만!! 그만 말해줘! ㅠㅠ
"그래서 스트로베리 크림 어쩌구 그건 된단다."
"그래... 그럼 나 그거 줘..(더 고를 기력이 없음)"
친구가 뭘 골랐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나오면 불러준다고 이름을 물어본다.
친구가 이름을 말했다. 당혹감에 눈알이 굴러가는 게 보인다. 친구 이름은 발음이 어렵기 때문이다.ㅋㅋ (이상하게 복수? 했네.)
"이름이 어렵지?"
"아니야!(어쭈. 남자의 자존심인가) 난 얼굴로 기억할 수 있어. (날 보고) 넌 이름이 모야?"
"나는 요세피나야"
"(화색만연, 쉬워서 기쁜 듯) 아아! 좋아 좋아!" 하더니 음료에 이름을 독일식?으로 써놨네.
(친구는 이 일을 계기로 자기도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겠다며 다음날 투어 가는 길에 혼자 계속 영어 이름을 생각했다.)
그래도 맛있었어요.
음료를 들고 오늘은 당장 못 들어가는 수영장을 지나 해변으로 간다.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친구와 사진을 간단하게(?) 100장 정도만 찍고 전용 비치 카바나에 앉아있는데 비가 후드득. 엥? 이 시기에 웬 비? 잠깐 오다 말겠지 했는데 쏴아아 온다. 건기에다가 3월은 제일 비가 안 오는 시기라고 했는데 이후로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스콜을 만났고 매일매일 우산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지구가 아픈 건 분명하다.ㅠㅠ
그래도 다 괜찮아.
원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야식을 포장해서 먹기로 했는데 해변 감상을 하다 보니 저녁이 늦어졌다. 우산을 받쳐 들고 저녁을 먹기 위해 예정된 햄버거 집으로 간다.
새우버거가 유명하다는 곳. 특히 블랙번이라는 새우버거가 유명한데 늦게 가면 일반 새우버거 밖에 없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블랙번은 품절.
첫 끼니의 첫 주문인 데다가 사이드를 각각 다른 추가 요금을 내고 어니언과 고구마로 바꾸느라 긴장해서 나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한다.
괌은 전 지역이 T 멤버십 할인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 맛집과 관광지는 웬만큼 T 할인이 된다. 심지어 통신사까지 신청만 하면 쓰던 요금제 그대로 로밍이 되고 전화도 무료로 가능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나 반드시 계산 전에 T 바코드를 제시해야 한다. 나중에 할인은 안 해준다. 뒤늦게 놓쳤다는 사람들 후기를 보며 '바보 같이 그걸 왜 미리 생각 못해?' 하면서 혹시나 일정표 비고란에 다 써놨으면서 주문에 집중하느라 5% 할인을 못 받았다. 첫날이라 긴장해서 그래.. 괜찮아... 팁 줬다고 생각하자... 하며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나는 마지막날까지 "그 첫날에 T할인 못 받은 거 빼곤 완벽했지?" "아.. 그 5% 할인까지 받았으면 더 좋았는데"라는 말을 하며 뒤끝 쩌는 인간형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새우버거와 그릴드 치즈버거
맛은 '새우가 진짜 두툼해요' '롯데리아 새우버거가 더 맛있었는데요' 두 가지로 평이 나뉘었었는데 먹어보니 둘 다 수긍. 근데 양이 어마어마. 콜라는 왜 두 개나 시켰어. 콜라도 엄청 나. 결국 남은 거 포장해 왔는데도 다 못 먹음.
근데 첫 식당인데 이미 우리가 들어갈 때 한국인 테이블만 있었는데 뒤이어 오는 팀들도 90% 한국인.
너무, 죄다, 몽땅, 전부 한국 사람만 있으니까 외국향기(?)를 맡고 싶은 나는 이날부터 계속
"아... 일본 사람 만나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군사지역이라 괌은 원래 중국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아 중국인들은 거의 입국이 불가하고 결국 한국&일본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비율적으로 한국 사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일본인들을 만나면,
"아까 저 아기가 아빠한테 자기 보라고 하더라."
"우리 보고 한국사람 '맞아 맞아' 하는 거 같더라고" 난데없는 듣기 평가를 하기도 하고
친구는 한 술 더 떠 회화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고레와...(이건).." 하길래,
"고레와 다음엔 뭐라고 할 건데?" 했더니
"오또상(아버지)!"라고 해서 나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아는 단어 막 조합)
호텔 편의점에서 일본인들이 우르르 지나가면서 하는 대화를 듣고서 나는,
"마지막 말만 알아들었어. 뭔지 모르겠지만 다행 이래.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뭐가 다행이냐고 물어볼걸 그랬나?ㅎㅎ 물어볼 순 있지. 답하면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근본 없이 드라마로 배운 일어) 하면서 깔깔거렸다.
여행 오니 갑자기 낙엽이 굴러가도 웃을 것 같은 나이로 돌아간 것 같은 우리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