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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l 17. 2019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들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청

 얼마 전에 다방(토이 뮤직)에서 누가 문의를 했다.

'스케치북 방청하고 싶은 데 가셨던 분들 당첨되는 팁 좀 주세요'

어디에서든 눈팅 파인 내가 답을 달았다.

"처절하게 쓰세요"

스케치북 방청에 당첨됐다고 할 때마다 주변에서도 그거 되기 힘들다던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되냐고(?) 심심찮게 물어보곤 했다.

(세어보니까 신청 횟수 6회, 당첨 횟수 4회였다.)

스케치북 작가가 아니니 정확한 기준은 사실 나도 모르지만 내 경험을 비추어 말하자면 '처절'과 '불쌍'이 키워드이다.

오늘 희열이 오빠는,

 "사연 지어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아요. 다들 그렇게 편찮으시진 않거든요~다들 그렇게 헤어지지도 않고요 ㅋㅋ"라며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나의 경우 지어냈다거나 없던 얘기를 쓴 적은 결단코 없다.

그저 지금 나의 사정을 구구절절 나열했을 뿐.


[저는 지금~이러한 처지로 이러한 생활을 근근이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긍휼을 베푸시어 잠시라도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주세요.. 블라블라

하지만 또 마지막엔 희망을 제시해야지.

평범하게 살 수 없다면 특별하게 살 수 있는 삶을 꿈꿉니다... 마무리]

정말 1도 거짓 없는 내용인데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불쌍해서 뽑아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오히려 나로서는 늘 살아온, 살아가는 내 인생을 쓴 건데 누군가에겐 정말 내 삶이 그리도 안쓰럽고 안타깝게 보이는 걸까 싶어 외려 쓸쓸하기도 하다.(어쩌라는 거지)

 최근엔 노래 신청까지 같이 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런 사연과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베란다 프로젝트의 '괜찮아'를 신청한다.

뭐 이런 소재의 노래는 많지

토이의 '스케치북'이라던지, '다시 시작하기'라던지 카니발의 '거위의 꿈'이라던지...

토이 노래는 너무 대놓고 로비(?)하는 것 같아서 제외고 '거위의 꿈'은 이제 너무 대중가요가 되었기 때문에 싫고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그래서 좀 있어 보이는(응?ㅋㅋ) 노래를 신청한다.

(김동률 말고 '베란다 프로젝트' 노래도 안다니 뭔가 음악적 조예가 깊어 보이잖나 ㅋㅋㅋ)

 거짓말 보태서 저 노래를 100번 이상은 들었으니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정말 듣고 싶은 건 사실이니까.


자유석은 늘 방송국 앞에서 줄을 섰다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스케치북을 방청한 건 이상하게도 대부분 늘 늦가을이나 겨울이었다.(가을이 되어 우울이 심화될 때쯤 스케치북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자체 결론을 내렸다.)

겨울을 극혐 하는 내가 추운데 벌벌 떨며 줄 서지 말고 여름에도 한번 보자 싶어서 얼마 전에 신청을 했더랬다.

신청을 할 때만 해도 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후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일이 몰려들어 수면 시간을 줄이며 시간 빚쟁이가 된 차에 당첨 문자가 날아들었다.

하............. 그렇다고 안 갈 수 없지. 같이 갈  친구와 계획을 세운다.

아침에 가서 표를 받고 저녁에 줄을 서야 하므로 둘 다 하루를 온전히 빼야 하는 상황.

그래. 그렇다면 그날 하루를 스케치북을 위해 바치고 많은 것을 해치우자.

은밀하고(둘이서?ㅋ) 거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오전에 여의도 가서 표 받기->고터 가서 사주카페 가기->-고터 쇼핑->다시 여의도 이동 후 카페 수다

->이른 저녁-> 줄 서기-> 방청-> 밤늦은 귀가

14시간에 달하는 스펙터클한 스케줄


그래도 역대 가장 앞 열에 앉음ㅋㅋ

 10시 35분. 여태까지 간 중에  가장 빨리 kbs에 도착한 듯하다.

그런데! 그래도 번호가 200번 대야?? 도대체 앞에 200명은 다 언제 온 거지? 다들 9시 전부터 정말 기다리는 거야? 다 회사가 여의도냐구?!!흑.

 뭐 이 정도면 계단에 앉아 보진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난 출근시간대를 뚫고 여의도까지 올 자신은 없다. 체념을 하고 우선은 우리의 스케줄 소화를 위해 고속터미널로 향했고 3시쯤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2년 만에 온 kbs는 많이 바뀌었더라.(뭐래 ㅋㅋ) 외국인 관광객 체험관에 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매장과 사전 MC까지.


학창 시절 나를 초목표까지 이끈 힘의 원동력이 적이 오빠였다면 희열이 오빠는 나의 심신안정 역할을 해왔다.(역시나 둘 다 내게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ㅋㅋ)

 서로를 아는 관계가 아닌 한쪽이 일방적으로 아는 관계.

 어쩌면 그래서 때론 더욱 예민하고 세심하게 상대가 보이기도 한다.

 예능인(!)이 직업(?)이 된 후로 스케치북을 찾는 사람이 대다수일 테지만(20대 방청객이 훨씬 많은 것도 난 왜 이리 슬픈 건지....ㅠㅠ) 중학교 때부터 그의 라디오를 젖줄 삼아(!) 자라온 나는 오늘 느꼈다.

 '오빠는 오늘 옛날 생각이 많이 나나 보네.'

 "콘서트가 많고 페스티벌이 많은 시기예요. 그런 곳은 돈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스케치북은 마음과 정성이 없으면 오기가 힘든 곳이거든요. 사연을 쓰고(여기서 거짓사연 드립) 또 당첨되신 분이 옆에 온 분에게 '같이 갈래'라고 손을 내밀고, 그러니 얼마나 고마워요.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는구나' 고맙다는 생각으로 돌아가실 때 5만 원 드리는 훈훈한 장면 연출해주시구요. 스케치북이 그 정도는 되잖아요?(현금거래 드립)"

 '그때가'

 '예전에'

 '옛날에'

본인은 몰랐겠지만 오늘 많이 썼던 단어들이었다.


 나는 스케치북을 왜 갈까? 출연자가 누구인지 당일에 가봐야 알 수 있는 프로그램 특성상 특정 가수를 보러 간다거나 라이브 음악을 듣고 싶어서는 아니다.(요즘 노래 잘 모름.....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만 죽어라 감....)

 나는 내가 좋아하는 희열이 오빠를 보러 간다.

 여전한 입담, 재치, 그 속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그 사람의 그 따뜻함.

최단시간 녹화로 10시 전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스케치북 방청을 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교육원 건물을 보며 생각했다.

 많이 변했고 빨리 변한다. 나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그런 나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주는 것들이 존재한다.

 비록 라디오는 안 하지만 스케치북은 계속해주고 있는 고마운 희열 오빠와 매번 나를 울컥하게 만들어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육원 건물과 10년이 넘도록 노선이 바뀌지 않는 고마운 461 버스와 오늘 함께 해준 친구까지.

 변화가 반드시 성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듯  사라지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방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새삼 고마운 친구에게 오늘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다.

 "야! 5만 원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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