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 여러 번 먹으며 떠난 아랍에미레이트(4)

가장 널널했던 하루. 그래서 가장 많은 돈을 쓴 넷째 날.

by yosepina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한다.

일정이 많지 않았지만(사실 오후에는 시간이 남아 돔) 연말이다 보니 대기 줄을 감안해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게 좋다는 가이드의 판단 때문이었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든 나도 여행지에서는 이것이 옳은 선택임을 알고 있다.


별거 없을 줄 알아도 안 가면 서운하니까

두바이 일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828m의 전망대이고, 이 건설에는 우리나라 삼성물산이 참여했다. 랜드마크이긴 하다만 냉정하게 말해서 꼭 가야 하는 전망대인가? 에 대한 답은 의견이 갈릴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도 사전에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바이에 가서 수납을 완료했다. 가장 유명하긴 하다만 올라가서 보는 여타 다른 전망대와 별다를 게 없다. 에펠탑에 올라가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고(그래서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에펠탑 본 사람), 피렌체 두오모에 올라가면 두오모가 안 보이는 이치(그래서 조토의 종탑 가서 두오모 본 사람)와 같다. 그래서 사실 밤에 부르즈 칼리파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레이저 쇼와 함께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또 이상하게도 유명하다는데 나 빼고 다 올라가나? 싶은 생각이 들면 동참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금을 내고 신청을 했다. 게다가 엄마는 '유명하다는 곳은 다 보고 싶어' 하는 파이기 때문에 안 갔다가 나중에 TV에서 부르즈칼리파 전망대가 예능에라도 나오면, '우린 저기 안 갔지!'라는 말을 두고두고 들어야 할 위험이 있다.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다. 혹시나 미래에 닥칠지 모를 대 참사의 값을 돈으로 사고 만다.

거의 오픈런이라 별 대기 없이 올라갔다. 그런데 안개로 인해 맑은 풍경이 담기지 않는다. 어차피 유리 창문을 통해 봐야 해서 사진으로 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런 데서 파는 기념품 너무 비싸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냉장고 자석을 하나씩 산다. (가격표 볼 때마다 부르르 떨리는 이 나라의 물가)

내려오는 길에 이 건물 건설에 일조한 사람들 사진이 걸려 있다. 거기에서 우리나라 아저씨를 발견한다. 역할도 총괄 디렉터라고 되어 있었다. 자랑스럽다. 국뽕 만땅 충전

왼쪽 두 번째 분. 국위선양. 공부 잘하시게 생김

내려올 때 보니 들어갈 때 거의 없던 줄이 길게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현명한 우리 가이드도 자랑스럽다.


돈 쓰기 싫으면 두 발로 계속 걸어 다니기만 해야

집합 시간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 자유로 두바이몰을 쇼핑하라고 했다. 우리는 어제 왔었기 때문에 설렁설렁 다시 두바이몰을 걷는다. 쇼핑몰 오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젯밤과 달리 아주 한적하다. 시간이 없어서 어제 가지 않았던 차이나타운을 찾아가 본다. (역시나 어제처럼 앱을 켜서 목적지를 찍고 직원에게 내민다) 이곳도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주 한가했다.

저~ 멀리서도 알 아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 느낌

어제 갔던 휴먼워터폴도 다시 갔는데 사람이 없어서 여유롭게 다시 보고 한국 동포를 만나 사진도 부탁했다.

이것저것 다 한 것 같은데도 한 시간 가까이 남았다. 엄마의 체력이 조금 떨어지고 있는 듯해서 집합 장소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간다. 이미 다른 일행분들도 많이 자리 잡고 계셨다.

음료 두 잔 시켰는데 59 디르함이 나왔다. 2만 4천 원쯤 되려나. 내 돈 주고 안 사마시는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잠깐 생각했었다.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메리카노가 원가 대비 더 비쌀 수도 있다. 늘 시키는 달달한 커피와 엄마 음료를 시켰다. 맛은 있었던 것 같다.(아마 또 기억을 미화하는 것일 테다. 맛도 없었다고 하면 너무 고통스러운 소비자나... 뭘 마셨는지 사진도 안 찍은 거 보니 많이 놀라긴 했나 보다..)


쇼핑 안 좋아해요. 진짜예요....

오후 일정은 별거 없었다. 우리를 까르푸 쇼핑몰에 데려다준다 했다. 이른바 쇼핑 타임이다. 보통의 패키지 일정에는 이런 시간이 따로 없는데(그리고 일정표 상에도 없었고) 그래서 다부지게 어제 쇼핑 계획을 세운 거였건만 다행히도 별도의 시간을 준다 했다. 까르푸가 가장 저렴히 살 수 있는 곳이고 가이드가 한국인이 많이 사가는 쇼핑 품목도 대략 알려주었는데 나는 어제 살 수 있는 건 거의 다 샀다. 초콜릿과 대추야자, 어제 못 산 품목만 추가로 사기로 했다. 가격 때문에 동남아 쇼핑처럼 쓸어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형 타포린 백은 미리 준비한 나란 여자. 많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돈이 우습게 깨진다. 쇼핑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관계로 다들 까르푸 입구 의자에 앉아 시간을 때운다. 일행 분 중 한 분은,

"살면서 초콜릿을 이렇게 많이 산 적이 없어요. 초콜릿만 30만 원어치야"라고 했다.

30만 원이라고 하니까 대량 구매 같지만 아니다. 나도 두꺼운 카다이프 두바이 초콜릿은 찐친 선물용으로는 3개만 사 왔는데 그거 하나가 16000원이 넘었다.(더 비싼 초콜릿도 있었다는 것이 통곡 포인트)

이탈리아제 천연 비누는 향이 너무 좋아 방향제로 쓰다가 향이 날아가면 비누로 쓴다는데 그래도 비누가 비누지 무슨 비누 하나가 8천 원이야? 했는데 그거 산 사람 여기 있습니다. 방향제로 잘 쓰고 있어요. 하하하...

맹세컨데, 나는 한국에서 물건 안 사기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옷, 신발, 가방,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 사지 않고 그 돈 한 푼 두 푼 모아 덕질과 여행에 몰빵 하는 사람인데 국내만 벗어나면 뇌의 쇼핑 명령어가 완전 고장 나는 느낌이다. 그나마 비싼 두바이 물가가 살린(?) 셈이다. 돌아올 때 캐리어 공간이 넉넉했던 건 다 두바이 물가 덕분입니다. 네에. 고오~맙습니다.


돈 없는 사람이 돈 맛을 알아버린 비극의 시작

가이드가 굳이 까르푸에 긴 시간을 주었던 건 두바이 분수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시 두바이몰로 돌아와 분수쇼를 관람한다. 30분마다 한번 있는 분수쇼를 두 번 보고 돌아오라고 했다. 이미 어제 최고의 장소에서 정점의 분수쇼를 본 엄마와 나는 특별히 흥분하지 않는다. 그래도 보긴 봐야겠지? 하고 지상에서 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쉽지 않았다. 치이고 밀리는 사람들. 그렇게 첫 타임을 어찌어찌 서서 보긴 했는데 역시 어제 본 것과 차원이 다르다. '와.. 이렇게 본 걸 봤다고 할 수 있어?' 우리는 두 번째 타임은 보지도 않았다. 또 화장실 의자 앞에 앉아 쉬다가 집합 장소로 간다.

"이럴 줄 알았어. 거봐. 어제 보기 잘했지? 그치? 하나도 안 보이잖아." 귀에 딱지 앉도록 생색을 낸다. (낼만 했다고 생각한다. 밥 값도 다 내가 계산했으니까!!)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어느새 내일이면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저녁은 전혀 태국 음식 같지 않은 태국 퓨전 음식점이었는데 여기서 먹은 음식으로(추정) 결국 엄마는 다음날 탈이 나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의 다음 여행지에 큰 영향을 끼쳤다.(돌아와서 다음 여행 예약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