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지 석 달, 며칠 전에 조회수가 1만이 넘었다. 이 중 3천 정도는 메인에 랜덤으로 걸리며 얻어걸린 숫자이고 또 인기 있는 작가들은 하루에도 거뜬한 숫자이니 사실 이를 기념하여(?) 무언가를 쓴다는 건 좀 오버스럽다.(며칠 동안 쓸까 말까 계속 고민함)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놓고 볼 때 이는 상당히 의미 있고 고무적인 업적(?!)이라 잠시의 오글거림을 참고 회고해 본다.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일단 '보여주기'와 '자랑'거리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나에 대해 노출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봐야 하는 게 그저 피곤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잘은 모르지만) 사진을 올리고 그 밑에 몇 줄 글을 쓰며 소비되는 형식의 플랫폼이 나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싫었다기보다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출세 욕구나 재물욕심은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애정 욕구와 인정 욕구는 지나치게 강한 게 나라는 사람이니까. TV에 나와서 연예인들이 팔로워가 몇이네.. 하는 얘기들을 들으며 때론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얼마가 돼야 많은 편인진 잘 모름..) 나도 저런 걸(?) 시작하면 일희일비할 거란 걸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소수정예의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객관적으로 아싸가 될게 너무 자명했다. 그러면 또 우울해하고 좌절했겠지. 주변에 사람이 없어.. 내 걸 봐주는 사람이 없어.. 이게 나야.. 하면서...
그래서 인기도 없고 자랑거리도 없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지 못하게 애초에 원천봉쇄했다고 할까?
그런 여러 가지의 이유로 시작을 하지 않았다. '피곤해' '시간낭비야'라는 말로 쿨한 척하면서.
스마트폰조차 아주 늦게 바꾼(엄마 아빠보다 더 늦게 바꿈) 그런 내가 브런치 라는걸 시도했다. 그 시작은 '불행'에서 출발되었다. 인생에서 또 한 번의 뒤통수를 맞았다. 연이은 내 불행에 친구 한 명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위로하기도 어려워했고 주말 내 연락이 되지 않는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피를 말리며 연락을 기다리는 친구도 있었다.(너무 무기력해서 그냥 누워만 있었음)
잘못 살아왔던 걸까,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의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던 중 교육원 시절 선생님께서 소식을 듣고 말씀하셨다.
최선을 다했던 시절에 대해 자책하지 말아라. 어떤 시간이 되었든 간에 보잘것없는 시간이란 없다.
혹, 쓰지 않고 견딜 수 없겠거든 다시 써봐라. 그렇다면 너는 써야 한다. 너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것은 니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브런치를 소개해 주셨고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가득 안고 브런치를 시작했다.
뭐든 시작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는 나인지라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려 애썼다. 싸이월드가 있던 당시 정말 무지막지하게 많은 글을 써댔지만 이후 그 자리를 SNS가 대체하면서 나는 글 쓸 창구를 잃었다. 손 일기장을 가끔 쓰긴 하지만 감정이 아주 격해졌을 때만 쓰는 것이라(언젠가 불태우리..) 정기적으로 글 쓰는 곳이 없어졌다. 손쉽게 카카오톡에 연계되어 있는 카카오스토리를 SNS처럼 가끔 짤막하게 쓰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장문의 글로 많은 개수가 되어 있었다.(카스에 저렇게 긴 글을 쓰는 건 나밖에 없지 싶다..) 보는 사람이야 가족 및 최측근 몇몇의 친구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나름 그것도 글이라고 쓰다 보니 제대로 기록을 해야겠다 싶었고 그렇다면 카스에 쓰기 전에 브런치를 메모장 기능으로 사용해보자 생각했던 것이다. 글이 위주인 브런치 구성이 일단 마음에 들었으니까.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보다 더 놀라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정녕 이렇게나 많은 것인가 싶었고 대한민국에 출간 작가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구독자가 세 자리 숫자가 넘는 사람은 흔해 빠졌고 작가들의 이력은 모두 다 화려했다. 전문적이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은 넘쳐났고 매일매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적어 보였다.
그 어떤 특별한 콘텐츠도, 글에 대한 접점도 없는 인생을 살아온 나는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는요... 음.. 여행을 좋아하니깐요.. 여행기를 쓰구요, 또 음.. 이전에 다녀온 여행을 지금 시점에서 복기하는 글을 써볼게요.. 붙여 주실래요?'라고 썼던 작가 신청 포부(?)와 달리 여행기는 꾸역꾸역 쓰고 있다만 이전 여행 복기 글은 단 한 개도 쓰지 않고 [일기는 일기장에] 같은 글만 두서없이 써대고 있다. (계획 대비 성과로 중간평가를 했다면 난 진작에 잘렸다.)
다른 사람들은 매거진도 착착 잘 만들고, 콘텐츠도 일관성 있고 또 다들 바빠 보이는데 자주 글 쓰던데 왜 난 이모양인가... 여지없이 주눅이 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글을 그냥 단숨에 썼다고 했다니깐? 와.. 그게 가능해? 그런 건 타고나는 재능이야. 그런 능력은 노력으로 안 되는 것 같어..."
"물론 그런 면도 있겠지만 그게 되기 위해서는 그분도 그동안 많이 보고 생각하고 써본 내공이 있어서 가능한 걸 거야. 그걸 이제 채우면 되지."
"우리 마카오 가 있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 계셨던 구독자분이 있었는데 해외에서도 매일매일 글을 쓰더라고. 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난 와있는 글 보기에도 바빴는데."
"여행이 아니니까 상황이 달랐을 거야."
내가 브런치를 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아는 유일한 친구는 징징거리는 나를 위로하기에 바빴다.(미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일이 되었다고 이제 나는 브런치 안정기에 조금은 접어든 듯하다.
아무 생각 없었던 사람을 호감으로 보이게 하거나 첫인상이 별로였던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드는 몇 가지 나의 포인트가 있는데 이를테면 1) 비흡연자 2) 맞춤법 올바르게 쓰는 자 3) 여행 좋아하는 자 4) 책을 좋아하거나 글 쓰는 자 이다.
4)의 경우 절대적이지 않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 생각이 많은 사람인 경우가 많고 그 생각이 항상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으나 생각 속에는 진중함, 신중함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글 쓰는 사람을 신뢰하는 편이다. 또한 글이라는 건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반드시 들여야 하는 일이기에 성실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성실한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드물다는 것이 평소 나의 신념(!)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현재까지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온라인 관계는 가볍고 피상적일 거라는 내 편견을 브런치는 깨 주었다.(음.. 100일 만에 너무 성급한 결론일까?)
[일기는 일기장에] 같은 딱히 주제도 없고 내용도 없는 글에 사람들은 라이킷을 눌러주었다. 지나가다 글을 읽은 사람들도 댓글을 달아 주었다. 물론 늘 글이 좋아서라기 보다 때로는 내 라이킷에 대한 회답일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응원과 격려차원의 마음이라는 것도 안다. 뭐든 상관없다. 배려든 위로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운 일이니까.
구독자가 많다고 구독자들이 모든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인기 작가가 반드시 글의 질 때문에 인기 작가가 아닌 것도 알게 되었다. 조회수가 낮은 나의 글 대비 라이킷 수를 보면 오히려 신날 때도 있었다.(뭐야? 결국엔 역시나 일희일비하며 집착하고 있군...ㅋㅋ)
좁은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내가 다양한 직업군에 계시는 분들의 다른 세계 이야기, 또는 접하기 힘든 실제 외국 생활기를 보는 것이 일간지를 읽는 것 같아 즐거웠고 새로웠다.
실생활에서라면 내가 만날 수도 없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더더욱 힘든 사회적으로 성공하시고 명망 높으신 분들과 동등한 관계가 되어(!) 어떤 주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이쯤 되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SNS 스타 사망한 가출 여중생. 알고 보니 오프라인 친구 거의 없어.'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만)
그러면서 미약하게나마 나도 조금 변했다. 그 수많은 여행 카페를 매일 들락거려도 어쩌다 댓글 한 두 개 정도만 종종 쓰곤 했었는데(공격적인 사람이 많아 인터넷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게 두려운..) 요즘은 브런치에서 다른 이들의 글에 용기 내어 댓글도 써보고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곧 엉망진창 망한 연애사 연재를 할지도? 아.. 그러면 진짜 [제발 일기는 일기장에] 악플을 받으려나..ㅎㅎ)
예상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브런치의 글을 카스에 옮겨 쓰고는 있는데(지인들에겐 브런치를 알리지 않음) 내 상황과 감정이 너무 드러나는 글은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친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건 꺼려지는 나의 치부와 자존심 문제랄까. 반대로 가끔은 아무렇게나 막 쓰는 일기, 이를테면 '언니와 함께 참전한 김동률 콘서트 예매 성공기' 같은 건 또 브런치에 차마 못써서 조금 아쉽다.(이게?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름 여기선 정제미(?)를 발휘해서 써요...)
요즘은 하다못해 무슨 레스토랑 이벤트 참여도 다 SNS로 하라고 해서 너무 시대에 도태되는 건가 뭐라도 하나 해야 하나 생각할 때가 있다.(끼리끼리라고 내 친구들도 SNS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계정'이란 건 가지고 있더만..)
"계정이라도 만들어. 그냥 니껀 안 보이게 할 수 있다니깐."
"아니 근데... 나는 안 하면 안 했지, 또 하면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라..."
"쟤 또 하면 밤새 그것만 들여다보고 여행 사진 미친 듯 올리고 그런다."
"어... 사실 나 관종이거든. 난 내가 관종끼가 있는 걸 알아서 그래. 그래서 내가 시작을 못하는 거야. 나 예비 관종 이거든."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봄에 내게 닥친 그 나쁜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남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 나는 제자리에도 있지 못하고 한참을 뒤로 물러서게 되고 말았다.
올해 마지막에서 나는 '올해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내지는 '작년보다 더 불행해졌어'라고 말하게 될까.
표면적으로는 그게 맞다.
그렇다고 증명할 수 없다고,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아무것도'라고 짧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고, 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것에 알레르기가 있을 만큼 싫어하는 내가 새로운 걸 시작했고 온라인상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고 어디서도 얻지 못할 지식과 이야기들을 쌓아가고 있다.
고통으로 시작된 브런치는 내 글을 읽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댓글에 위로받았고 내가 달았던 댓글에는 감사하다는 감동의 말로 돌아왔다.
공감되는 글에 몇 번 라이킷을 눌렀을 뿐인데 브런치 북을 발행하며 나를 언급해주는 분도 계셨고 용기를 주는 말에 한참을 먹먹하게 바라봤던 순간도 꽤 많았다.(감동 잘 받는 타입)
관종끼를 펼친 게(?) 브런치라 다행이다. 불안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높디높은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기는 일기장에] 같은 글일 지라도 열심히 써볼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