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방송된 그알의 음원 사재기에 대한 반향이 뜨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잠잠하다. 아마도 이 역시 그 날 방송이 소개한 조작된 세계의 일부일 거라 생각한다.(검색어 조작, 밀어내기)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증거인지 언제부턴가 요즘 노래는 들으면 도통 금방 질리기만 해서 최신 노래들을 잘 챙겨 듣지 않게 되었다.(아주 유명한 노래들만 아는 수준?) 그러니 멜론이니 지니니 늘 스트리밍 하는 사람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일부 그런 일이 있겠지... 생각하며 모른 척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이었는데 그 진실은 너무 적나라했고 해도 너무 했다.
단순히 음원 사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맛집도, 검색어도, 국민청원도 모두 손쉽게 조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홍보대행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세계는 하나도 믿지 않는단다.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는 날씨, 시간, 기름값 정보 딱 세 개라고 한다.
이쯤 되면 내 주변을 둘러싼 일 중에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는 게 아니라 대부분 가짜라고 믿는 게 속 편한 수준이다. (의심과 경계심이 많다고 지적받는 단점은 이럴 때 갑자기 장점으로 피어나리니.)
불현듯 두어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소일거리 알바라도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찾던 중 제품 평가 같은 것을 써주는 공고를 찾았다.(같은..이라고 쓴 이유는 굉장히 두루뭉술한 문구라 나도 명확히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지만-)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선호한다길래 진짜 무언가를 '잘 쓰는' 사람을 찾는 줄 알고 그래도 나름 공들여 지원서라는 것을 썼는데 한참 뒤 돌아온 회신의 내용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업체에서 제품을 지정한 후 내 계좌로 해당 물품의 금액을 입금해준다.->알려준 사이트에서 구매를 한다.->구매한 후 이를 알린다.(물건이 실제로 배송되지 않도록 업체에서 작업)->배송이 완료된 시점에 제품 구매 후기를 쓴다.->후기를 쓰고 이를 다시 알린다.->업체에서 건별로 달성 금액을 입금해준다.
한마디로 가짜로 물건을 사고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신뢰감이 가도록 자세하게 찬양 일색의 후기를 쓰면 평가 후 이에 맞는 금액을 입금해 준다는 소리다.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명목 아래 맛집, 피부과, 성형외과의 후기가 광고성 글로 도배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진짜 같은 거짓말을 꾸며대고 있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연락이 왔는데 이런 일 이래. 너 들어봤니?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 거야? 부풀려서 쓰는 것도 아니고 생짜로 거짓말 하란 소리잖아."
"요즘 그런 식으로 마케팅 많이 하긴 해. 우리 OO도 그렇게 많이 했거든. 돈이 많이 들어서 나중엔 못했지만. 허위 광고라고 업체는 걸리면 처벌을 받는데 그렇게 고용한 사람은 받는지 모르겠다. 아예 거짓말하는 건 처음 들어보긴 했는데.. 근데 주로 무슨 제품인데? 니가 모르는 쪽이면 쓰기도 어렵잖아."
아니. 친구야. 내 포인트는 그게 아니야. 이렇게 양심 머리 없는 짓을 하는 게 정말 다들 아무렇지 않은 일인 거야? 나 지금 혼자 진지충이야??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흔한 일인 것 같았다. 혼자 바들바들 놀라는 게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느껴져 머쓱하기까지 했다. 마케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집단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탓인지 나는 혼자 별일 아닌 일에 유난스러워하는 현실감 없고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일 뿐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은 쫄보의 마음도 있었고(그알 방송을 보니까 업체만 처벌을 받더라만) 제품을 구입하고 알리고 돈을 입금받는 과정에서 안내를 해주는 사람의 번호와 작업 후 알리는 사람의 번호가 다른 것도 찜찜했다.(의심 많은 성격이라 위에 언급했음) 보통 그런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카톡 프로필에 업체 관련 문구나 사진이 있는 게 일반적인데 너무나 평범한 일반인 같은(!) 사진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도 이 일을 뒤로 몰래(!)하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경계심도 많다고 위에 언급했음)
생각은 일파만파로 퍼져 다른 건 몰라도 바르고 정직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이런 식으로 배신(!)할 순 없고 푼돈 벌자고(물론 건수가 많으면 짭짭할 수입이 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의심이 많아 잘 믿지 않음) 그런 일을 자행하면서 그래도 간간히 TV에 나오는 반 공인(?) 아빠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순 없었다.(안 하면 그만이지 도대체 어디까지 생각을 뻗칠 텐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도 한때나마 글 쓰는 일을 꿈꾸었던 사람으로서 짧더라도 그런 가짜 글을 쓰고 돈을 받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거창함이 지나쳐 우주 끝까지 갈듯.. 진지충 맞나 봄.)
하지만 충격이었던 건 업체 피셜이긴 하나 이런 일을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라는 것이다.
인정하기 무섭지만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란 건 명백한 사실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요지경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