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Aug 13. 2020

누가 뭐래도 그들에겐 절절한

미스터트롯 첫 콘서트 관찰기

이 시국에 콘서트??

그렇다. 당연한 반응이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올해 내 가수들의 콘서트도 줄줄이 취소되었고 여행과 마찬가지로 당분간은 기약이 없는 일정이니까.

 그런 내가 죽어라 콘서트 예매를 시도했다. 그토록 말 많았던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말이다. 욕을 바가지로 먹을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주 이야기는 '재미났던 콘서트 후기'가 아니라서 비난을 감수하고 써본다.


그냥 몰래 한번, 슬쩍,

 모든 엄마 아빠가 열광했다는 미스터트롯에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프로 이건만 만날 때마다 엄마가 미스터트롯 얘기를 하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출연진들의 나이, 과거, 특징 들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물론 채널을 돌리기만 해도 여기저기 나와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지만.

 그들이 콘서트를 한단다. 지금 이 난리에?? 매크로가 등장하기 이전 꽤 오랫동안 예매의 신으로 불렸던 나는 시험 삼아 콘서트 티켓팅에 참전해본다. 엄마 아빠 의중은 묻지도 않고.

 티켓팅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된다고 해도 코로나로 어수선한 이 상황에 부모님이 선뜻 가신다고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일단 해보고 생각하기로 한다.

 첫 번째 시도는 보기 좋게 낙방(?)

 ... 얘네들 장난 아니네? 손도 못쓰고 패배했다. 그런데 얼마 후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공연이 연기되어 일괄 취소 후 다시 예매를 한단다. 기존 예매자들에게 선예매 기회를 주고 남은 표를 일반 예매로 돌린다고 했다. 그럼 뭐 몇 자리 나지도 않겠네? 심드렁하게 일반 예매에 시도했는데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SR석 두 자리를 선점했다.

 내 마음대로 정한 날짜라 조심스럽게 부모님께 콘서트 얘기를 꺼냈다. 안 가신다고 할 줄 알았다. 지금 상황에 무슨 서울까지 가서 콘서트를 보니?라고 할 줄 알았지. 근데 뜻밖이었다.

 '그럼 콘서트 볼 수 있는 거야?'

 카톡의 행간에서 들뜬 엄마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었다.

 아.... 가고 싶었던 거야? 이 시국에?


내 이럴 줄 알았지.

몇 번이나 연기된 콘서트이니 그때 가봐야 아는 거라고, 못 볼 수도 있는 거라고 미리 여러 번 말해두었다.(너무 들떠 보여서) 그런 와중에 티켓은 배송되었고 그 티켓을 전달했을 때 엄마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는데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송파구의 집합 금지 명령으로 첫 콘서트 3일 전 공연은 다시 취소되었다. 이 와중에 무슨 콘서트냐며 여론은 더욱 나빠졌지만 엄마는 그보다는 그럼 아예 취소된 거냐, 연기된 거냐 물었다.

 "일단 임의 날짜로 변경될 거라고 하는데 기다려 봐야 할 듯."이라고 답을 하면서 불안했다. 제발! 티켓팅을 다시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그 끔찍한걸 또 하라고 하지 말기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공지는 급작스레 나왔고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일괄 취소 후 재 예매였다. 기존 관객보다 더 적은 수로 공연을 할 예정이고, 방역을 위해 공연과의 시간 간격은 더 벌리고.. 어쩌고 저쩌고... 젊은 나도 이해하기 벅찰 장문의 유의사항과 안내사항이 전달되었다.

 결론은 기존 예매자들에게 선예매권을 주겠다. 싫으면 취소해라! 란 얘기였다. 관객도 줄이고, 예매 한도 장수도 줄어들며 예매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보기 싫음 안보는 거고 보고 싶은 사람이 철저하게 을 일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라고.

 그 전 예매는 나 혼자 몰래 한 거라 부담이 없었지만 갈 거라고 마음먹고 신난 마당에 다시 하는 예매는 부담백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다시 선택한 날짜는 탑4 중에 한 명이 그 주에만 참여한다는 골든 주였고, 더더군다나 첫 공연 날짜였다. (공연은 첫공, 아니면 막공 아니던가)

 예매 한 시간 전부터 긴장감에 아무것도 못하다가 어차피 띄어앉기로 두 좌석 연석을 못하는 마당에 나는 모험을 하기로 하고 가장 앞 블럭을 눌러 닥치는 대로 좌석을 클릭한다.

이 어려운 걸 제가 해냈습니다.

세상에! 성공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좋은 자리로!!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심드렁한 척(?)했던 아빠도 좌석을 보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헐! 대박!이라고 리액션을 했다. 뭐야.. 아빠도 엄청 가고 싶었나 보네. 왜 그동안 아닌 척 내숭을?!

 근데 계속 마음 한 구석이 걱정으로 무겁다. 별일 없이 이 콘서트가 진행될까. 이렇게 보내는 게 정말 잘하는 걸까.


효녀 아닌 자가 하는 효녀 코스프레

 촉박한 티켓팅으로 티켓은 4시간 전부터 현장 수령으로 진행되었다. 예매 내역서와 예매자의 신분증(또는 사본)이 있어야 하고 문진표 작성과 QR 코드 인증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엄마 아빠에게 설명하고 맡겨도 될까? 못 미덥다. 불안하다. 결국 나는 이날 오후 반차를 낸다.

 사람이 붐비기 전 티켓을 수령하려고 거의 4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이 바글거린다. 연령대가 높은 공연이니 그렇겠지만 이미 어르신(!)들은 팬클럽 옷을 맞춰 입고 나보다 일찍 도착해있다. 티켓을 수령하고 봐 두었던 맛집 몇 군데 위치를 답사하려고 가는데 경연에서 1위를 한 팬들이 이곳저곳에 포진(?)해 자기 가수의 부채를 지하철 역 입구에서 나눠준다. 근데 나는 왜 안 주지? 누가 봐도 공연장 갈 나이처럼 안 보이나? 비 그친 후 습도가 높아져 더워서 나도 부채 필요한데? 공짜면 나도 갖고 싶은데? 슬금슬금 몇 걸음 뒤 걸음질 쳐서 물어본다.

 "저기... 이거 그냥 주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표정이 달라진 그의 팬은(아.. 너도 우리 과?! 같은) 반갑게 부채를 꺼내 주며  "우리 영웅이 많이 사랑해주세요"라고 한다. 즐거워 보였다. 괜스레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랬구나.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빈도가 적었구나.

  저녁 밥집 위치를 알아낸 후 엄마 아빠가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 와 벤치에 앉아 책을 꺼내 든다. 아까보다도 한층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가수 별로, 팬클럽 별로 색깔이 정해져 있나 보다. 파란 옷의 군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보라색 무리(!)들도 꽤 많다. 내 옆의 아줌마는 보라 군단의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부채 좀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죄송해요. 이건 우리 OOO(팬클럽 이름으로 추정)만 드리는 거거든요."

 못내 미안해하며 거절하는 그 표정에서 자부심과 신명남이 읽힌다.

 아.. 파란 군단은 팬덤이 압도적이라 부채도 무료로 나눠 줬나 보구나.. 생각하다가 이내 독서에 집중할 수 없어서 책을 덮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아줌마라 불리는 중년 여성들. 팬클럽에 맞는 옷을 입고 각종 도구(스티커, 스카프, 그것도 아니라면 팬클럽에 맞는 깔맞춤을 한 액세서리 등)를 맞추고는 각자 분주하다. 몹시 즐거워 보였다. 초롱초롱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는 할 수 없는, 자발적 열정이 시키는 일사불란한 행동이었다. 아까 받은 부채를 살펴보았다. 뒷면에는 아이돌 팬클럽에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팬클럽의 규모와 행동력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규모, 체계성 무엇? 아이돌 저리 가라.

 왜 처음엔 신기하다고 생각했을까. 10대만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당연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도 아닌데. 아줌마는,  또 나이 들면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읽었는데 연예인 좋아하는 빠순이 DNA도 타고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어렸을 때도 연예인을 별로 안 좋아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연예인에 별 감흥이 없더라. 나는 예나 지금이나 처음 좋아한 연예인은 환승 없이(!) 끝까지 좋아한다.(하고 있다.) 기본 10년. 그리고 20년이 넘는 내 가수들까지. (물론 환승은 하지 않지만+a로 사람 수가 늘어나긴 한다...) 아마 나도 40대, 50대, 그 이후가 되어도 내 가수 공연을 저렇게 줄기차게 쫓아다니리라. 그런데 그때 젊은이들이 나를 주책맞게 바라보면 서러울 것 같다. 창피할 일도 아니건만.

 단지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다.

 취미는 공유되지 않는 배우자, 다 키워 놨더니 자기 인생 사느라 바쁜 자식들, 어디 한 군데 즐겁게 마음 둘 곳이 없었을 것이다.

 여행 못 가고, 콘서트 못 간 지 고작 반년이 넘은 나도 사는 낙이 모조리 사라졌다고 투덜대는데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음을 아는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대상과 마음을 쏟을 곳이 있다면 어떻게 전력투구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이 사실 꽤 오랫동안 마음이 뿌리내릴 곳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방증 같아 어째 마음이 짠했다.(지레짐작 오지랖일 수도) 그리고 그제야 왜 그들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프로그램에, 또 출연자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 일견 이해가 되었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곳. 다 먹고 나서 엄마와 내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아빠와 사장 아주머니는 공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밥 먹으며 우리가 주고받던 대화를 듣고 사장님은 부모님이 콘서트에 갈 사람이란 걸 아시고 아빠에게 공연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던 모양이다.


 사장님 : 어떻게 그래도 표를 구하셨네요.

 엄마 : 얘가(나) 예매를 했더라고요.

 사장님 : 딸이 대단하네.

 나 : 어휴, 예매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사장님 : 그래도 딸이 효녀네. 우리 애들은.... 신경도 안 써...


 공연이 끝난 후 아빠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했다. 엄마와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우자마자 사장님이 다가와 이것저것 공연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거다. 공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누구를 좋아하는지, 티켓 가격은 얼만지..

 아.... 공연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시며 이렇게 공연 전, 후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셨을까. 그런데 정작 본인은 한 번도 공연장에서 공연을 못 보신 걸까? 그래서 이렇게 자식이 예매해주는 공연을 보는 동년배를 볼 때마다 부러워하시는 걸까?(지레짐작 오지랖 2) 철없이 예매하느라 힘들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짐짓 죄송스러웠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자신을 위한 투자라는 걸 해본 적 없는, 생각조차 한적 없는 우리네 엄마 아빠들은 이제 시간이 많아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제 좀 재미있게 일상과 인생을 즐기고 싶은데 노인을 위한 문화는 한정적이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나마도 자식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의 흐름은 빠른데 쫓아가긴 너무 버겁다. 이번 콘서트 예매 통계를 봐도 20~30대 여성 예매율이 압도적으로 1위라고 한다. 대부분 딸들이 예매를 했단 뜻이다.(아들은 왜 없는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20대 청년의 정착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60대 노인의 남아 있는 삶에 대한 막막함이 더 와 닿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돌이킬 수 없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무기력하고 서글플 수밖에 없으니까.

 긴 시간의 공연, 늦은 귀가로 피곤할 텐데도 새벽 2시가 다돼가도록 엄마 아빠의 콘서트 후토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유명한(?) 혹평가인(흔한 말로 투덜이) 아빠도 "확실히 티비로 보는 거랑 다르더라. 기획 잘했더라." 라며 모처럼 호평을 하며 흡족해했다.

 걱정 많았고 여전히 아직도 마음속엔 불안함이 남아 있지만 잘 보았으면, 그래서 잠시나마 행복했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의미로 다른 엄마 아빠들도 조금 다른 일상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이왕 진행하기로 한 거면 전국투어 공연이 철저한 방역 아래, 별일 없이 무탈하게 마무리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뒤통수 내가 때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