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어느 한 젊은 여자의 연애 실패담
코로나 양성이 떴고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아무래도 이상 증세가 보이긴 했다. 휴대용 휴지 한 팩을 콧물 닦느라 썼던 것, 갑자기 몸의 중력을 느꼈던 것, 결정적인 것은 집을 들어가려고 열쇠를 꺼내는데 쇠꾸러미에서 소름 끼치는 한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날 밤부터 땀으로 이부자리를 적시면서 고생 좀 했다.
자체 자가격리 중으로 뜻하지 않게 시간이 생겼다. 이런 때 미뤄둔 취미 생활을 하자는 심산으로 아껴 읽는 책을 꺼내 들었다. 웬일인지 쉬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눈에 열이 오른 까닭일까 해서 가볍게 손이라도 움직이고자 뜨개질을 떠보았으나 그것도 금방 내려놓았다. 마음이 심란했다.
오늘 한 달간 썸을 타던 상대에게 한 통을 문자를 받았다. “학업 등 중요한 일 때문에 연애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전화와 문자로는 관계를 이어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 명백한 거절의 말을 들었다. 여러 색채를 곁들어 두 사람의 모습을 칠해볼 상상으로 들떴던 나를 비웃기라도 한 듯 단숨에 끝이 났다.
그와 나의 거리 425km, 자동차로 약 4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다. 같이 있어도 부족해서 계속 보고 싶은 상대가 연인이기에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 상당히 망설였다. 국가 간 혹은 도시 간 롱디를 하는 커플들을 바라볼 때면 나는 못해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던 내가 감히 이들과 같은 열차에 탑승해도 될까 하며 고민해보고 또 고민했다.
현 상황을 고려해 롱디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현재 논문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띄엄띄엄 만나는 연애형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오히려 가끔 만나면 애틋함이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나는 성숙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이성의 성적 매력에 끌려 가볍게 만나는 것보단 정신적인 교감이 주를 이루는 안정적인 연애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소개팅을 수락했고 한 번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차분하지만 미술 작품을 볼 때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쳐 주고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는 사람이었다. 허세가 없었으며 어떤 엉뚱한 얘기를 던져도 흥미 있게 받아주고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옷에서 나는 향기로운 세제 냄새와 길고 예쁘게 생긴 섬섬옥수는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열리도록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떠한 체를 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데이트를 마친 후 우리는 이주 동안 카톡을 이어 나갔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밤에는 음악 취향을 공유했고 생각과 감정을 나눴다. 기뻤다. 이런 펜팔 형태의 사랑도 가능하구나. 관계를 잘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다음 만날 시간을 조정하는데 서로의 스케줄을 고려해봤을 때 빠른 게 2주 이내였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카톡의 텀이 천천히 길어지다가 참을 수 없는 한계치를 넘었을 때 그는 이별을 선고했다. 앞선 이유로 말이다. 본인도 롱디를 각오하고 나온 것일 텐데 저 성의 없는 변명을 수긍해야 할까. 혹시 나에게서 실망한 것이 있었지만 말하기 민망해 표면적인 이유로 거절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앞선 이유로 거절할 거였으면 정이 생기기 전에 말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말실수를 한 것이 있던가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여러 개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면서 나눴던 대화 중에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 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운명적인 사랑을 경험했다고 하는 이들은 보통 극단적인 상황(위험한 상황, 흔치 않은 상황), 즉 만난 당시 환경에 대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고 주장했다.
*잠깐 이 연구를 설명하자면 좁고 흔들 다리 앞과 안정적인 다리 앞에서 어떤 한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가짜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번호를 전해줬을 때, 흔들 다리 앞에서 만난 남성의 경우 50%의 경우로, 일반 다리 앞에서 만난 남성은 10분의 1 경우로 해당 여성에서 연락했다. 당연히 같은 여성이 두 곳의 다른 자리에서 남성들에게 번호를 넘겼고, 이 번호로 전화하면 연구팀에게 연락이 갔기 때문에 연구팀은 이를 수치화시킬 수 있었다. 연인들이 바늘 같은 가능성을 뚫고 서로의 짝을 만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따져봤을 때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첫 소개팅 만남에서 했던 것이 잘못일까.
사랑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도구라고 했던 것이 그 이유일까.
언제 한번 꿨던 꿈을 설명해 줄 때 너무 장황하게 설명해줘서 그럴까.
수차례 질문했던 의미 없던 만약에 라는 질문에 질려버렸던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갑자기 그의 마음이 변해버린 계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인생에서 수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함에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세월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잘 잤냐는 상냥한 안부 카톡이 알림 창에 뜨지 않는 것이, 그와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게 된 사실이 서글프다. 매번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두꺼운 문을 세워 두는데 이번 일로 철문을 지키는 두 명의 파수군까지 자리 잡은 듯 하다.
짧은 추억을 흠뻑 그리워하고 나면 그의 흔적을 마음에서 온전히 지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