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2017)
현대 사회는 집단 독백 사회입니다. 모두들 자기 얘기만 주야장천 하죠. 모두들 자신이 옳다, 자신에게 공감해주라고 계속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려 들지도 않죠. 워마드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보세요. 남자에게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면서 자신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공감해달라고 하지만 정작 남의 고통에 대해선 공감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 소수자가 겪는 차별, 장애인이 겪는 고통, 그리고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심지어는 위해까지 가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건 래디컬 페미니스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가 다 그래요. 2010년 이후 최대 트렌딩 키워드가 벌레 충(蟲)과 ~신병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똥꼬충, 일베충, 젠신병자 등등... 상대방을 벌레보다 못한 존재라 비난합니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려 들지도 않고요. 결국 모두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된 겁니다. 일부 특정 계층만 문제 되는 게 아니고요.
손원평의 영 어덜트 소설 아몬드(2017)은 그런 면에서 시대정신을 아주 잘 집어냈다고 생각해요. 선천적으로 감정이 결여된 소년 윤재의 눈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공감능력 결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아이를 죽도록 때리는 사람들, 눈앞에서 할머니가 죽는 걸 본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본 아이, 무표정하게 재난 뉴스가 나오는 TV를 보는 사람들, 그리고 윤재에게 안됐다고 말하면서 소년을 비웃는 사람들을 통해서요. 비록 주인공에겐 감정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사이코스러운 면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서 끝났다면 이 소설은 별 볼 일 없었을 겁니다. 그냥 냉소적이고,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는 소설 말이죠. 흡사 히피들이 대마초 한 여섯 대 피우고 쓴 글처럼요. 하지만 작가는 '곤' '윤재'의 교감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곤은 여러 차례 입양과 파양을 거치면서 크게 삐뚤어진 아이입니다. 한 번 소년원에 갔다 오기도 했고요. 결국 어머니가 죽기 전에야 친부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곤의 머릿속엔 갈 길 없는 분노와 반항기가 가득하죠.
곤은 현대 사회를 상징합니다. 모두들 이유 없는 분노에 차 있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무관심하죠. 윤재를 괴롭히는 장면이나 단지 세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철사의 불량 클럽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곤의 근본에는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곤이 나비를 죽이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곤은 윤재 앞에서 힘없는 동물인 나비를 죽입니다. 그러면서 곤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곤은 나비의 잔해를 치우면서 몹시 울었습니다. 곤은 인간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인간성은 윤재와의 교감을 통해 회복됐습니다
두 인물, 그러니까 곤과 윤재는 교감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합니다. 곤은 마지막에 윤재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진심이라는 말을 적은 편지를 보냅니다. 언제나 분노에 차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곤이 처음으로 윤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교감을 통해 회복된 인간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죠. 또, 윤재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낍니다. 물론 자각은 못 했지만 말이죠. 심장이 뛰고 열이 나는 걸 감기라고 착각해 감기약을 먹긴 했지만, 이는 감정을 못 느끼던 윤재에게 감정이라고 할 것이 생겼다는 중요한 복선입니다.
냉소적 관찰자인 윤재와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곤이 인간성을 회복한 것은, 다시 말해 현대 사회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교감이고요. 이 둘이 교감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했듯이, 현대인 역시 상호 간의 교감을 통해 그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린 더 이상 서로에게 ○○충이라며 비방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겠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특별한 말과 행동이 아닌, 진정한 교감입니다.
읽기 굉장히 편했어요. 호흡이 짧고, 문장도 길지 않다 보니 읽기 쉽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지루하지도 않았고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시간 죽이는 데에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또, 주제의식을 찾기가 굉장히 쉬웠어요. 물론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기엔 학생들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교감의 중요성이란 핵심 주제는 누구나 정확히 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소설의 특색이 살아있어서 그래요. 전에 제가 김진나 작가의 '소년아, 나를 꺼내 줘' 리뷰하면서 너무 재미없다고 얘기했었잖아요. 그 이유로 소설의 특색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고요. 이 소설은 그 소설과 180도 달라요. 감정이 없는 사람이 현대사회를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소설이다 보니 특색이 없을 수가 없죠.
이 소설이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쓴 방법은 되게 특이해요. 어떠한 것이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그것이 결여된 사람이 판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거든요. 이런 유의 소설이 전에 시도된 적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제가 알기론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되게 신선했어요. 주제를 명확히 하는 것에도 도움이 됐고요.
소설의 구조를 전반부 - 중반부 - 결말로 나눠보자면, 전반부에선 감정이 없는 소년 윤재를 통해 현대사회의 사이코패스스러운 면을 비판해요. 그리고 중반부에선 주인공들이 모두 모이고, 사건이 진행돼요. 여기서 작가는 전반부에서 제시되었던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아요. 그리고 결말부에선 모든 사건이 종료되고, 모두들 문제를 해결하게 되죠. 주제 부각법은 특이하지만, 소설의 내용은 말 그대로 정서 중의 정석이에요.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스토리 구조가 안정적이죠.
또, 작가는 세계를 진짜 살아움직이는 세계처럼 만들기 위해 주변부를 한정적으로 묘사했어요. 직관적으로, 그러니깐 시각이나 청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부분이 없으니 대신 빈 공간을 만들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것이죠. 마치 자기 주변의 일처럼 느끼게끔 말이에요. 결국 이 때문에 독자들이 이 세계를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고요. 소설을 읽다 보면 느끼시겠지만, 조금 특이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함에도 가공의 세계라는 느낌이 전혀 안 나거든요. 이름도 특이해요. 곤, 도라. 사실 이런 이름 하나하나가 소설에 위화감을 느끼도록 만드는데, 여기선 이게 전혀 안 느껴져요. 이건 정말 본받고 싶어요.
총평을 내리자면, 이 소설은 제가 생각하는 청소년 소설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잘 짜인 구조, 어러운 주제의식을 어렵지 않게 녹여내는 스토리, 위화감 없는 묘사, 그리고 재미까지요. 이 부문에서 이 소설은 김진나 작가의 '소년아 나를 꺼내 줘'에서 잡지 못한 것들을 모두 잡았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은 별 다섯 개를 줘도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전 책에서 책 읽는 게 나오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근데 그게 나와요. 그거 하나는 좀 뺐으면 좋겠어요. 그 장면에서만 위화감이 확 들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