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밤을 지배하는 귀신새
휘이이 호오오. 휘이이 호오오.
밤마다 기묘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한 건 며칠 전 부터였다. 처음 휘파람 소리를 인식한 것은 새벽녘에 물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끊어질 듯 갸냘픈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택지는 이웃이다. 그래, 이웃 간의 예절 따위는 잊은 누군가가 새벽 두 시에 갑자기 휘파람을 불고 싶은 욕망에 빠져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집이 첩첩산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집 주위 반경 500m에는 이웃집이 없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마른 목을 축이려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휘파람 소리에 손만 축축해졌다.
다음날 밤에도, 그 다음날 밤에도 역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호루라기 소리처럼 높은 휘이이- 소리 이후에 반 템포 쉬고, 조금 더 낮은 피치의 호오오-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다행히 불을 킨 상태로 휘파람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처음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삼일 째 되던 날, 나는 용감하게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듯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경이로운 집중력과 끈기를 가진 자임에 분명했다. 밤이면 밤마다 몇시간이고 휘파람을 불어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이곳에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나는 너무나 당연한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었다. 사람도 귀신도 아니라면 동물일 것이다.
휘파람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밤마다 휘파람 소리. 휘파람 소리 울음.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검색어를 조금 수정해 보았다. 밤에 휘파람 소리 새. 가장 상위에 떠오른 결과물은 < ‘히이~ 호오~’ 귀신 울음 소리 내는 여름철 철새 > 라는 제목의 인터넷 뉴스였다. 히이~ 호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저 끈질긴 휘파람 소리의 범인을 찾아낸 것이다. 범인은 바로 ‘호랑지빠귀’라는 새였다. 며칠 밤 나를 괴롭힌 이 녀석의 별명은 귀신새라고 한다. 특유의 오싹한 울음 소리는 주로 한밤중에 시작되어 새벽에 절정을 이룬다고 하니, 참으로 탁월한 별명이 아닐 수 없다.
호랑지빠귀는 이웃 인간의 안온한 밤을 위해서 조용히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나는 단념하기로 했다. 대신에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 녀석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았다. 울음 소리 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외양이다. 마치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독특한 황갈색 깃털이 눈에 띄었다. 황갈색 위에는 검은색의 초승달 모양의 비늘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혹부리 영감에게 혹이 있다면 호랑지빠귀의 노래주머니는 바로 저 깃털 위 초승달임이 분명했다.
호랑지빠귀는 여름철에 주로 볼 수 있는 새라고 한다. 그러니 나는 이 여름이 다 가도록 납량특집 bgm 같은 저 휘파람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다. 익숙해지고 나니 저 기이한 울음소리 덕에 밤공기가 조금 서늘해지는 것도 같다. 나도 휘파람을 불어 호랑지빠귀의 노래에 화음을 넣어볼까 하니 돌아오는 건 엄마의 핀잔 뿐이다. 뱀이 나온다나. 다른 데면 몰라도 여기선 신빙성 있는 말이다.(우리 집 마당엔 종종 뱀이 벗어놓고 간 허물이 버려져 있다.) 나는 합주를 그만 둔다. 창문 너머로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만 고요한 밤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간다.
덧)
'히이~ 호오~' 귀신 울음소리 내는 여름철새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gnnews.co.kr)
상단의 사진 출처는 내가 처음으로 찾아냈던 이 뉴스에서 가져왔음을 명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