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K의 죽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손에는 부채 혹은 얼굴만한 손선풍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작은 바람들로 이 막강한 더위를 어떻게 물리치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2024년 40도를 웃도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물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감쌌고, 불쾌지수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지친 일상에 짜증을 불러오는 더위가 더해지면서 날카로워진 도시. 사람들이 경비원 K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해는 졌지만 찌는 듯한 저녁 시간. 네모난 티브이에서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앵커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듣기 좋게 전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비원 K의 죽음은 뉴스 중반쯤에서 약 2분 정도 이어졌다.
누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사람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향한다. 그 죽음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고, 거기다 그 죽음이 어떤 사인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 관심은 증폭된다.
- 경비원 K 씨는 오늘 아침 7시경, 서울 K구에 위치한 Y아파트 경비실에서 주민 A 씨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주민 A 씨는 이른 아침, 경비원 K 씨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경비실을 방문했다가 K 씨가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는데요. 주민 A 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 어휴, 어휴, 아직도 떨려요. 다른 일은 아니었고. 오늘 아침에도 주차 문제로 항의하러 경비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더라고요. 계속 불렀지만 이상했어요. 낌새가 싸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숨도 쉬지 않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어요. 바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죠. 아휴, 정말 우리 아파트에서 이런 불길한 일이 일어나다니……
- 경비원 K 씨는 작년 겨울부터 Y아파트에서 약 10개월 간 근무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경찰은 경비원 K 씨가 사망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 중에 있습니다. ABC 뉴스 김 깔끔 기자였습니다.”
어휴, 이 무더운 여름이 어서 지나가야 할 텐데.
선선한 가을이 오면 좀 나아지려나.
경비원 K, 아니 Y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영철은 올여름 내내 이 말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영철은 매일같이 Y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며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대면했다. 날이 더워질수록 주민들이 내뿜는 짜증은 거칠고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더위 탓이었을까. 아파트를 새로 짓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끔찍한 주차 문제 때문이었을까. 몸이 힘들어지면 따뜻함이나 배려 같은 고귀한 감정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영철은 잘 알고 있었다. 영철은 둘 다 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런 이유로 지긋지긋하고 끈적이는 곰팡이 같은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물론 가을이 온다고 해서 Y아파트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Y아파트에 입사한 겨울부터 영철을 가장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은 아파트 주차 문제였다.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Y아파트는 옛날 아파트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고층에 복도형으로 늘어져 있는 아파트였다. 과거에만 해도 지하 주차장을 크게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지하 주차장이 2개 정도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 차는 지상 아파트 앞에 주차해야 했다.
단지 내 총세대수는 350세대. 아파트가 감당할 수 있는 주차 대수는 고작 370대였지만, 보통 한 세대당 두 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실제 Y 아파트 내에서 이용되는 자동차는 520대에 달했다. 매일 밤 퇴근이 늦은 순서대로 150대의 차들이 갈 곳을 잃고 단지 내를 배회하다 2중, 3중, 4중 주차를 하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자정이 넘어 퇴근해 피곤에 찌든 사람들은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 배회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 주민들은 경비실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 되면 다시 주차전쟁이 일어났다. 이중, 아니 삼중으로 주차된 차들의 주인에게 일일이 전화를 거는 것이 영철의 첫 업무였다. 일찍 퇴근해 알맞게 주차된 차 뒤에는 4대의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시간을 보냈고, 결국 출근길 시간에 쫓겨 사람들은 독이 바짝 올랐다. 사람들의 욕지거리도, 이른 아침 단잠을 깨고 나온 차주의 날 선 짜증도 온전히 경비원들의 몫이었다.
입주민 회의에서 주차 문제 안건으로 수차례 토론을 벌였다. 차가 2대인 집이 차를 1대로 줄이거나, 아예 차를 사용하지 않는 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밤늦은 귀가 시간과 출근하는 아침마다 주차 전쟁은 극으로 치달았다. 주민들 간의 신경전은 날이 덥고 습해질수록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살벌한 싸움의 중심에는 영철을 포함한 네 명의 경비원이 무력한 방패막이처럼 서 있었다.
그날도 열대야가 지속되던 밤이었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시원함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1동에서 109동까지 순찰을 다녀온 영철의 등줄기에서는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경비실 문을 열자, 갇혀 있던 후끈한 열기가 영철의 얼굴을 덮쳤다. 경비실 안 온도계를 보니 33도. 더위가 무섭게 찾아들고 있었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조차 틀 수 없었다. 얼마 전 관리사무소 직원이 영철을 찾아와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김 씨 아저씨, 주민들이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항의가 아주 많아요. 김 씨가 경비실에서 선풍기 트는 거 지나가는 주민들이 봤나 봐요. 항의하러 몇 명이 왔는지. 좀 더워도 경비실 안에서는 선풍기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부채나 뭐 손선풍기? 아시지요? 주민들 전기는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떻게 좀 해보세요.
새벽 1시 30분.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려는데, 109동 앞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영철이 있는 경비실은 109동과 약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밤의 정적을 찢고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바로 옆에서 싸우는 듯 생생했다.
- 어쿠, 이게 또 무슨 일이야.
영철은 또 불상사가 생겼나 싶어 손전등을 챙겨 들고 109동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아니, 이봐요 아저씨! 아무리 주차 공간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삼중 주차를 해놓으면 어떡합니까? 거기다 핸드브레이크까지 채워버리면 내일 아침에 나는 어떻게 나가라는 거예요? 나 새벽 장사 나가야 한다고요.
- 이 아줌마야, 말 똑바로 해! 밀고 나가면 될 거 아냐, 밀고! 그리고 핸드브레이크 안 채웠다고 몇 번을 말해? 나 일하다 방금 들어왔어. 그런데 전화해서 이 난리를 피우면 어쩌라는 거야!! 이거 정말 미친 X 아니야!!!
- 뭐 미친 X???!!!!!
이중 주차된 차를 사이에 두고 중년 남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을 즈음, 영철이 숨을 헐떡이며 손전등을 들고 현장에 도착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풍채가 좋은, 잠옷 차림의 여자는 영철을 보자마자 '잘 만났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철은 그녀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간 그 짧은 찰나의 흔적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여자는 이내 엄격한 사감 선생님 같은 표정을 짓더니 영철에게 빠르게 쏘아붙였다.
- 아저씨! 지금 이 사달이 났는데 이제 오면 어떡해요? 우리 입주자 대표 회의 때 주차 공간 없어도 이중 주차 안 하기로 했잖아요. 일을 이따위로 하실 거예요? 주차 단속하는 거 아저씨 일이잖아요. 자꾸 일을 이렇게 처리하니까 우리가 피곤해지잖아요. 아우, 짜증 나! 일하려면 제대로 좀 하세요!
여자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빽 질렀다. 영철에게는 어떤 잘못도 없었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영철은 고개를 숙인 채 며칠 전 이른 아침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날 아침 109동 26층에 사는 남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는 주차문제로 영철을 종종 찾아왔기에 낯이 익었다. 그날은 월요일 저녁이었는데 3중 주차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다른 날과 비교할 때 아파트 단지 안에 더 많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차 공간을 찾다 못한 26층 남자는 영철이 있는 경비실로 찾아와 소리를 질러댔다. 순간 남자의 입에서 희미한 알코올 냄새가 흘러나왔다. 불그스름한 얼굴을 한 남자는 다짜고짜 영철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밀쳤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공격에 영철은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는 영철이 입고 있는 경비복 칼라를 휙 잡아 끌어당기며 윽박질렀다.
- 너 같은 노인네들 먹여 살리려고 내가 관리비 내는 거야. 그럼 길바닥을 닦아서라도 내 자리를 만들어 놔야지.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아, 나이 먹고 할 일 없어서 여기 앉아 있으니까 입주민이 우스워 보여?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영철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주 무거운 돌이 가슴 위를 사정없이 짓누르는 기분에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가슴은 쇠방망이로 두드리듯 요동치고 있었다. 괜찮다고 숨을 쉬어 보려 했지만 커다란 코끼리 다리가 가슴 위를 짓이기는 듯한 아픔이 찾아왔다. 영철은 가슴을 움켜잡고 경비실 벽 뒤로 힘없이 쓰러졌다. 맥없이 넘어진 영철의 모습에 화가 좀 풀린 걸까. 26층 남자는 영철의 발치에 가래침을 쾍 뱉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아파트 쪽으로 사라졌다.
영철은 남자가 가고 약 30분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자신을 지켜줄 울타리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소속 경비업체는 고객의 폭언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으나, 현실의 법은 종이 위에서만 존재했다. 영철의 소속 업체인 ‘월드보안’은 영철을 보호하는 것보다 입주자 대표 회의와의 도급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단지에서 영구 제명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영철은 새벽에 있었던 일에 대해 관리소장에게 털어놓았지만 관리소장은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김 씨, 웬만하면 참아요. 그 사람 입주자 대표랑 형 동생 하는 사이인 거 몰라? 업체 입장에서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재계약 안 되면 어쩔 거야. 당신 잘리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우리 먹고는 살아야지.
영철은 그제야 자신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갑인 입주자 대표 회의, 을인 관리사무소, 병인 경비업체, 그리고 ‘정’조차 되지 못한 무(無)의 존재 경비원 김영철.
주민들은 민원을 이유로 경비업체를 통째로 갈아 치울 수도 있었고, 경비원 하나쯤은 ‘주민 마찰’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여 쫓아낼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다. 강력한 힘이.
영철에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그 힘은 그들 사이의 균형점을 무너뜨렸고, 김영철을 한없이 무력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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