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경비원 2

당신의 가족이 그 자리에 서있다면.


- 여보, 오늘 앞집 새댁 야근이래. 저녁까지 애기 봐달라고 부탁했거든. 그래서 늦으니까 혼자 있어도 밥 잘 챙겨 먹고.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중간에 집에 못 올 것 같아. 꼼짝할 수 없어서 베이비시터도 쉽지 않네. 조심스러워. 식당 이모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고.


아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내는 소파에 놓인 짙은 갈색 패딩을 걸쳐 입었다. 10년 전 회사 승진 기념으로 아내에게 선물했던 패딩이었다. 현관문을 나서려는 아내 등 뒤로 말을 던졌다.


- 여보......... 지난번에 지원했다던 Y아파트. 기억나? 합격이래.

- 꺄!!!!!!!!!!!!!!!!!!!! 여보, 이제 다시 일하는 거예요?


아내는 신던 신발을 다시 벗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내 입 주변과 볼 주위에 수십 년에 걸쳐 자리 잡은 주름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아내는 성큼 다가와 소파에 앉아 있던 내 손을 잡았다. 주름진 아내 손이 주는 감촉이 전해져 왔다. 손만 잡았을 뿐인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또 갱년기인가 싶어 습관적으로 발바닥으로 바닥을 긁었다.


-별 것도 아닌데... 당신도 참


막 나가려고 문 앞에서 서성이던 딸 경미가 내 말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친다.


- 아빠도 참, 그게 왜 별게 왜 아니에요.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아빠 나이대 사람들 취업하기 어렵대. 대기업 임원하던 사람들도 경비원 자리에 줄 선다잖아. 서울대는 나와야 경비원 할 수 있다고 해요. 아파트 경비원 하시는 분들 아무나 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우리 아빠가 이렇게 취업하다니!!

참 대단해 우리 아빠.


경미는 취업이라는 단어를 뱉고, 말을 잠시 멈추었다.


- 아빠.... 있잖아요. 나도 곧 아빠처럼 취업할게요. 항상 고맙고 죄송해요.

- 고마워, 딸. 요즘 젊은 친구들 취업이 어렵다고 하잖아. 너도 고생이 많다.

- 아빠, 오늘 저녁에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지금은 나 영어 스터디 하러 가야 해서. 점심은 좀 힘들고.

- 아빠도 오늘부터 출근이라 있다 저녁에 나가봐야 한다. 우리 가족 주말에 같이 밥 먹을까?

- 아빠! 벌써 출근이야? 저녁에 출근했다가 언제 오시는데요?

- 24시간 격일 근무야. 있다 저녁 6시에 갔다가 다음 날 6시 퇴근. 24시간 근무.

- 네에?......




아내와 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집.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내 친구 경수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른다.


-야! 경수야 통화 괜찮아? 근무 중인 거 아니야?

-야! 김명철! 타이밍 죽이네~ 오히려 다들 출근한 이 시간이 좀 괜찮아. 근데 무슨 일이냐?

-나, Y아파트 경비원에 합격했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려 전화했지

-야, 이 새끼. 축하한다. 너 이제 집에서 눈칫밥 좀 덜 먹겠다. 거기 좀 까다로운 곳인데 어떻게 합격했대. 이거 대단한 놈이네.

경수가 평소보다 목소리를 크게 하며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대단하긴. 근데 거기 어제저녁에 합격 통보 하고 오늘 저녁부터 출근하래.

-뭐, 여기가 업계가 다 그래. 원칙이라는 것이 없다니까. 그래도 돈이 필요하니까, 형수님은 시터일 하러 가시고 집에 너밖에 없겠네. 경비원 일도 일하면서 개차반 취급을 당할 때가 있기는 해도 일할 곳이 있으니 다행이지 뭐. 웃기지도 않아. 어제는 입주민 한 사람이 도시락 데우려고 사용하는 전자레인지 없애라고 해서 치웠다. 그건 또 어떻게 봤는지.... 더럽다. 더러워. 그 덕분에 이 추운 날에 다 식은 밥 먹으려니 목이 막힌다. 막혀. 보온통에 싸와도 금방 식어버린다고. 여기가 그래. 너도 겪을 건데 여름에는 선풍기도 틀지 말라, 겨울에는 온풍기도 틀지 말아라. 이유가 뭔지 알아? 자기들 내는 전기료 아깝다고 말이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야.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문패를 걸고 싶다니까. 자기 가족이면 그러겠냐고.... 영철아, 야야.... 미안. 누구 왔다. 또 통화한다고 민원 넣을라!!! 담에 한잔! 콜??


경수는 끊는다는 말도 못하고, 전화는 끊겨 버렸다.


핸드폰 속 시계가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집 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내가 창 앞에 수년 동안 모아놓은 화초가 가득했다. 결혼할 때 선물로 받았던 사랑 꽃을 시작으로 매년 화분은 하나둘 늘었다. 30년이 된 지금은 수십 개의 화초가 베란다 창 앞을 점령하고 있다. 햇살이 유난히 잘 들어오는 집이라 이 시간이 되면 이파리 위로 연한 주황색을 띠고 있는 빛이 내려앉는다.


- 여보, 오전 11시에 들어오는 햇살은 다른 시간에 보이는 햇살과 좀 다른 것 같아.

- 얼씨구나. 당신 시인이네. 아직도 갱년기야? 그 갱년기는 언제 끝나는데. 피식.


나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38년을 중소기업에 다녔다. 내세울 것은 딱히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월급 하나는 38년 동안 꼬박꼬박 나왔다. 그러면 됐지.. 그 돈으로 가족들이 먹고살았으면 된 거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밤이 되어 퇴근해야 했다. 주말에도 어김없이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내 시간 일정 부분을 돈을 주고 샀지만 세상일이 어떻게 칼 자른 듯할 수 있을까. 그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회사에 내 모든 시간을 내주면서 일할 수밖에. 일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거였다.


오전 11시에 내리쬐는 햇살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정년퇴직 후였다. 38년 동안 오전 11시에 창 안으로 비치는 햇살을 볼 수 없었던 이유가, 내가 무심했기 때문인지, 일상이 바빴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내의 말처럼 중년 갱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전화기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르는 번호다.


- 누... 누구시지요?

- 김영철 씨 핸드폰 아니에요? 지금 뭐해요? 나 경비반장이요. 허참, 오늘 갑자기 아파트에 일이 생겼네. 이거 참. 여기는 조용할 날이 없어. 조용할 날이. 지금 뭐해요? 지금 당장 출근할 수 있어요?


*메인화면: pinterest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656417


'저같이 억울하게 당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주세요.'


2020년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에 시달리던 한 경비원이 모멸감과 두려움을 느끼다 결국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경비원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그 후로도 경비원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위 기사 참조).


미비한 법적 장치 때문일까요. 아니면 '보통의 이웃'을 '보통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우리의 뒤틀린 마음 때문일까요. 무엇이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이토록 시리고 아픈 ‘극한직업’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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