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경비원' 1

2020년 1월 5일.


그날은 정년퇴직 후 처음 그 일을 시작했던 날이었다.

경비반장은 나를 보자마자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9시에 퇴근하는 야간조를 맡으라 했다. 신입은 원래 그런 거라고. 깐깐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보이는 경비반장 김 씨는 W아파트 경비업무에 대해 약 20분간 설명을 늘어놓았다.


경비반장 김 씨는 W 아파트는 아시다시피 비싼 아파트다! 고로 입주민 입맛도 까다로우니 잘해야 할 거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야간조에서 담당할 업무를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임자는 왜 그만두었냐는 내 질문에 경비반장은 몸이 아파서라고 일축했고 말을 아꼈다.


대략 30분이 흘렀다. 경비반장 김 씨는 자신의 기준에서 인수인계를 어느 정도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전임자가 남긴 노트 하나와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열쇠 꾸러미에는 약 5개의 열쇠가 걸려 있었다. 경비반장은 짤랑 소리를 내는 열쇠 중 끝이 네모지고 뭉툭한 열쇠를 집어 보이며 말했다. 야간 조 업무를 마치면 새벽 5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옥상을 점검하는 일도 잊지 말라고.


새벽 5시.


여름이었다면 새파랗게 밝았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시작했던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아침 7시나 되어야 해가 조금씩 떠오르던 때였다. 일을 시작한 그날은 경비반장이 안내를 받고 들어간 경비초소에서 밤 9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어떻게 첫 근무를 마쳤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인수인계 내용 정리, 추가 서류정리에 야간순찰까지 마치니 시간은 생각보다 쏜살같이 지나갔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4시 50분.


작은 창 밖에서 보이는 바깥은 깜깜했다. 순간 잊었던 추위가 엄습해 왔다. 약풍으로 틀어둔 난로 선풍기를 강하게 틀며 몸을 가까스로 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도 세기를 강으로 바꾸니 난로는 환한 주황색을 발하며 작은 경비실을 환히 밝혔다. 그때 갑자기 ‘난로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 전기세가 많이 나와 주민들이 싫어하니 눈치를 봐서 틀 것’이라는 전임자가 남겨둔 메모 하나가 떠올랐다. 그 메모는 새빨간 볼펜으로 쓰여 있었고, 글자 옆에는 커다란 별표 세 개와 느낌표 세 개가 덩달아 붙어 있었다.


‘세상 참 야박하네. 난로 쬐는 것 가지고도 뭐라고 하나? 설마.... 뭐 이런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작은 난로 하나에 전전긍긍한 느낌을 진하게 풍기는 메모를 보자 얼굴도 보지 못한 전임자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나고서야 그때 전임자에게 보냈던 한심함은 아파트 경비원이란 일에 대해 전혀 몰랐던 무지에서 비롯한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덧 시계는 4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어 방한 점퍼라고 받은 옷을 입고 3평 남짓 되는 경비실을 나섰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경비실도 싸늘했지만 문을 여니 더 차갑고 얼음장 같은 공기가 얼굴을 곧바로 뒤덮었다. 마스크 틈새로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날은 눈이 오렸는지 하늘에 새까만 먹구름이 가득했다. 구름 때문일까. 바깥은 더 어두침침하게 느껴졌다.


그때 담당했던 동은 W 아파트 109동, 110동 111동 세 개의 동이었다. 우선 109동 옥상을 점검하라는 경비반장의 말이 떠올랐고, 경비실에서 동쪽 방향에 위치한 109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겨울날 새벽. 다들 아직 잠들어 있는지 불이 켜져 있는 곳이 드문 드문 보일 뿐이었다.


물웅덩이가 곳곳에 살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자연히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109동 앞으로 향했다. 109동 앞에는 109동, 110동, 110동이 함께 쓰는 재활용 수거장이 위치해 있었다. 멀리서 보니 재활용 수거장 앞에서 쪼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한 사람이 보였다.


무엇인가 싶어 어둑어둑한 길 끝에 새빨간 담배 불빛을 응시하며 가까이 걸어갔다. 근무하게 된 W아파트는 금연 아파트로 흡연을 할 수 있는 흡연실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는 경비반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라도 입주민이 흡연실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반드시 주의를 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주의를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곳은 금연 구역이니 저쪽에 가서 담배를 피우셔야 합니다.
저기요,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정중한 말을 고르고 골랐다. 그 사이 점점 그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은 이미 어둠에 적응한 상태여서인지 가까이 다가서자 그 남자의 모습이 좀 더 뚜렷이 보였다.


회색 운동복 후드티를 입고, 검은색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의 머리는 좀 회색으로 보였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에 인상착의와 연령대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남자 주위로 담배에서 뿜어 나오는 히뿌연 연기가 검은 공기 위로 겹쳐졌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를 발견했는지 그가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가 도드라지는 그는 뭘 쳐다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30대 중반의 반항적인 기질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남성이었다.


“저기, 선생님.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저쪽 흡연실에서 좀 부탁드립니다.”


고르고 고른 말 중 하나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말을 뱉었지만 내심 긴장이 되었다. 입주민에게 밑 보이면 쥐도 새도 없이 경비일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친구 경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너 거기 가면 제일 조심해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뭐긴 뭐야. 거기는 딱 하나. 진짜 조심해야 해. 장난 아니고. 너 경비원이 왜 극한 직업인 줄 알아? 거기 사는 사람들. 입주민 때문이야.”


어둠 속에 뱉어진 내 말을 들은 그 남자는 날 쳐다보더니 뭐 이런 게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네...”

대답을 마치자마자 나를 응시하더니 가래침을 퉤 하고 바닥에 뱉었다. 그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신고 있던 남색 슬리퍼로 담배꽁초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옥상에 가기 위해 109동으로 출입구로 들어가는 찰나, 쪼그리고 있던 남자도 나를 따라 109동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109동에 사는 남자.


엘리베이터를 탄 남자는 26층을 눌렀고, 난 옥상이 있다는 3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윙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기계음만 흐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5층을 지나고 있을 때쯤 그가 말했다.


“새로 온 경비인가 봐요?”


날카로운 눈매 안에 숨겨둔 그 남자의 서늘한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억지웃음을 웃으며, 네네 대답을 했다.


젊은이의 호기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나는 60대 중반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었다.


곧이어 26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남자는 내렸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았다. 엘리베이터만이 옥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날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메인화면: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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