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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비극 6



6.


김 기자의 물음에 유진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이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 수없이 고민했어요. 2010년에 우리에게 아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그 아이들에게 발생했던 비극을 그냥 조용히 덮어야 할지, 아니면 다시 힘든 시간으로 들어가 썩어 고름이 흘러내리는 그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지.... 사실 정답을 몰랐어요. 용기라는 것도 없었고요. 그래도 분명했던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이 상황이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 일은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 그런 일이었으니까요.”


유진은 떠올렸다.


2009년 J 의료원에서 함께 임신 중이었던 간호사 절반이 유산을 경험했고, 생존한 태아 모두 선천성 심 잘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2010년 그 해를. 그들에게 일어난 불행은 끈질기게 그들의 발목을 끈적거리게 잡아챘다.


유진은 고개를 떨구며 바닥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때 2010년도에 태아들에게 일어났던 비극에 대해 모두들 모른 척하고 싶었을 거예요. 모두들 그랬어요. 혹여나 자신들에게 그 비극에서 떨어지는 먼지 한 톨 묻어 문제가 될까 봐 전전긍긍했으니까요. 그렇게 잘 넘어가면, 어떤 수단을 써서 그 상황만 모면하면 없었던 일이 되었을 거니까.”


유진은 지난 시간을 겪으며 잘 알게 되었다. 개인 개인들에게 일어난 비극이 누구의 책임인지 알기 어려울 때, 그 화살이 결국 어디를 향하게 되는지. 그 결말은 어떠한지.


“병원은 많은 돈과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공단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까지 산재에 대한 수많은 판단을 내려온 전문 기관이었으니까. 그들은 이 비극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했어요. 결국 그들의 정답은 우리였어요. 가장 쉬운 정답지였죠. 지극히 보통의,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침부터 일터에 나와 일하고 해가 지면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그것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시간을 팔아 산 돈으로 가족들을 살게 하고, 가끔 웃을 수 있는. 결국은 우리들에게 책임의 화살이 돌아왔어요. 그저 저희의 부주의로 일어난 그 어떤 평범한 불행으로요. 지극히 개인적인... 불운.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소송 전 공단은 유진과 동료들의 요양급여 신청에 두 차례 거부처분을 하였고, 그 '거부'는 그들을 절망하게 하기 충분했다.


유진과 동료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S대 역학조사보고서를 들고 J지사를 찾았다.


'업무 중 노출된 유해요소로 인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이유를 적은 신청서를 공단에 제출하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선천성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그들의 아이들은 산재보험법에서 보호하는 근로자가 아님을 이유로 거부처분을 하였다.


유진과 동료들은 한번 더 해보자며 변호사를 찾아가 다시 자문을 구했다.


'태아는 모체의 일부에 해당하고 당시 태아에게 발병한 질병은 엄마 몸에 발생한 질병으로 봐야 한다.'

새로운 논리로 그들은 J지사에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하였다. 하지만 공단은 그들에게 ‘초진 소견서’를 내라고 보완요구를 하였고, 결국에는 해당 서류 미제출을 이유로 ‘민원서류 반려 처분’을 하였다.


“그렇게 두 번 공단으로부터 거부처분을 받았을 때는 소송을 포기할까 생각했어요. 이제 끝인가 싶었어요.”

유진은 씁쓸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두 번의 거부처분이요. 공단 측에서도 어떤 답변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 같아요. 직접적인 판단을 피하려고 했고, 결국 절차상의 꼬투리를 잡은 거죠. 나중에 1심 판결문을 보고 알았어요. 판사님이 그 부분을 지적해 놓으셨더라고요. 공단 측에서 그런 식으로 거부처분을 했던 것은 저희 쪽 법해석 주장을 법리적으로 배척하기가 곤란하자 직접적인 판단과 이유제시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요. 공단의 그런 술수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희는 없었을 거예요.”


유진은 말을 멈추고 잠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전혀 몰랐어요. 그저 우리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만 맴돌았어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공단에게 저희는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런 공단에게 두 번이나 거절당했으니 소송해 봐야 가망이 없겠구나 싶어 꽤나 절망했었습니다.”


김 기자는 유진의 이야기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단 측에서 그렇게까지 나왔다면 보통은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소송 비용도 비용이지만, 소송을 한다는 것이, 그것도 거대한 기관과 싸워내는 것이 사람의 진을 빼놓는 과정이니까요. 그런데도 그 높은 장벽을 넘어 소송을 결심하셨네요.”


“법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비극이 오롯이 저희 책임으로 취급되는 것은 도무지 아니라고 생각되었어요. 저와 같은 일로 엄마가 될 누군가가 어두운 방구석에서 스스로를 자책이라는 칼날로 찌르며 몰래 울고 있지 않았으면 했어요.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여기서 그냥 눈을 감고 없었던 일처럼 마음에 묻고 살아간다면 편했을까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제가 모르는 아이들이 또다시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유진의 목소리에서 여린 떨림이 느껴졌다.


“온몸에 호스를 달고 매일 주사 바늘과 싸우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로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어요. 무엇이라도요...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었는데… 벌써 9년이 지났네요.”


김 기자는 유진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그녀는 준비해 둔 자료를 보며 다시 물었다.


“선생님, 1심 결과는 정말 기적 같았습니다. 저도 당시 그 판결을 보고 꽤 놀랐거든요. 하지만 2심에서는 정반대로 결과가 뒤집혔죠. 2심에서는 법원이 공단 손을 들어줬으니까요. 당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을 텐데, 그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말씀대로 1심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승리였어요. 그때 판사님이 판결문에 써주신 문구를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 문구들이 상처받은 저희 가족에게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저 괜찮다.. 괜찮다. 그때 우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다독임 같았어요.”


김 기자가 판결문 사본을 뒤적이며 눈을 빛냈다.


“저도 엄마로서 이 부분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도 읽어드려야겠네요.”


김 기자는 자세를 고쳐 앉고, 진중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재생산하지 않고서는 국가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중략)…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개념을 해석함에 있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 손상을 배제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와 태아를 차별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보호 의무를 방기 하는 것이며,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입법 목적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낭독이 끝나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비록 2심에서 패소하며 ‘이게 끝인가’ 싶어 무너져 내렸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재판장님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9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 기자는 자료를 내려놓고 유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법의 냉정과 온기를 모두 겪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선생님에게 ‘법’이란 무엇인가요?”


유진은 잠시 침묵했다. 지나온 9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글쎄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일을 겪기 전까지 저에게 법은 공기 같은 거였어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그러다 1심 승소 때는 법이 내 편인 것 같았고, 패소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법에 적혀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 냉혹했으니까요.”


유진은 천천히, 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법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요. 판결문에도 그런 말이 있었어요. 문제의 해답은 수학적인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법이 모든 걸 담을 수는 없겠죠. 어쩌면 최소한의 것만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법전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유진의 담담한 고백에 김 기자는 숙연해진 표정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네, 선생님 말씀처럼 법이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있을 건강 손상 자녀에 대한 법 개정 논의가 그 증명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햇살이 쏟아지는 겨울 오후.


한때 ‘김 변호사’로 불렸으나, 지금은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생긴 아기는 이제 막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 아장아장, 비틀비틀. 쿵....'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이 요즘 걷기 시작한 아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자그마한 인형 같은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다 보면, 변호사 시절보다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가 버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다 보면, 기다리던 낮잠 시간이 다가온다. 엄마와 함께한 바깥 외출에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은 아이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엄마랑 더 놀아야 하는데…….’


아기는 잠투정 섞인 눈빛을 보내보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방바닥에 툭 쓰러져 잠이 든다.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집안이 고요해진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대자로 뻗어 잠든 아기. 손에 낀 고무장갑을 벗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기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이를 포근한 이불 위에 눕히고 그 옆에 나란히 몸을 뉘었다.


‘휴, 이제야 좀 쉬겠네.’


낮잠이 깨기 전까지 주어지는 꿀맛 같은 휴식 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켰다. 습관처럼 포털 사이트를 훑어내리다 핸드폰 속 한 헤드라인에 눈길이 갔다..

[건강손상 자녀 산재보험 법 개정, 한 달 뒤부터 시행]


3년 전, 힘을 보탰던 그 법안이 드디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 하단에 첨부된 동영상을 클릭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법이란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화면 속에서 담담하게 말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이제 10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밝히는 그녀. 나는 휴대폰 속 하얀 니트를 입고 긴 세월을 견딘 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어 곁에서 곤히 잠든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3년 전, 그저 처리해야 하는 ‘골치 아픈 서류’라 여겼던 누군가의 절규가, 실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었음을. 그들이 흘린 눈물이 모여 이 작은 아이의 머리 위를 덮어주는 지붕이 되었음을, 이제야 늦게나마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겪었던 그 사건들을 온몸으로 튕겨내고 있었던 과거의 나는 이제 그들과 같은 엄마가 되었다. 이제 와서야 그들이 겪었던 슬픔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다고, 그때 더 많이 노력하지 못하였음에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괜히 빨개진 눈시울을 훔치며, 씩씩거리는 평화로운 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의 등을 토닥다.


제주의 바람처럼 시원한 온기를 머금은 맑은 햇살이 우리의 작은 방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2014. 12. 19. 선고 2014구단50654 판결 P15 중

*메인화면 : pinterest


- 소리없는 비극 6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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