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경비원 4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 뭐지…… 가을인가?


이 형사는 갑자기 코끝으로 들어온 서늘한 바람에 흠칫 놀랐다. 그동안 놓친 것이 있었나 싶어 아파트 산책로에 서있는 은행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키가 높게 솟은 은행나무에는 아직 새파란 은행잎이 대롱거리며 달려 있었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타는 듯한 태양 볕에 도시 전체가 몸서리를 쳤었는데... 그러다 난데없이 서늘한 바람이라니. 이 형사는 날씨 한번 참으로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 이 형사, 나야. K 아파트 알지? 거기서 일하는 경비원이 있는데 새벽에 경비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어. 지구대에서 신고받고 먼저 출동했대. 우리 관할이라 서장님도 관심이 많으시더라고. 아마 오늘 저녁 뉴스에도 방송될 거야. 비싼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죽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많겠어. 그 아파트에 높으신 분들도 많이 살고. 자네도 잘 알잖아. 그런데 도대체 경비원 K라는 사람이 왜 죽은 건지 아직은 모르겠어. 이 사건 이 형사 담당으로 해놓았으니 잘 맡아서 해봐. 기자들도 관심이 많다고.


이 형사는 새벽에 걸려왔던 김 팀장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통화를 마치고 보니 팀장은 경비원 K 씨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서울처럼 여기저기 CCTV가 가득한 곳에서 타살? 아... 그 아파트, 얼마 전에 최고가 경신했다고 신문에 난 곳 아닌가. 그런 비싼 곳에 사는 사람이 거기 일하는 경비원 K 씨를 죽일 이유가 있겠나…….


이 형사는 김 팀장이 예전과 다르게 수사 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가보자. 우선 현장에 가면 알겠지.


어떤 사건이든 그것이 일어난 현장만은 조용하게 진실을 말한다. 현장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 이 형사가 평소 가지고 있는 수사 지론이었다. 물론 끈질기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이 형사의 몫이었다.


이 형사가 경비실에 다다랐을 때, 경비실 둘레에는 접근을 금하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여기저기 둘러쳐져 있었다.


- 이 형사님 오셨습니까. K 씨는 신고를 받고 온 119 구급차에 실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고, 동의하에 부검 신청했습니다.


이 형사를 사수로 두고 있는 박 형사가 말했다.


- 그래, 박남식이. 엄청 일찍 도착했네. 박 형사가 보기에 이상한 건 없었고?


이 형사는 먼저 도착한 박 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 네, 팀장님께서는 타살로 방향을 잡으신 것 같은데, CCTV를 확인한 결과 새벽 1시에 한 남자가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K 씨는 순찰을 다녀온 후에 자리에 앉아서 일지 같은 것을 썼고요. 일지를 쓰다가 엎드렸는데 그 이후로는 계속 엎드린 상태의 영상이 이어졌습니다. 아마 실제 사망한 시간은 새벽 3시쯤으로 추정됩니다.


박 형사의 이야기를 들은 이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 그렇다면 타살은 아닌 것 같은데…… 1시에 다녀간 남자는 누구였지?

- 그게…… 우선 경비실 CCTV, 아파트 산책로 CCTV, 엘리베이터 CCTV 이렇게 세 개의 영상을 확보해서 봤는데요. 109동 26층에 사는 남자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날짜의 영상도 확인했는데, K 씨가 사망했던 날 외에도 그 남자가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K 씨를 자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간격으로요.


이 형사는 박 형사의 이야기를 듣다가 109동 26층에 사는 남자를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 그 남자가 K 씨를 죽인 건 아니더라도, 왜 그렇게 새벽마다 K 씨를 방문했었는지 이야기는 나눠봐야겠네. 아직 K 씨의 사인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도 연관이 있을 것 같으니.

이 형사의 말에 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 그리고 이 형사님. 이거 K 씨의 일기장으로 보입니다. 업무 일지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박 형사는 오렌지빛을 띠는 양장 표지의, 손때가 어느 정도 묻은 B4 크기 다이어리를 건넸다. 이 형사는 박 형사에게 받아 든 K 씨의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맨 앞 페이지에 반듯하고 밝아 보이는 글씨체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새로운 2024년도에도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 딸 ○○ 올림 -]




-김 씨, 나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게 되었어.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날이 꽤 좋았던 5월이었다. 경비반장이 영철을 찾아와 말했다.


- 반장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요?


경비원 K 영철이 물었다. 영철은 경비반장이 그만둔다는 이야기에 경비반장이 그만두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분배될지가 가장 걱정되었다. 경비반장은 이 아파트에서 10년 정도 일해온 베테랑이었고, 경비반장의 업무는 주로 한여름에 몰려 있었다.


-김 씨, 미안하게 되었어. 사실은 몸이 안 좋기도 하고.. 솔직히 말할게. 관리사무실 측에서 관리비를 줄인다고 인력 감축이 있었대. 나도 오늘 아침 통보받았어. 경비반장을 뽑으면 인건비가 많이 들어서 관리비에 영향이 있대. 예전부터 급여가 가장 많은 나를 그만두게 하려고 하고 있었더라고. 어떤 주민들이 우리가 관리 업무도 안 하고 팽팽 논다고 인력 축소하라는 항의를 많이 했나 봐. 그래서…… 다음 주부터 나머지 셋이서 내 업무까지 분담해서 하게 될 예정이야.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영철은 경비반장의 이야기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지금도 2교대로 하루 24시간 근무한 뒤 다음 날 쉬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관리사무소에서는 8시간 근무만 인정해 급여를 지급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혹시나 잘릴까 싶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저 관습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또 어떤 사정인지 관리비 상승 문제를 들먹이며, 관리사무소에서는 올해 2월부터 매달 3만 원씩 지급했던 식비도 갑자기 끊어버렸다.


-정말 열악하다, 열악해.

경비반장이 중얼거렸다.


-김 씨, 사실 이렇게 그만두지만 여기서 10년 일하니까 몸이 축나서 병원비가 더 나오는 것 같아. 김 씨도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형편이 좀 괜찮아지면 조금만 더 일하다가 그만두는 것도 좋을 거야. 일한다는 것은 좋은데,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서…….


경비반장의 말을 들으며 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달 시터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둔 아내와 아직 집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딸아이가 생각났다.


-반장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아내가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계속 일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영철은 경비반장이 일을 그만둔다고 할 때만 해도 그의 빈자리가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 관리소장이던 경비반장은 평소 아파트 유지 관리와 경비원 관리 업무를 맡았고, 그 외에도 아파트 조경까지 담당해 오고 있었다.


경비반장은 K아파트를 떠났고, 그의 빈자리에 더위가 슬슬 찾아왔다. 여름이 왔다는 것은 K아파트 경비원들이 제초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제초 작업은 여름이 오기 전에 해야 하는 K아파트의 필수 작업 중 하나였다.


- 이 씨, 풀 베려면 창고에서 제초기 가지고 와야겠네.


영철이 2 경비를 맡고 있는 이 씨에게 말했다.


- 김 씨, 제초기 있기는 한데 못 써요.

영철은 제초기를 못 쓴다는 이 씨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 뭐? 그럼 이 넓은 곳을 제초기 없이 어떻게 하려고?


영철의 물음에 이 씨가 한숨을 푹 쉬었다.


- 그게, 김 씨도 알다시피 여기가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 주차장이 좁잖아요. 그래서 다 지상 주차를 해놓는데, 이런 곳에서 제초기를 쓰면 여기저기 돌이 튄단 말이에요. 돌이 튀면 어디로 가겠어요? 바로 "주민들 자동차!" 그것 때문에 민원이 장난이 아니라고요.


영철은 할 말을 잃었다. 돌이 튀는 바람에 고급 차에 흠집이 나면 안 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면 화단의 풀을 앉아서 하나하나 뽑아야 한다는 말인가. 영철과 이 씨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박 씨가 포대 하나를 들고 왔다.


- 형님, 여기요. 가져왔어요.


영철은 포대에 들어 있는 낫과 호미를 보았다.


- 설마, 낫으로 풀을 베고 호미로 풀을 뽑는다고?


영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 형님, 말도 마세요. 제초기 돌리다가 돌 튀어서 차 흠집 났다고 입주민들에게 욕 들어먹고 물어내느니, 그냥 호미로 풀 뽑는 게 훨씬 나아요. 대신 주차 안 되어 있는 화단은 제초기로 싹 돌리고요. 그런 곳은 얼마 없지만요.


이 씨와 박 씨가 허리에 매는 엉덩이 방석을 영철에게 건넸다. 그 방석은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 형님, 이거 써야 해요. 안 그러면 허리 다 나갑니다. 그럼 형님은 이 구역, 저는 저쪽 맡을게요. 일 년에 한 번 하는 거니까 쉬엄쉬엄 하세요.


이 씨와 박 씨, 그리고 영철은 화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호미로 풀을 뽑기 시작했다.





-김 씨, 김 씨!


관리소장이 다급하게 영철을 찾았다. 업무 일지를 작성하던 영철은 고개를 들어 관리소장을 보았다.


- 소장님, 여기는 무슨 일로……?


영철이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 김 씨, 어쩌지. 이번에 이 씨와 박 씨가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었어. 내가 새로 후임자를 찾고 있으니까 좀 도와줘야겠어. 이제 여름이라 방역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건 꼭 해야 하는 거라 김 씨 혼자 좀 맡아줘야겠네.


여름이 되면 아파트 밑으로 흐리는 오래된 하수도 안에 고여 있는 물에서 태어나는 모기떼 때문에 K아파트는 벌레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모기의 기세가 당당해질수록 주민들의 민원도 거세졌다.


- 아저씨!! 방역 작업 제대로 하는 거 맞아요? 모기 때문에 살 수가 있어야지. 우리 아파트에 쓸 약 뒤에서 삥땅 치는 거 아니냐고요!


그날도 영철의 경비실로 몇 명의 주민이 찾아와 거세게 항의했다.


방역 작업은 본래 여름에 일주일에 한 번씩 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씨와 박 씨가 모두 그만두었기에, 영철 혼자 아파트 전체를 돌며 방역 작업을 해야 했다. 그저 걸어 다니며 약을 뿌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소독약을 뿌리는 기계와 커다란 약통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약통의 무게만 약 10kg에 달했다. 영철은 10kg이 넘는 방역 장비를 짊어지고 온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때는 7월 중순을 넘어서고 있었다. 빠르게 찾아온 더위로 실외 온도는 이미 30도를 훌쩍 넘어섰다. 영철이 담당하는 아파트가 3개 동, 이 씨와 박 씨가 담당했던 아파트가 총 6개 동이었다. 영철은 혼자서 9개 동을 돌며 방역 작업을 해야 했다. 마스크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온몸에 열이 나는 것인지, 그저 더위 때문인지 영철은 자신의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오전 9시에 시작한 방역 작업은 오후 2시가 되어도 끝날 줄 몰랐다.


- 아저씨!!! 한참 찾았네. 왜 경비실에 안 계시는 거예요?


주민으로 보이는 여자가 영철에게 다가왔다. 여자에게는 10kg이 넘는 방역 기계를 짊어지고 땀에 절어 있는 영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 아저씨, 제가 급하게 받을 등기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경비실에 안 계시는 바람에 한참 기다렸다고요. 어디 가서 놀고 계시나 했는데 여기 계셨네! 경비실로 가서 제 등기 좀 어서 주세요.


영철은 여자의 말에 따라 10킬로가 넘는 방역 기계를 어깨에 든 채 다시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했다.


경비실로 향하는 영철의 등이 보였다. 이미 땀으로 시커멓게 젖어 있었다. 영철은 조금만 더 참아보자며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숨을 내뱉었다를 반복했다.


숨 막히는 더위를 뱉어내려 숨을 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숨이 그냥 쉬어지는 것인지 영철은 알지 못했다.


*메인화면: pint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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