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형사는 경찰 일을 시작하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적어도 하루 한 번 집에 들어가는 것. 도둑은 밤에 활동하고, 그들을 대면하려는 형사들은 그때 눈을 뜨고 있어야 했기에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이었다. 어떤 날은 잠복근무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가능하면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잠을 자고 싶었다.
시계는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섯 살 아들 정민은 이미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이형사는 혹시 잠든 가족들이 깰까 싶어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을 아주 천천히 잡아당겼다.
- 아빠!!!!!!!!!!!!!!!!!!!!!!!!!!!!!!!!!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정민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발견했다. 정민이는 아빠를 향해 우다다다 뛰기 시작했다. 아내 수민도 이 형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형사는 정민이를 품에 힘껏 안겼다. 정민에게서 따뜻한 공기가 전해왔다.
- 여보, 아직 안 잤네. 정민이랑 자는 줄 알고 조용히 들어왔지.
이제 막 자려던 참이었다는 아내의 이야기에 이 형사는 빙긋 웃었다. 오늘은 우리 가족이 함께 자는 날이라며 정민이는 그 어느 때보다 한껏 신이 났다. 이 형사와 수민 사이에 살포시 누워있던 정민이가 아빠를 향해 몸을 휙 돌리며 말했다.
-아빠, 일하고 왔어요? 내 친구 수지는 아빠가 잠들 때 옛날이야기 많이 해준다는데. 아빠~~ 옛날이야기 좀 해줘 봐요.
팔목만 했던 정민은 어느새 커서 이 형사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매일 못 봐서일까. 정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아빠 어릴 적 이야기요. 아빠는 어릴 적에 어떻게 지냈어요?
한참 골똘히 생각하는 이 형사에게 정민이가 와락 매달리며 조르듯 말했다. 정민이의 물음에 이 형사는 자신이 어릴 적에 어떻게 지냈었는지 떠올리려 노력했다. 잊고 지낸 그때의 시간들. 문득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정민아, 아빠가 어릴 적만 해도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도 친했고, 동네 어른들도 모두 잘 알았었어. 그냥 동네 사람들은 사촌보다 더 친했었어. 가끔 할머니가 집에서 호떡을 오십 장 넘게 부칠 때가 있었거든. 그럼 아빠랑 고모는 그 호떡을 앞집에도 가져다 드리고, 또 윗집, 슈퍼, 부동산에도 모두 가져다 드렸어. 그때는 먹을 것이 귀했거든. 그렇게 서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고 고마워하면서 위하면서 살았어.
그때는 다 가난했던 때라 더 그랬나 봐. 그냥 그런 게 참 고마웠어.
앞집 사람도, 옆집 사람도 모두 친한 사촌 같았다는 이야기에 정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빠,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낯선 사람들이랑 막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배웠어요. 근데 아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말고 동네 사람들이랑 다 엄청 친했다고요? 아빠, 선생님이 그건 위험하다고 하셨는데.... 이웃집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고... 낯선 사람이 말 걸면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연습도 했어요. 친구들이랑.
정민이의 말에 이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민아, 지금은 많이 변했지. 그런데 그런 때가 있었어. 아빠가 어릴 때는 그랬어.
이형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사는 게 바빠졌기 때문일까 싶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새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정민이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 형사는 잠든 정민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띵동, 띵동.”
낡은 회색 문 앞에서 이 형사는 한참을 서 있었다.
오후 7시, K아파트 109동 26층에 사는 남자와 짧은 면담이 약속되어 있었다. 벨이 울리고 문 안쪽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지만 좀처럼 문은 열릴 줄 몰랐다. 남자가 면담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응해 일이 편하게 풀리나 싶어 다행이었다. 혹시 남자가 면담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그건 피곤해지는 일이었다. 이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잠시만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낡은 회색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밑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검었고, 팔자주름이 도드라져서 꽤나 피곤해 보였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이 형사 쪽으로 나오며 현관문을 닫았다. 이 형사와 남자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에게서 묵직한 우드 향이 느껴졌다. 남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인지 물었다.
- 전화로 간단히 말씀드렸지만, 이 밑에 경비실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며칠 전 새벽에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지요? CCTV 확인 결과 선생님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경비실을 다녀간 것이 확인되었거든요. 지금 경비실에 자주 갔던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면담 중입니다.
- 형사님, 입주민이 경비실에 가는 게 이상한 건가요? 경비는 입주민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게 우리가 그 사람들을 고용한 이유잖아요. 뭐가 문제인가요? 오늘 면담 응하기로 한 건 주차 문제로 경비실에 갔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거고요. 그러니 귀찮게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형사님은 마치 제가 그 아저씨를 괴롭혀서 죽었다는 듯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나 참, 기분 더러워서. 이제 여기까지 하렵니다.
CCTV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남자는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남자는 당황했는지, 바쁘다는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회색 문이 닫히고 이 형사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경비 김영철 씨가 죽기 전 남기고 간 일기장에 쓰인 글들이 눈앞에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자주 등장했다.
- 일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그들이 하는 모욕적인 말, 하대하는 태도. 그것들이 내 마음을 갉아먹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디까지가 나의 일인가. 그들은 도대체 왜……. 도대체.
이 형사는 엘리베이터로 발을 옮겼다. 약속 시간보다 이르지만 K아파트 입주민 대표와 경비업체 대표를 만나야 했다.
- 형사님, 저희 입주민회랑 그 사람이랑은 전~~~ 혀 상관없십니다.
사투리 억양을 가진 입주민 대표는 이형사를 보자마자 이 말만 계속 반복했다.
- 대표님, 대표님이 경비 김영철 씨를 고용한 것이 아닌가요?
- 아이쿠야, 형사님. 제가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합니까. 그 아시지요? ‘간접고용’이라고요. 우리가 김 씨를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고요. 우리는 경비업체랑 계약을 했고, 그 경비업체랑 근로계약을 한 경비원이 우리 쪽에 와서 일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여기 경비업체 대표를 제가 불렀응께 함 이야기해 보소.
경비업체 대표라는 김 사장 역시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경비 김영철 씨가 죽은 시점이 근로계약이 종료될 시기라는 점이 그의 주장이었다.
- 거참, 김 씨가 갑자기 죽어서 우리만 귀찮게 되었네요. 그 형사님, 로봇 아시지요? 저희 업체한테 경비원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은 그저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저희는 그 사람들이랑 3개월에 한 번씩 고용계약을 합니다. 김 씨도 3개월마다 근로계약을 체결했고요. 그 외 특별한 거 없습니다.
이 형사는 김영철 씨의 죽음이 타살이라기보다는 급격한 스트레스에 의한 죽음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아마 이 건은 이형사에게 어떤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특별한 것 없이 종결될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이 형사는 궁금해졌고, 마음이 아려왔다. 왜 김영철 씨를 보호해주어야 하는 울타리가 이곳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따르르릉.
박 형사였다.
- 형사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인에 대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심장동맥경화증과 관련한 급성 심장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김 씨의 가족들에게 확인한 결과 심장 관련 질환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연구소에서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심장동맥경화가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형사는 박 형사와 통화를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잊고 지냈던, 잊고만 싶었던 기억 하나. 꺼진 핸드폰 화면 위로 자신과 닮은 한 여자의 얼굴이 스쳐갔다. 2년 전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2년 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생을 마감한 여동생 J. 법으로 회사 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제도는 잘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이 꼭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서 법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법이 의도한 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을 지휘하는 자와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여동생은 작은 회계 회사에 다녔다. 그곳에서는 여동생을 막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작동하지 못했었다. 2년 전 여동생 J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작은 부품으로 전락했다. 그녀는 결국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었다.
- 조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형사는 입주민 대표와 김 사장에게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미 날은 깜깜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에 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왜 우리는 홀로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된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이웃’이라는 단어가 그리워졌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이 형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 도대체 언제 가을이 온 걸까?
-끝-
* 톡톡 한마디! 경비원에 대한 노동환경 실태에 관하여
1.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경비원을 고용한 사업주는 경비원이 업무와 관련해 고객들에게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업무를 중단하거나 전환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2. 경비원의 경우 <공동주택관리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도 주민들의 폭언이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하기는 합니다(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지방자치단체장은 같은 법에 따라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아파트에 대한 조사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공동주택관리법 제93조).
3. 문제는 경비원이 입주민대표회의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는 드물고, 대부분 간접고용 형태로 일한다는 점입니다. 경비원은 경비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경비업체가 입주민대표회의에서 선정되면 그 아파트에 경비원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고용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경우 입주민대표회의는 ‘갑’, 경비업체는 ‘을’의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입주민대표회의에서 부당한 지시를 하더라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4. 또한 경비원은 경비업체와 주로 1년 혹은 3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러한 계약 형태는 경비원의 지위를 더욱 열악하게 만듭니다. 입주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경비원은 혹여나 재계약을 못 할까 봐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꾹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그 조직 안에서 그들을 보호할 실질적인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5. 또한 공동주택관리법에는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직접적으로 갑질을 했을 때 입주민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미비하다는 점도 경비원의 근로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적인 문제점과 경비원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경비원들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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