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현숙은 여자 수용동 휴게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앉아있었다.


꽤 긴 시간. 간혹 현숙의 어깨가 후드득 들썩거렸다. 새파랗게 수용동 내부를 비추던 새벽빛은 사라졌고 시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전 8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야간 조 퇴근 시간이 지났으나 현숙은 미동이 없었다. 까슬한 수건 재질 천으로 둘러싼 소파 끝에 그저 웅크리고 있었다.


현숙은 새벽 4시, 불과 몇 시간 전 목격한 현장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아니,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의지와 반대로 흘러갔다. 동이 틀 무렵, 현숙이 발견한 사건이 보안과에 전달되고 몇 분이 채 지나기 전, 사건 수습을 위해 남자 직원들과 rotc가 여자 수용동으로 출동했다. 현숙의 의지를 비웃듯 현숙은 자기도 모르게 그 시간을 수백 번 떠올리고 곱씹고 있었다. 모든 것이 선명한 사진이 되어 머리를 터질 듯 채웠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야간 근무자들도 퇴근하지 못한 채 현숙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녀에게 괜찮냐고 묻고 싶었지만, 누구도 현숙에게 말을 걸진 못 했다.


보통 교도소 근무자는 사복을 입고 출근한 후 교도소 밖에 있는 탈의실에서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꽤 번거로운 일이지만 교도관 근무복을 입고 담장 밖을 돌아다니는 건 근무자들에게 썩 안전한 일은 아니었다. 누가 와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으니.


진 푸른색 근무복으로 갈아 입은 교도관들은 아침 인사를 나누며 교도소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자 수용동 근무자들은 여자 수용동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 여자 수용동에 마련된 직원 전용 휴게실에서 밤새 있었던 수용자 특이사항을 보고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수다 소리로 떠들썩한 휴게실이 고요했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고,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들 조용히 자리를 떴다. 현숙의 등만 바라본 채.


- 김 계장님 괜찮을까. 충격이 크실 텐데.


반쯤 열린 철문으로 된 휴게실 문 뒤로 소곤거리는 소리가 물컹물컹 들려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휴게실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현숙은 파묻었던 고개를 부스스 들었다.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 같은 것이 떨어지지 않고 맺혀 있었다.



문득 잠들었던 현숙은 깨질 듯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야간근무를 시작하면서 신체 리듬이 말이 아니게 깨져있었다. 몸은 여전히 물을 잔뜩 머금은 듯 무거웠다. 유튜브에서 야간비행을 하는 승무원이 추천해 준 안대와 선글라스를 샀고, 거실에 암막 커튼도 설치했었다. 규칙적인 잠이 아닌 다음에야 깨진 신체 리듬을 붙여줄 수는 없었다.


몸이 솜덩어리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고, 현숙은 언제나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곧 민종과 민수가 학교에서 올 시간이었다. 거기다 출근 준비도 해야 했다. 사실 현숙은 작년까지만 해도 주간 근무만 하다가 퇴직할 것이라 고집했었다. 야간근무는 아무래도 신체 리듬을 깨뜨리고 수명을 단축하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런 현숙도 올해부터는 야간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 학원비 때문이었다. 다 알다시피 공무원 월급이라는 것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지금 수입만으로는 두 아이 학원비에 생활비까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선배 교도관들도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인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가 되면 대부분 근무 시간을 야간으로 변경했다. 야간 수당은 주간에 근무 수당보다 약 2배 높았다. 또 야간근무를 하면 다음 날 쉴 수 있기에 좋은 점도 있었다.


현숙은 대충 5분 화장을 마치고 부엌으로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저녁은 함께 먹지 못하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엄마가 차려 놓은 따뜻한 밥을 먹었으면 했다. 엄마 마음이 그랬다. 현숙은 아이들이 먹을 미역국과 어묵볶음과 밑반찬을 그릇에 담았다.


현숙은 식탁 위에 보자기를 덮었다. 매번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글자를 적은 후 냉장고에 붙였다.


민종아, 민수야 저녁 꼭 챙겨 먹어. 사랑해.
-엄마가-


현숙은 곧 들어올 아이들을 못 보고 가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현숙은 자동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현숙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었다. 처음부터 교정 직렬에 지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노량진에 무턱대고 앉아서 무한정 돈을 쓸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기에 교정 쪽이 합격이 더 쉽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이쪽으로 진로를 틀었다.


다행스럽게도 현숙에게 수용자 관리 업무는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수용자 상담에도 꽤 큰 소질을 보였고, 심리 상담사 자격증도 있었다. 지금은 15년 차 베테랑 교도관이 되었다. 능숙하게 수용자들과 소통했고, 윗사람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업무능력은 기본이며 상사, 동료와 소통 능력은 승진에 중요 요소로 작용했다. 현숙은 그런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고,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2년 전 주임에서 계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거기다 보안과장의 신임으로 여자 수용동 팀장을 맡고 있었다.


현숙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교도소는 규모가 큰 편이었다. 여자수용 자들이 있는 여자 수용동과 남자 수용자들이 있는 수용동으로 나뉘었다. 여자 수용동의 크기는 일반 수용동의 십 분의 일 정도의 규모였다. 수용자 수도 대략 그러했다. 일반 수용동은 남자 교도관들이 담당했고, 여자 수용동은 여자 교도관들이 전적으로 담당하는 형태로 업무가 분담되어 있었다.


여자 수용동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일까. 시시때때로 수용자들 사이에서 감정싸움이나 다툼이 발생해 긴장감이 흐르는 일반 수용동과 다르게 가족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여자 수용동 안에 있는 직원 휴게실만 봐도 그랬다. 빳빳한 가죽 소파 대신 보드라운 꽃무늬가 그려진 천으로 덮인 소파가 놓여있었다. 커피믹스 대신 원두를 갈아먹을 수 있는 커피추출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2층 숙직실에는 러닝머신도 있어서 운동도 하며 씻을 수도 있었다. 여자 수용동은 여자 교도관들이 전적으로 담당했기에 여자 직원만이 가지고 있는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그날도 현숙에게는 전혀 특별한 것 없는 날이었다.


새벽 3시 50분, 독방에 수용되었던 수용번호 14889 문 00이 창틀에 목을 매달고 죽어 가는 모습을 현숙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메인화면: pinterst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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