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군청색 근무복을 입은 보안과 직원들이 회색 교도소 내부와 밖에 위치한 사무실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새벽에 있었던 수용자 자살 사건 때문이었다. 본부에 사건 경위를 보고해야 했다. 공문 작성을 위해서는 수용자 자살을 처음 발견한 현숙팀장의 진술이 필수였다.


- 계장님, 저.... 지금은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주임도 좀 나가주세요.


보안 과장은 공문 작성에 협조하지 않는 현숙을 당장 과장실로 오게 했다. 보안 과장은 어제도 술을 마셨는지 방안에 알코올 냄새가 퍼져 있었다. 과장실은 약 10평 정도 되는 방으로 중앙에는 6인용 가죽 소파와 과하게 넓은 책상이 자리했다.


- 말을 좀 해보라고요!! 이 계 장 님.


과장은 현숙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현숙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 라 때는 말이야. 이런 일쯤은 별것도 아니었다고. 여자 직원은 이래서…. 쯧쯧


과장에게 현숙이 새벽에 겪은 충격 같은 것들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과장의 관심은 단 하나. 수용자 자살 사건으로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는 것이 그를 무척이나 화나게 만들었다.


침묵이 흘렀다.


- 에잇,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니야. 에잇, 됐어. 하필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나 발생하고. 어떻게 하나 보자고. 나가! 나가라고!


과장은 옆에 있던 결재 서류 덮개를 현숙을 향해 집어던졌다. 결재 서류 모서리거 현숙의 배에 맞고 땅으로 툭 떨어졌다.


- 나가보겠습니다. 과장님.


현숙은 꾸벅 인사를 하고 과장실을 빠져나왔다. 현숙의 뒷모습이 비틀거렸다.




어떻게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는지. 현숙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었다. 현숙은 깊은 한숨을 쉬며 조용한 집안에서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누워도 좋으련만. 외출복도 벗지 않고 방 안을 혼자 서성였다. 방향을 휙 바뀔 때마다 자신에게서 풍기는 냄새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교도소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여전히 배어 있었다.


눅진하게 눌어붙은 곰팡냄새와 알뜨랑 비누 냄새가 섞인 오묘한 냄새.


교도소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


때문에 현숙은 교도소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샤워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십 년 넘게 교도소에서 일했지만, 교도소 곳곳에 배어 있는 그 냄새가 매일 새로웠다.


역한 방향으로.


오늘만큼은 혼자서 샤워실에 들어가 씻고 나올 용기 같은 것이 나지 않았다.


- 그래, 괜찮아지고 있어. 교도소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



서성거리던 현숙이 갑자기 소파에 앉았다. 십삼 년 선임 교도관이 해 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꽤 오래 잊고 있던 대화였다.


- 이주임, 저거 보여요?


교도소를 안내해 주던 선배가 물었다. 그는 휴게실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다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현숙의 눈길도 같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긴 손끝이 향한 곳은 창문 밖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가장 윗부분이었다.


작은 다락방처럼 보이는.


작은 창 부분에는 수십 년 동안 비바람에 날아와 눌어붙은 먼지가 뒤덮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방.


건물은 북쪽에 있었다. 처음 교도소 안내를 받을 때 북쪽 건물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고 했다. 혹여나 출입이 가능하다고 해도 저 방에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교도소는 보안을 이유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 목적에 맞게 내부는 미로로 설계되어 있었다. 현숙은 길치였기에 새로운 구역을 배정받을 때면 항상 통로를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외워야 했다. 그것은 어느새 새로운 건물을 보거나 방문할 때, 버릇이 되었다. 현숙은 자기도 모르게 저 방으로 가는 길을 요리조리 떠올려 보고 있었다.


물론 전혀 가늠되지 않았지만.


반듯하고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건물. 군더더기 없는 겉면과 다르게 교도소 내부는 거미줄처럼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을 것이 뻔했기에.


- 이주임이 보기에도 저기가 좀 으스스해 보이나? 여기 사회복지과 사무실에서는 저기가 정면으로 보여. 혹시나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매일 볼 수 있지. 근데 매일 봐도 좀 으스스해. 저기는 1997년인가 없앤다고 이야기만 하는 곳.


어딘지 알겠지?


현숙은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행이 집행된 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그래. 맞아. 저기 꼭대기 방이 바로 사형대가 있었던 방이야.


하얗게 된 현숙의 얼굴을 바라보던 선배가 말을 이었다.


- 사형이라 하면 죽음을 보통 생각하잖아. 그런데 교도관에게는 그것이 또 다르게 다가와.


누군가는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버튼을 눌러야 하니까. 그리고 뒤처리까지.


그 일을 했던 그 사람들.


괜찮았을까.




현숙은 앉았던 자세를 바꿔 둥글게 네모진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걸치고 누웠다.


다리를 펴니 머리에 모인 피가 좀 도는 것 같았다. 현숙은 다시 선배가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런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퇴직 후 심한 우울증에 걸리거나 많이 아프거나 어쨌든 좋지 않게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를.


- 정말 악령 때문이었을까


현숙은 갑자기 깊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몸과 몸이 맞닿아 온기를 나누면 조금이라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자 자살 사건 목격 이후 현숙은 주간 근무도 야간 근무도 평소처럼 해내고 있었다. 겉보기에 흠 없는 직육면체 건물처럼 현숙은 괜찮아 보였다. 현숙은 괜히 동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이 계장님, 여사에서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정 변호사였다. 그는 교도소 끝에 있는 고충 처리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현숙이 정 변호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정 변호사가 처음 교도소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현숙은 교도소 안내를 담당했었다. 현숙은 그렇게 작은 인연으로 정 변호사에게 종종 안부를 물었고, 여사에서 수용자들이 인권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자문을 얻기도 했다.


- 계장님, 심리치료는 받으셨어요? 괜찮으세요?


현숙은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현숙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단기간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적절한 치료가 없다면 후유증이 10년, 20년 반복될 수 있다고. 후유증 발생하면 공무원재해보상 처리도 가능하니 정신과에 방문해 우선 진료받으라고.


- 워 워워, 정 변호사님. 나 진짜 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우리 교도관들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정말이야.


불과 1분 정도의 통화였는데 심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현숙은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며 전화를 급히 끊었다.


현숙이 누릴 수 있는 보통의 시간이 길게 지속되지 못했던 것처럼.



*메인화면: pinterest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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