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션샤인 비평문
글쓰기 과목 과제였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조엘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조엘은 회사에 출근해야하지만 웬지 몬탁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어 출근하지 않고 몬탁행 열차를 간신히 타서 몬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 사실 이게 첫 만남인 줄 알았는데, 연애 후 헤어지고 기억을 지운 후에 다시 만난 시간선이라는 게 영화의 연출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흘러가는 대부분의 실제 시간은 조엘이 가수면에 빠진 한밤중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인데, 이 짧은 시간 사이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연애사 그리고 원장과 직원의 불륜 관계까지 휘몰아치도록 설계해둔 게 영화로의 몰입력을 높여준 것 같다. 영화가 주인공이 처음부터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결심하는 것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꼬아 연인을 완전히 잊어서 헤어지기 위해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을 지우기로 선택하는 것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재회가 목적이 아니었지만, 지우는 중에 재회를 바라게 되며 자신이 선택한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극적인 요소를 높인 것 같다. 그러나 한 번 선택한 것은 무를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듯이 결국에는 기억이 삭제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쉬웠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일까? 조엘에게서 클레멘타인의 기억이 말끔히 삭제되지 않고 마지막에 클레멘타인의 몬탁에서 만나자는 말을 기억 어딘가에 품고 몬탁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다시 찾는 것이 더욱 영화의 극적 요소를 높여준 것 같다. 그리고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 중 초능력 중 타임슬립을 사용하는 타임슬립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게 기억 삭제라는 초능력을 사용한 것이 신선했다.
영화를 보고 영화의 제목인 Eeternal Sunshine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ternal Sunshine의 사전적 의미는 영원한 햇살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이 영화 제목에는 에는 또 다른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첫 번째 의미는, 찬란한 연애를 sunshine에 빗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만큼 햇살처럼 찬란한 게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 앞에 ‘영원한’이라는 뜻을 가진 eternal을 붙임으로써 연인 간의 사랑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반의적인 표현으로서의 eternal sunshine이다. 제목에서는 햇살이 비치는 낮이 영원하다고 말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조엘이 가수면 상태에서 꿈을 꾸는 저녁에 일어난다. 이를 보았을 때 영화의 제목은 일부러 영화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사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서 더 서술하겠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운명적인 만남도 아니었는데, 운명적인 만남으로 포장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게 해서 더 그렇다. 현실에서 운명적인 사랑이 얼마나 존재한다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게 하는지 모르겠어서이다. 누군가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영화만으로라도 대리 만족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나도 많고, 헛된 희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그 의견에 반대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대화하는 몇몇 장면에서 조엘은 보수적인 사람이고 클레멘타인은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조엘이 클레멘타인에게 한 심한 말을 제외하고는 조엘이 맞는 말을 한다고 느꼈다. 아마도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장면만으로도 조엘이 연애를 하면서 오래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엘에게 공감하고 있었는데, 영화의 끝부분에서 함께 동거하던 나오미라는 여자를 두고 시간상으로 정말로 처음 만났을 때 빈 집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정도로 즉흥적인 여자에게 끌려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보고 조엘은 남에게는 보수적이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인이 모른 척하면서(기억을 지운 것이지만 조엘이 보기엔 그랬다.) 새 남자친구와 사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허망해하고 실망하고 화내는 것을 볼 때 공감이 됐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후에는 공감이 안 됐다. 뿌린 대로 거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다시 재회했을 때는 여자 측에서 만나던 남자를 두고 바람핀 게 이것까지 감독이 맞췄나 싶었고 둘 다 똑같은 사람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었다. 이와는 별개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데 관여하고,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데도 관여하여 둘의 연애사를 다 아는 패트릭이 조엘의 물건을 훔쳐서 클레멘타인과 사귀는 것을 보고 직업 윤리 의식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연인이 내가 싫어서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다만 상상해보자면 얼마나 싫었으면 나와의 기억을 지웠을까 자책도 하고 그렇다고 고지 없이 지워서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 어이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연인과의 추억이 나만이 가지고 있고 감정이 쌍방향이 아니라 단방향이라는 것이 매우 슬플 것 같다. 최종적으로는 복수심이 들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기억을 지우기로 한 조엘의 결심이 이해가 됐다.
뇌의 특정 부분을 건드림으로써 감정을 지우고 기억을 지운다는 발상은 어떻게 떠올렸는지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물약을 먹고 기억을 잃으면 조금 어이 없었을 것 같은데, 병원처럼 라쿠나사라는 회사를 만들고 마치 병원 진료실 같은 곳에서 진료를 보고, 뇌를 스캔해서 설명하고, 과학적이어보이는 장치들을 써서 기억을 지운다는 게 이 영화에 특별함을 준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엘이 기억을 지웠다는 쪽지를 발견하고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라쿠나사를 찾아가는 것을 보고 영화의 세계는 현실과는 조금 다른 세계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별개로 보관한 물건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할텐데 어디에 보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주인이 기억을 잃어버린 개인 정보는 과연 어떻게 보관하고 처리해야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의문점도 들었다. 회사가 기억을 지우는 중에 술을 마시고 놀 만큼 체계가 없고, 일개 카운터 담당 직원이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 기억을 지우는 것을 믿고 맡기기엔 너무나도 허술하고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영화가 엄청 대단한 사랑을 그리듯이 나와있는데 맘에 들지 않는다. 나오미의 시점이 조금이라도 등장했으면 둘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이라고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세기의 사랑이라고 평가한 관객들은 죄가 없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줬을 뿐이고 관객들은 그것만 보고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두번이나 첫눈에 반할 정도면 그냥 서로의 외모가 서로의 대단한 취향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기억을 지워주는 다른 회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다시 지우더라도 혹은 기억을 지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둘은 결국에는 다시 사귀고 다시 사귀고 다시 사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 같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이 세기의 사랑이라는 것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세기의 사랑인지까지는 모르겠고, 인성 측면에서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여 둘이 결혼까지 하여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