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남주를 선택해 보세요’
땡볕이 내리쬐던 여름날, 하굣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조아의 눈에 게임 광고판이 들어왔다.
‘버스는 20분이나 남았고…’
‘심심한데 게임이나 해볼까?’
조아는 당장 앱스토어에 접속했다.
‘두근두근 연애 시뮬레이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보세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 에이~ 과장이 심하네.”
“일단 설치!”
그 순간
파아앗- 푸른 빛이 스마트폰에서 뿜어져 나와 조아의 몸을 한 바퀴 돌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이게 뭐야? 내가 본 게 실제가 맞나?”
하지만 조아는 지각 당번 청소를 하고 늦게 하교한 터라 버스 정류장엔 조아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더위 먹었나, 헛것을 다 보네.”
“앗, 설치 완료됐다.”
“띠로로롱띠로롱~”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하늘은 재빠르게 볼륨 버튼을 눌러 소리를 껐다.
‘앗, 에어팟 연결을 또 깜빡했네.’
조아는 책가방에서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덜렁대는 성격의 조아에게 에어팟 연결을 까먹는 일은 이제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뭐야, 이 유치한 효과음은?”
그러자 효과음이 바뀌었다.
“와 뭐지? 소름 돋아. 우연의 일치겠지...?”
조아의 스마트폰 화면에 이용 약관 창이 떴다.
‘귀찮은데… 전체 동의 눌러야지!’
‘당신의 남주를 선택하세요’
조아가 동의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새로운 안내창이 떴다.
설명이 이어졌다.
‘남주 후보는 A, B, C로 총 3명입니다. 각 캐릭터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흠… 뭐로 하지?”
조아는 무심코 위를 올려 보았다. 그리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마주했다.
“하늘… 하늘, 하늘!!! 좋은데? 성은 뭐로 하지? 흠… 하늘은 높으니까 높을 고 해서 고로 해야겠다. 고하늘! 마음에 들어!”
“그리고 다른 두 명 중 한 명 이름은 저기 산이 있으니까 산으로 하고, 산 하면 바다니까 나머지 한 명 이름은 바다로 해야겠다. 성은 각각 최, 유가 어울릴 것 같네.”
‘고하늘’
‘최산’
‘유바다’
‘입력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 알림창이 떴다.
‘지금 전화 통화하고 싶은 상대를 선택…’
“어, 버스 왔다!”
조아는 게임을 끄고 버스에 탔다.
조아에겐 버스에 타면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었다.
매일 똑같은 풍경이지만 매번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집에 도착한 조아는 스마트폰을 내팽개쳐 두고 집에 두고 갔던 노트북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유튜브에 접속해서 검색 창에 이태준 직캠을 입력하였다.
어제 방송된 음방의 직캠이 갓 따끈따끈하게 업로드되어 있었다. 조아는 당장 영상을 재생했다.
“흐헤헤, 흐히히”
조아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태준. 명실상부 1군 그룹 하이퍼의 비주얼 센터이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작곡 능력, 섬세한 보컬에 수준급 춤 실력까지 보유한 터라 하이퍼 내에서도 1등 인기 멤버이다.
그렇게 직캠을 보길 1시간째,
“띠리리링”
조아의 스마트폰 전화벨이 울렸다.
조아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누구세요?”
스마트폰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이거 조아 폰 아니에요?”
“제가 조아는 맞는데 누구세요?”
“어, 너 나 몰라? 나 최산이잖아! 네 옆집에 살았었는데!”
“그런 사람 모르는데….! 어, 잠시만요?”
‘최산? 아까 지은 캐릭터 B 이름인데?’
조아는 스마트폰의 백그라운드를 확인했다. 백그라운드에서는 게임이 실행되고 있었다.
‘뭐야 아까 끈 것 같은데? 제대로 안 껐나 보네.’
‘그럼 이건 게임? 와 진짜 실제 같다. 광고가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네.’
조아는 맞장구쳐주기로 결심했다.
“아 맞다! 기억났어! 초등학교 때 옆집에 살았었지?”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기억났구나! 바로 기억 못 해내서 서운하긴 한데, 금방 기억해 냈으니까 괜찮아! 내가 왜 오랜만에 전화했냐면, 나 내일 한서고등학교로 전학 간다! 너 전에 서울에 한서중학교로 전학 간다고 작별 인사 했었잖아! 한서중학교랑 같은 재단 고등학교길래 혹시나 해서 전화했지!”
‘한서중학교는 내가 나온 학교 이름인데? … 우연의 일치겠지! 한서가 못 생각해 낼 이름은 아니잖아? 뭐 개발진이 한서중학교 출신일 수도 있고!’
“아 나는 한을고등학교에 다녀! 한서고등학교랑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최산이 대답했다.
“아 그래? 아쉽다. 그럼 내일 정문 앞에서 기다릴게. 내일 봐!”
“뭐? 잠깐만!”
‘띠띠띠’
조아가 당황한 새에 전화는 이미 끊겨있었다.
‘게임 캐릭터가 정문 앞으로 찾아온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때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띡띡띡띡띡”
“조아야, 아빠가 치킨 사 왔다. 치킨 먹자!”
아빠였다.
“치킨? 치킨은 못 참지!”
조아는 미심쩍음을 내려놓고 치킨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와~ 치킨 맛있겠다!”
“녀석. 치킨이 아무리 좋다지만 아빠에게 인사 정도는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니?”
“아 맞다!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허허. 그래. 다녀왔다. 치킨 먹자꾸나!”
“띡띡띡띡띡”
때마침 엄마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치킨 사 오셨어요! 치킨 먹어요! 치킨!”
“하하하”
“호호호”
조아는 가족과 화기애애하게 치킨을 먹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에서 게임은 돌아가고 있었다.
단란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여러 통 와있었다.
“발신자명 유바다?”
“이젠 메시지까지 오네. 뭐 전화도 했으니까 메시지야 별거 아니긴 한가?”
‘조아 누나, 어디야?’
‘오늘 8시에 같이 게임하기로 했잖아.’
‘얼른 접속해!>0<’
“이건 또 뭐야? 이것도 게임의 일종인가? 지금 몇 시지?”
딱 8시였다.
‘근데 무슨 게임 말하는 거지?’
조아가 의문을 품는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조아의 눈 앞에 상태 창을 구성했다.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N’
“우와~ 이런 기능도 있어? 진짜 신기하다!”
“Y!”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환영합니다. 여기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세계, 리얼 월드입니다.”
“치지직-“
“어? 누나! 접속했구나! 나야 나! 유바다!”
‘쟨 또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지? 일단 게임 설정인 것 같으니까 맞춰주자.’
“그래, 바다야 안녕? 지금까진 뭐했어?”
“난 지금까지 계속 게임 속에 있었어!”
“게임 속에 있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조아가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했다.
“하하. 뭐 그냥…”
바다가 말을 돌렸다.
‘어쭈, 말을 돌릴 줄도 알고! 제법인데? 언금 설정인 것 같으니 넘어가 주지.’
조아가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할 게임은 뭐야?”
“끝말잇기!”
“뭐? 끝말잇기?”
조아는 오버X치와 같은 게임을 생각했던 터라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부터 시작한다!
바다가 말했다.
“고구마!”
“흠… 마차!”
“차… 차… 차림새!”
“새… 새… 새…새끼”
“그건 욕 아니야?”
바다가 말했다.
“아니거든! 어린 짐승 말하는 거거든! 너는 이것도 모르냐?”
조아가 답했다.
“아, 아니 모르는 건 아닌데…”
“그러면 다시 게임 시작!”
“끼니!”
“두음법칙 적용되나?”
조아가 물어봤다.
“그래! 이 몸이 선심 써서 허용해 줄게!”
바다가 답했다.
조아는 약간 약이 올랐다.
“이별”
“별…자, 리”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은 건 시스템 오류겠지?’
조아가 생각했다.
“아, 또 이야! 이기심!”
“심술”
“술래”
“애인”
“인어”
“어미”
***
길고 긴 끝말잇기가 이어졌다.
조아가 말할 차례였다.
“청심환”
“환ㅅ…, 환승!”
“승마”
조아가 다시 대답했다.
“마기꾼?”
“아 줄임말은 제외!”
“아, 재미없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바다가 말했다.
“벌써?”
“시간이 9시야! 내일 학교 가야지!”
조아가 시계를 확인했다
끝말잇기를 하다 보니 눈 깜빡할 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헐, 그러네….!”
“그러면 누나, 내일 보자! 안녕!”
바다는 황급히 인사를 하더니 사라졌다.
조아는 피곤했던 차라 바다의 마지막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아 맞다! 내일 수행평가 있는데!!!!”
“어디 보자. 잠 2시간만 줄이면 가능하겠어. 얼른 해야지!”
그러나 조아의 예상과 달리 조아는 수행평가 준비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