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조아는 방 밖으로 나서서 엄마를 찾았다.
“으어어… 엄마, 집에 커피 남는 거 없어?”
“커피 찾아 줄게. 어머, 눈에 다크서클 좀 봐.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니?”
“네. 어제 수행평가 준비해야 해야 해서 얼마 못 잤어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조아는 잠을 아예 안 잤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운 조아는 억지로 커피로 각성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조아는 정류장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보았다. 귀에 에어팟을 꽂고 노래를 듣기 위해 백그라운드를 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게임이 백그라운드에 켜져 있던 것이었다. 조아는 백그라운드 어플 지우기로 게임이 백그라운드에서 실행되는 것을 중단하려 했지만, 게임은 백그라운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어제 전화도 걸려 오고 문자 메시지도 오더니, 악성 앱인가?”
조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사이 친구 신비, 유정, 은하가 도착했다.
“조아 하이? 수행평가 준비는 다 했어?”
“말도 마. 어제 게임하느라 수행평가 준비 못 할 뻔했어. 그래도 내가 누구냐? 한조아지! 밤을 꼬박 다 새워서 다 해냈단 말씀!”
“이열~~”
“역시 한조아!”
“안 피곤해?”
“괜찮아. 얼른 학교 가서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잠시 졸면 돼.”
“어? 버스 왔다. 얼른 타자!”
친구들과 함께 타는 버스에서도 예외 없이 에어팟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 쪽 귀에만 에어팟을 꽂은 채로 친구들과 대화하며 노래를 들었다.
“아 맞다! 내가 어제 게임을 깔았는데, 막 게임 캐릭터에게 전화도 오고 메시지도 오고 그랬다?”
“뭐야 말도 안 돼. 그런 게임이 어딨어?”
“아냐, 내가 캐릭터들 이름도 설정했는데 그 이름으로 전화도 오고 메시지도 왔단 말이야.”
“봐봐. 최산, 유바다. 진짜 왔었다니까?”
“최산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고, 유바다는 그 1학년에 귀여운 남자 후배 아니야?”
“엥. 그런 후배가 있었나…?”
‘우리 학교엔 그냥 염색체가 XY일 뿐인 애들만 가득한데?’
“응응! 귀엽다고 유명해!”
“화이트 데이 때 밸런타인이 데이가 방학이라 못 준 초콜릿 주겠다고 바다 사물함 앞이 인산인해였다니까!”
“맞아. 소문으로는 사물함이 꽉 차서 터질 뻔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나만 몰랐나 보네.
조아가 말했다.
그 이후 화제가 전환되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버스가 학교 앞에 도착했다.
4명이 함께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5층인 2학년 층으로 계단으로 올라갔다. 1학년은 신입생이라, 3학년은 입시해야하니까라는 이유로 2학년을 꼭대기 층인 5층으로 편성했다.
“헉, 헉, 힘들어.”
유정이가 말했다.
“아무리 등교해도 5층은 적응되지 않는다니까.”
신비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은하가 대꾸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이 5층에 도착했다.
다 함께 2학년 4반으로 향했다.
그런데 반 뒷문 앞에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면 넘겼겠지만 멀리서 봐도 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178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까지.
‘우리 학교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뒷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한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조아야, 쟤가 걔잖아, 유바다!”
“신비야,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인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잘생겼다.”
“그러니까. 근데 우리 반 앞엔 무슨 일이지?”
바다가 조아 앞으로 걸어오더니 멈춰 섰다.
“조아 누나 안녕하세요? 혹시 저랑 잠깐 이야기하실 수 있을까요?”
“저를 아세…”
조아가 바다에게 자신을 아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눈 앞의 사람의 목소리가 어제 게임에서 들은 바다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인 것을 알아차렸다.
“너는 게임 캐릭터…!”
조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바다가 한 손으로 조아의 입을 막았다.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바다가 작게 속삭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학생들이 먼발치에 모여서 유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친구들에게 들었던 소문이 거짓말이 아닌가 보네.’
조아는 생각했다.
“얘들아. 나 얘랑 잠시만 어디 좀 다녀올게.”
“너 아침에 유바다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시아가 물어봤다.
“무슨 일이야? 돌아와서 꼭 말해줘!”
은하가 말했다.
버스가 일찍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한 덕분에 조례까지 30분가량 남았던 터라 조아는 부담 없이 바다의 뒤를 따랐다. 바다의 발걸음이 향한 목적지는 학교 뒤편의 인적이 드문 정원이었다.
“조아 누나. 궁금한 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바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순간 조아의 볼이 살짝 빨개졌다.
‘미인계엔 약한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 정체가 뭐야?”
“저요? 저 어제 누나랑 끝말잇기 게임한 유바다요!”
“그러니까. 너 내가 이름 지어준 게임 속 캐릭터 아니었어? 어떻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거야?”
조아가 당황하며 물어봤다.
“아,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고요. 어제 조아 누나가 게임을 설치하시면서 이렇게 된 거예요.”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일단 믿는다 치고! 애들은 어떻게 너를 알고 있는 건데?”
“그것도 설명해 드리기 힘들지만, 대충 말씀드리자면 마법을 걸었다고나 할까요? ㅎㅎ”
바다가 또다시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바다는 웃음으로 모든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미인계에 약한 조아는 그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곧 조례 시간이니까 교실로 돌아가자.”
조아가 말했다.
***
“자,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수요일이어서 야자가 없었죠?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야자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년에 3학년이니까 힘내 봅시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 오늘 조례는 여기까지.”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와, 저 말 많은 담임이 웬일이래.”
“그러니까 말이야.”
“아싸, 개이득! 남는 시간에 잠이나 자야지!”
반 곳곳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담임선생님이 앞문으로 교실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아 누나!”
조아는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다로 분명했다.
‘쟤가 2학년 층엔 왜 또 왔어?’
조아가 재빨리 바다 앞으로 가서 바다의 손을 이끌고 계단으로 데려갔다. 다른 반은 아직 조례 중인 터라 계단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너 조례는? 왜 또 왔어?”
“어 그거 후드 집업이랑 체육복 바지 안에 인형 넣어서 대충 자는 모양 만들어 놓고 나왔어! ㅎㅎ”
바다가 능글맞게 웃으며 다시 반말을 했다. 조아는 어제 반말을 했던 바다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게 불편했던 터라 바다가 다시 반말을 쓰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아예 짼 건 아니어서 다행이네. 짼 건가?”
“그래서 여긴 왜 또 왔어? 조례야 그렇다 쳐도 곧 1교시 시작하잖아. 이동 수업 준비하려면 얼른 가야지.”
“알지, 알지. 그냥 누나 안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또 보고 싶어서 왔지!”
“뭐? 조금 전에 봤으면서! 얼른 가!”
“알았어, 누나. 안뇽~”
바다가 애교끼 섞인 목소리로 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
“딩동댕”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아, 맞다. 나도 이동 수업인데…!’
조아는 헐레벌떡 반으로 돌아가 노트와 교과서를 챙기고 이동 수업 반으로 향했다.
조아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
“딩동댕”
4교시를 끝마치는 종이 쳤다.
“와, 점심 먹으러 가자!”
“점심시간이다!”
“밥! 밥! 밥!”
점심시간을 반기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복도까지 시끄러워졌다.
4교시는 2학년 4반에서 했던 터라 조아는 교실에 남아서 이동 수업을 간 친구들을 기다렸다. 유정, 신비, 은하 순으로 차례대로 도착했다.
“내가 너무 늦게 왔지? 선생님이 종이 치고도 수업하시는 바람에 늦었어 ㅠㅠ”
은하가 말했다.
“괜찮아.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조아가 말했다.
조아는 바다가 4교시까지 찾아오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친구들과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종이 치자마자 급식실로 뛰어온 학생들이 많아 이미 급식실 앞의 줄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선생님들 부럽다. 이렇게 길게 줄 서서 대기 안 하고 빨리 밥 먹을 수 있고.”
은하가 말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그러면 네가 선생님 되든가! ㅎㅎㅎㅎ”
신비가 은하를 약올렸다.
조아가 평안하게 서 있을 때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