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5월. 2020년
숨막힐듯 아름다운, 시선이 확 꽂히는 건축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희열과 경외심을 느낀다.
겉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지만 느껴지는 어떠한 치밀함과 디테일이 만들어낸 조화. 리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최초의 디자이너이신 창조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 순간 하나의 기관, 하나의 조직도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 몸 전체가 그것의 영향을 받듯이
우리는 얼마나 정교하게 조각되고 치밀하게 계획된 피조물인가.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가.
돈을 많이 가진, 권력을 많이 가진 그 누구도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
우리는 얼마나,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생명들인가.
한 목사가 그랬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인생을
과연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창조주는 저 멀리, 구름 속에 계신 분이 아니다.
피조물의 한복판에 계신다.
이 순간에도, 다 아신다.
그분은 우리의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디자인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질투하면. 그 사람을. 혹은 그 집단을 증오하면서
나는 옳은 그리스도인. 그들은 옳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정죄하고 판단하면.
결코 내 마음도 편치 못하게 하신다.
나 역시 연약하고, 죄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게 하신다.
그것들이 정말 하나님보다 큰 것인지. 그 두려움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우물 바닥을 보듯 한참 깊이 내 생각의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럼 결국 그 끝엔 아이러니하게도 교만이 있다.
내가, 내 스스로 이것을 해결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교만이 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말씀과 성령이 임할 자리는 이미 사라졌기에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다시 그분 앞에 엎드러지고, 겸손해지고,
동시에 해결되지 않는 갈망과 문제들에 대한 탄식과 신음을 그분 앞에 내뱉는다.
내가 지금 다 알 수 없어도. 이 우주에서, 먼지 한톨도 되지 않은 작은 나란 존재가
다 알 수 없는 창조주의 생각, 계획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것이 나를 절망하게 하고 실망하고 무력감에 휩싸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어떤 강렬한 힘이 내 안에서 샘솓는다.
모든것을 다 지으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나의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기쁨과 소망도 다 아시는
창조주가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 하나는 분명하기에.
다 알 수 없어도.
믿음으로 오늘도 살아내는 것을.
견디고 버티는 지친 걸음이 아니라.
그분의 나라가 임할 그 날을 소망하며,
매 순간의 걸음이 기쁘고 희망찬 걸음이 된다.
그 걸음으로 넘어져 있는 이들도 함께 일으킨다.
희망을 잃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