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still alive.
(녹색평론 184호 : 2023 DMZ 평화문학축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나희덕 인터뷰를 정리한 글에서 일부 발췌)
나희덕 :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의 속새를 살펴보면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아니라 경제적 이권이나 복잡한 외교적 관계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조강연에서 소개해주셨듯이 시골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전쟁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고, 돈이나 대출을 위해 기꺼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야말로 돈이 최우선의 목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사람 목숨은 종잇장처럼 취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전쟁이 갖는 의미나 새로운 양상에 대해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푸틴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그는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는 것을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을 테지요. 그리고 천연가스 공급망에서 독점적 체제를 확립해서 세계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더불어 자기자신을 역사적 인물로서 크게 남기고자 하는 욕망도 갖고 있어요. 미디어를 통해서 그 모든 과정을 굉장히 영리하게 포장해서 선전 전동을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중략)
나희덕 : 선생님 작품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비롯해서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들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늘 세계의 가장 고통스럽고 문제적인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곳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셨지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작품들을 발과 귀로 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소설’이라는 장르로 묶어두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고 다성적인 텍스트이지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쟁에 참전하거나 전쟁을 목격한, 또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여성들과 아이들의 목소리게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땅, 나무, 말, 염소, 새 등의 자연에 대한 깊은 염려와 슬픔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텍스트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선 ‘인간의 군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연의 반격’이라고도 말씀하셨죠. 전쟁뿐 아니라 기후-생태 위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을 하셨는데요,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인간 이외의 존재들의 목소리에 대해 좀더 민감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직후에 과학아카데미에서 회의가 열렸어요. 사람들을 어떻게 대피시키는 것이 효율적인가 같은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어요.
“좋습니다.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경고해주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자연에는 뭐라고 얘기하나요? 토끼들, 염소들, 사슴들한테는 어떻게 대피해야 한다고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을 듣고 저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웠어요. 인간 말고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던 것이지요. 제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쓰기 위해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점이 있는데, 여성들은 새가 날아가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런 증언을 곧잘 했어요. 그런데 남자들에게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새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체르노빌에는 그때 목숨을 잃은 동물들이 묻혀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이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줄곧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너무나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김정현 : 마무리를 겸해서 여쭙겠습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사랑과 늙어감이라는 주제로 책을 쓸 계획을 갖고 계시다니 기쁩니다. 캄캄하게 어두운 현실 속에서 전쟁과 억압, 인간적 모순과 고통에 대한 통찰 못지않게 사랑하고 늙어가는 일처럼 삶의 긍정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단히 늦긴 했지만 마침내 전 인류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은 물론이고,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전쟁들이 초래한 온갖 인간적·사회적·생태적 참상들을 깨닫기 시작한 것같이 보입니다. 기후변화도 그중 하나일 텐데요, 이 모든 ‘폭력’을 넘어설 수 있는 핵심적 가치가 있을까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저는 과거 소비에트체제 아래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백과사전처럼 엮으려는 목적으로 다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런 구상 아래에서 러시아, 벨라루스, 체르노빌,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를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지요. 20년 전 제가 이 작업에 착수하던 당시에도 전쟁은 진행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될 것인가. 저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철학을 바꿔야 됩니다. 지금의 세계는 소비라는 철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여러가지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풍요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해마다 차를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제가 몰고 다니는 자가옹도 오래된 것인데 굳이 바꿀 필요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거든요. 자동차 본연의 목적은 사람이 타서 이동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과시하기 위해서 자가용을 소유하죠. 제가 예전에 이 낡은 자동차를 몰고서 민스크에서 400km 떨어져 있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교를 다녔던 시골로 가족 묘지를 방문하러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곳 지역신문에 “알렉시예비치가 굉장히 낡은 오래된 차를 몰고 나타났다”는 식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만큼 사회 일반이 물질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이야기일 테지요. 저는 문학인들이 이런 것을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만족하고 더이상의 욕구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뭔가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저는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현 : 선생님께선 무엇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평화를 알고 싶습니다. 최신 연구들에 의하면, 우리 뇌가 좀 긴장을 하고 있어야 장수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오래 살고 싶다면 생각을 많이 하라고 말합니다. 요즘에는 단순히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신이 물질적 욕망을 좇으라고 인간을 창조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의 마지막에 썼던 것처럼, 인간은 늘 자신의 심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증오를 위한 심장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심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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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의 시대에,
그리고 어느덧 이 전쟁에 익숙해지고 있는 시대에.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재산보다 무가치해져버린 이 시대에.
그리고 눈앞에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이 모든 것에 너무 무뎌져버린 이 시대에.w
지금도 자행되는 끔찍한 학살들을 멈출 수 없음에 한없이 무기력함을 느끼며
오늘 나의 심장은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