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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Sep 07. 2024

새 쫓기와 동화책

마음 속 친구 오빠들은 어디에...

입추, 말복, 처서를 차례대로 보내면서 서장군(暑將軍)이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올 여름 한이라도 품어서 오뉴월 서리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더위에 KO패를 얼마나 당했는지 유난히 더 힘겨웠다. 에어컨, 선풍기 인공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왕부채바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다른 해 같으면 더위에 자다 깨는 일이 있더라도 에어컨 바람에는 잠이 들지 못했는데 올해는 달랐다. 갱년기 탓이라면 나만 유독 더웠어야 하는데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더위에 판정패했단다. 서장군(暑將軍)이 대한민국을 동남아보다 더 더운 나라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게 분명하다.


사람이 덥다고 아우성치는 동안 자연은 더위를 묵묵히 참아냈다. 시골집 포도나무를 보니 반 이상 포도 열매가 줄기에 달린 채로 건포도로 변했고 농약을 치지 않은 텃밭의 고추는 탄저병과 역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첫물 고추(첫 번째 따내는 빨간 고추)만 내주고 장렬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삼복더위 속에서도 조용히 할 일을 한 것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벼이다. 처서를 지난 들녘에는 이삭이 패어서 어느새 교집합( ⋂ ) 기호처럼 땅을 향하고 있다.

"더위에 요 녀석들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네." 반갑다. 논으로 뛰어 들어가 한아름 안아서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 했다가는 논 주인이 어느 작자의 소행인지 욕지거리를 퍼부을 것 같아서 참았다. (아버지 논까지 가기엔 너무 멀어서 땡볕에 엄두가 안 났다)

이렇게 이삭이 패고 나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것이 있으니 각종 새다. 특히 텃새 참새가 공공의 적이다.



출처 -강진군청 홈페이지


참새 소탕작전이 내 어릴 적 풍경 속에서도 펼쳐졌다. 날개도 없는 사람과 날개 달린 새가 고전적인 방법으로 대결한다는 것이 어쩌면 불리한 조건일 수 있다. 그러나 밥그릇을 빼앗고 뺏기는 중대사안인만큼 최선을 다해서 벼이삭을 지켜야 한다. 그깟 참새 한 마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절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참새떼가 한 번 훑고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참새도 가는 곳을 또 간다.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 아지트가 되는 것이다.

 

방학이 끝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참새 쫓기는 쭉 이어진다. 대체로 논이 마을에서 먼 곳에 있거나 논 주변 논두렁이 간신히 한 사람 지나다닐 폭이면 애초에 참새 쫓기를 포기한다. 그런 경우엔 참새들과 공생하자고 인심을 후하게 쓴다. 먹거나 말거나다. 그러나 농수로를 최측근으로 끼고 있는 논이라면 농수로의 덕을 톡톡히 본다. 물이 마르면 물대기도 좋고 넘칠 땐 물 빼기도 좋다. 또 농수로가에는 경운기나 소달구지(국민학교 때까지는 소달구지를 농사에 이용했다)가 다닐 정도의 길을 끼고 있어서 이곳을 무료 임대하듯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 즉 새 쫓기 특별본부가 이곳에 창설된다.

특별본부는 나무기둥 4개로 말뚝을 세우고 그 위에 천막이나 찢어진 우산들을 대충 얹어놓아 그늘만 생기면 된다. 바닥엔 돗자리가 제격이지만 마땅치 않을 땐 곰표 밀가루포대, 마대자루 다 쓸만하다.




대부분 논 가운데 허수아비를 세워 놓는 것으로 바쁜 일손을 대신한다. 그러나 허수아비는 방어형 소극적 자세다.  뭔가 새떼를 위협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두 번째 처방이 바로 두드리기와 고함치기 세트상품 되시겠다. 뭘 두드리냐, 요란한 소리가 나는 물건일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찌그러진 양은 양동이와 빨래 방망이 세트 제격이다. 소리가 고막 찢을 만큼은 나야 몸값이 높다. 이걸 두드리며 동시에 소리를 질러야 제대로다.

"퉁퉁 퉁퉁. 훠이, 훠이" 이걸 반복한다. 손으로는 두드리기 입으로는 고함치기.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흡사 사물놀이패와 같지만 새 쫓기가 더 고수다. 사물놀이는 입은 가만히 있잖나. 이건 입이 동시에 열일을 해야 한다. 이게 재미있을 것 같지만 10분만 해보면 그만하겠다고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다.

세 번째 처방은 설치는 번거롭지만 사용은 편리한 업그레이드 버전. 사각 논 둘레를 노끈으로 팽팽하게 빙 두른다. 그러고 나서 노끈에 소리 나는 것을 모두 달아놓는다. 이때 노끈이 여러 겹으로 튼튼해야 늘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기둥 세워주는 센스는 기본. 복숭아 통조림 먹고 난 깡통, 정어리 통조림 깡통, 알사탕 깡통 등 집 안의 온갖 깡통들이 총 출동한다. 이런 깡통에 작은 돌멩이를 넣어 튼튼한 노끈 줄에 달아놓는다. 그러고 나서 편히 앉아서 줄만 흔들어주면 줄에 달린 깡통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난다.

네 번째는 막대에 보자기를 매어서 깃발처럼 흔드는 것이다. 그러면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새가 도망간다. 이것은 논두렁을 돌아다니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 새 쫓기다.


그런데 새 쫓기가 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도 없는 농수로 비탈면이나 논두렁에 앉아서 새를 쫓다 보면 무지무지 심심하다. 이때를 대비해 친구와 물과 간식과 책, 특별히 재밌는 책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동네 여자 동창이 8명 있다. 이 중에 가장 공부를 잘하는 은희. 하필 은희와 5, 6학년을 같은 반이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서 은희를 이겨보려고 해도 은희는 시험만 봤다 하면 매번 올백이었다. 은희가 당연히 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은희뿐 아니라 은희네 5남매가 모두 공부를 잘했다. 공부를 잘해도 뻐기거나 그렇지 않고 수더분하고 소탈해서 친구들 누구라도 다 어울려 놀았다. 다만 은희 집과 우리 집은 한 동네여도 거리가 좀 있어서 일부러 은희 집까지 찾아가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단짝친구는 아니었다.


한 번씩 은희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언니가 은희집 근처에 있는 언니 친구 유진언니 집에 놀러 가는 길에 따라가곤 했다. 언니는 유진언니 집으로, 나는 은희 집에 가서 놀았다. 언니와 나의 공동된 목적은 동화책. 이 두 집에 가면 동화책이 많았다. 유진언니 엄마는 아*레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셔서 시골어른답지 않게 월부(할부) 책을 자주 들여놓으셨다. 당시 시골 어르신들께서 교과서 아닌 것은 책으로 취급을 잘 안 하셨다.


은희네 집에는 서울에서 E여대와 S대학(종로)에 다니는 언니 오빠가 있었다. 시골에서 인서울 하는 것은 보통일은 아니었다. 특히 고등학교를 인근 시내가 아닌 도청소재지에 있는 학교로 입학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은희네 언니와 두 오빠가 모두 도청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었다.  어쨌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언니 오빠가 읽을만한 동화책을 많이 사다 주었다.

책 모서리에 손이 베일만큼 빳빳한 새 책을 넘기는 재미는 내 차지가 못되었지만 빈약한 내 책꽂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동화책이 은희 집에는 많았다. 단, 책꽂이와 책상의 책이 항상 너저분하게 널려있어서 이전에 읽었던 책을 이어서 읽으려면 한참을 뒤적여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은희 집 작은오빠 방에 퍼질러 앉아서 은희와 함께 동화책을 읽다가 언니가 집에 가자고 부르는 소리가 나면 그때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서곤 했다.


이런 은희네는 항상 이삭이 팰 때부터 새 쫓기를 해야 했다. 우리 논은 탑천 근처 멀리 있어 새를 쫓지 않아도 되었지만 은희네는 동네 바로 앞에 논이 있어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언니는 유진언니네, 나는 은희네로 놀러 갈라치면 은희가 논에 새 쫓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어떤 날은 은희를 따라 함께 논두렁에 앉아 있기도 했다. 이때 동화책을 꼭 가져갔다. 읽을 만큼의 책과 찌그러진 양동이와 방망이, 물주전자를 들고 참새소탕작전 특별본부로 행차한다. 둘이 교대로 새 쫓기와 책 읽기를 하기로 했다. 내 집 논도 아닌데 순전히 동화책을 읽으려고 그러고 앉아있었다. 친구도 없는 집에 혼자 가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보면 목도 마렵고 졸리기도 하다. 해가 옮겨가면서 그늘도 논 쪽으로 도망가고 9월 햇살에 땀이 줄줄 난다.

'내가 책 읽는 시간은 짧은데 은희가 읽는 시간은 왜 이렇게 길지?' 그렇지만 시계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슬슬 심술이 올라온다. 양동이 두드리는 소리가 거칠다. '훠이, 훠이'함성은 힘들어서 진작에 그만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

"은희야, 언제까지 쫓아야 해? 집에 가면 안 되나?"

"안돼. 작은 오빠가 교대하러 올 때까지 있으라고 했어. 오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

"오빠는 언제 온대?"

"그건 모르지. 난 오빠 올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니까 너 먼저 가."

나 먼저 가라 하면 내내 새 쫓다가 책도 실컷 못 읽고 집으로 가야 하잖나. 힘들더라도 기다렸다 은희 작은 오빠가 오면 그때 은희집으로 함께 가서 책을 읽어야지. 그런데 힘들다. 주전자 물도 다 마셨다.

자꾸 날아드는 새가 얄밉다. 그래서 깡통이 달린 노끈에 힘을 주어 마구 흔들어댔다. 깡통 소리가 요란하니 새들이 후드득 날아갔다. 팔이 아파 잠깐 쉬었더니 또 날아와 앉았다.

'저 새떼들. 왜 자꾸 날아들어.' 이번에는 더 힘껏 흔들어댔다. 그런데 아뿔싸.

햇볕에 색도 바래고 약해진 노끈을 너무 힘껏 흔들어서 그만  '뚝' 끊어져버렸다. 이걸 어쩌나. 끊어진 노끈의 한쪽이 벼가 익어가는 논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수습을 하려면 논에 들어가서 튕겨져 나간 노끈을 찾아와야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논두렁 가장 무서운 게 뱀 아닌가. 도저히 뱀이 나올까 봐 논에 들어갈 수 없다. 논두렁 걷다 보면 앞에도 뱀, 뒤로 돌아가도 뱀이 있어서 놀란 적이 많았다.


엎친데 덮친 격 저 쪽에서 은희 작은 오빠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큰일이다. 오빠가 오기 전에 얼른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 은희와 둘이 발만 동동 구르는 동안 은희 작은 오빠가 왔다.

"오빠, 줄이 끊어졌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늬들이 한 건데 책임져야지. 오빠는 몰라."

은희 오빠는 히죽거리며 놀리듯 말을 했다.

이런 인정머리 없는 오빠 같으니라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놀리기까지.

그러더니 털썩 돗자리 위에 주저앉아서 역시 책을 꺼냈다. 우리가 읽는 동화책은 아니고 교과서인지 책에 밑줄이 엄청 많이 그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더위에 힘들게 새 쫓기만 하다 읽고 싶은 책은 못 읽고 일까지 벌여놨으니. 나는 억울해서 울쌍이 되었다.


그때 은희 작은 오빠가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신발을 벗더니 작은 논두렁을 타고 논으로 내려갔다. 까슬한 벼 사이를 이리저리 가르며 다니다가 튕겨져 나간 노끈을 찾아 쥐고 올라왔다.

그럼 그렇지. 공부 잘하고 착한 오빠가 모른 척할 리가 없지.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진 오빠가 지게를 지고 소 꼴을 베어서 집으로 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생들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까슬한 벼 잎을 헤치고 다니느라 오빠의 팔에 붉게 줄이 여러 개 났다. 오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어진 노끈을 다시 이어주었다. 발에 덕지덕지 묻은 흙을 풀에 쓱쓱 닦았다.

"간신히 이어 놓았으니까 오늘은 더 이상 줄 흔들지 말고 이제 집에 가."

 아까 놀리던 그 오빠가 아니었다. 은희 작은 오빠 덕분에 새 쫓기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맘껏 동화책을 읽을 있었다.




은희 작은 오빠는 논두렁에서도 공부하는 오빠라고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책벌레였다. 그만큼 공부도 잘해서 도청소재지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3년 후 우리나라 최고 국립대 S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법학과 4학년 때 첫 번째로 도전한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중매쟁이들이 졸업식장에 줄을 섰다는 후문이 들렸다.

사법 연수원 2*기 출신으로 현재 서울지검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이름을 검색해 보니 네이버가 알려준다.)

그가 마을을 위해서 어떤 이로운 일을 했다는 미담은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어떤 사건을 맡아 판결을 하든 정의구현을 위해 공명정대한 판결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덧) AI허수아비에 대한 동화로는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등 작가님의 '허수의 친구'  작품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htjgk5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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