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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Oct 12. 2024

혼자만의 오해였던가

내게 가을바다는 - 2

후배 Y의 전화는 의외였다. 지금까지 동아리 모임 이외에 한 번도 따로 만난 적도 없었고 다른 남자 후배들처럼 빈 강의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모여서 함께 식사한 적도 없었다. B나 다른 후배들이 강의 이외의 시간에 동아리 방에 상주하는 것과 달리 Y는 동아리 방에 가끔 왔다. 게다가 우리 동아리방의 목적과 취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스터디 모임에도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쟤는 대체 왜 동아리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여자 동기들끼리 얘기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Y가 걸어온 전화라니 뜬금없었다.


"아, 누나 저 Y에요. 잘 지내죠? "

"어,... 그래. 잘 지내지? 방학인데 어쩐 일이야?"


솔직히 정말 어쩐 일이었다. B나 S나 H 이런 후배들이라면 학기 중에 날마다 얼굴을 마주칠 정도였으니 선배가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서 한 전화라는 게 설득력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Y라니.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누나 아르바이트 한다고 들었어요."

"응. 누나가 좀 바빠. 수영장 아르바이트하거든. 넌 어떻게 지내?"

"네. 저... 누나 아르바이트하는데 가도 돼요? J랑 함께요."

"수영장에? 그래. 오고 싶으면 와도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느라 내가 시간 내긴 힘들어. 미안. 그래도 올래?"


방학 동안 나는 본가에 머물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컨트리클럽이 있었는데 거기 부속 수영장은 실외전용 수영장이라서 여름시즌에만 운영을 했다. 다른 컨트리클럽도 마찬가지겠지만 외곽으로 쑥 빠진 곳에 위치해 있다. 자가용 없이 그곳을 가기엔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려 두어 번 갈아타고 가야 한다. 택시를 이용하려면 일당의 1/3 택시비로 지출될 정도의 거리다.

알바를 하는 우리가 그곳을 통근하는 방법은 셔틀버스였다. 직원들만 이용하는 셔틀버스였다. 컨트리클럽에서 캐디(caddie)로 근무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려 거기 도착하는 셔틀버스를 7시 40분에 타야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녀들과 함께 세 군데 정도의 승차장에서 버스를 함께 타고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지에서 오는 Y의 교통편이 몹시 번거로울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에는 Y를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솔직히 Y의 방문이 부담이었다.

Y가 방문하겠다고 약속 한 날 저녁 다시 전화가 왔다. 할머니를 도와서 일을 하다 말벌에 쏘였다고 했다. 응급 처치는 했지만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셔서 본가가 있는 서울에서 한동안 쉬기로 했단다. 무엇보다도 말벌에 쏘인 곳이 콧등이어서 도저히 얼굴을 보여 줄 수가 없단다. 수영장이라는 곳이 얼굴에 뭘 가리고 놀기에는 마땅하지 않은 곳이지 않은가. 얼굴 상처가 다 나으면 꼭 방문하겠다고 미안해했다.


"Y야, 큰일 날 뻔했구나. 미안해할 것 없어. 치료가 중요하지. 수영장은 안 와도 괜찮아(진짜 오지 마)."


Y의 전화를 받는 동안 나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벌침에 부어오른 코가 자꾸 떠올라서였다. 못된 선배다.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열흘 후 Y와 J는 수영장으로 찾아왔다. Y의 코부터 살폈다. 짓궂게도 부어오른 Y의 코가 상상되어 자꾸 웃음이 났지만 왜 웃는지 그들은 몰랐을 거다. 그들에게 이용시설을 간단히 안내하고 스낵코너에서 음료와 간식을 주문해 주었다. 내가 담당하는 구역은 여성 탈의실 & 물품 보관소 & 수영복 대여 코너로 2인 1조 배치였다. 근무 중에는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으니 두 후배가 왔어도 충분히 챙겨 줄 수 없었다. 남자후배를 여성 탈의실로 불러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후배들은 생각보다 빨리 수영장을 떠났다. 서울에서 기차로 몇 시간을 달려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수영장에 왔다는 것 자체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Y가 왜 수영장에 왔는지 의아했다. 단순히 수영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다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Y는 그 어떤 코멘트도 없이 J와 잠깐 물놀이를 하고 돌아갔다. 돌아간 이후에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기에 엉뚱한 후배라는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40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니 8월 중순이 되었다. 방학을 이대로 마무리할 수 없어 아쉬워하던 중 마침 졸업생과 재학 예비역 선배들 몇이 안동, 경주 여행을 진행한다기에 나도 합류했다. 선배들은 배낭에 버너, 코펠과 간단한 식재료를 챙겨 왔고 나는 개인물품만 챙겨갔다. 하회마을과 첨성대 인근에서 민박을 했다. 준비물을 시작으로 아무것도 신경 쓸 것 없이 편하게 따라다니기만 하는 여행이었다. 그동안 후배들을 챙기느라 실속이 없었던 내게 그저 선배들이 안내하는 대로 졸졸졸 따라다니는 여행은 완전 꿀이었다. 수영장에서 40일 동안 수영복만 지겹도록 보아왔던 나는 하회마을을 휘감는 물길과 새벽의 푸르른 기운과 낯선 사투리가 주는 생경함에 마음을 쏙 빼앗겼다.


1학기를 마친 동기들이 속속들이 군입대하기 시작했다. 입대송별모임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떼창으로 불러 기어이 한숨과 눈물을 빼게 만들고야 마는 만행을 저질렀다. 동기들은 눈물을 참고 대한민국 육해공을 책임지겠다고 당당히 입대했다. 적어도 여학우들이 보기엔 그랬다. 군 입대 후 들리는 후문에는 죽을 만큼 군대 가기 싫었다는 둥, 울면서 끌려갔다는 둥,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갔다는 둥 여러 무성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주로 논산훈련소를 거쳐 육군으로 입대했다. 동기애가 끈끈한 여자 동기들이 자대배치받은 동기들에게 편지, 소포를 보내주었다.

휴가 나온 선배들이 가끔 군대 선임들의 압력으로 펜팔형식을 띤 편지교류를 간절히 부탁했다. 검게 그을린 데다 군인아저씨 특유의 군기 바짝 든 모습이 부탁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대 선임이나 동기 중에서도 나름의 기준을 갖고 걸러서 선별된 명단을 주고 갔다. 선배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얼굴도 모르는 군인 아저씨에게 여자 후배들이 편지를 보내줬다. 대신 1인당 1통으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휴가 나온 동기들은 속속들이 서클룸을 찾아왔고 우리는 그들에게 정문 앞 학림반점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고 2차로 동동주집이나 맥주집으로 끌고 가 거나하게 위로를 해주었다.


"준모야, 대한민국 안보가 네 어깨에 있어. 공군은 준모 네가 책임지는 거야. "

"야, 늬들 공군이 모두 전투기만 띄우는 줄 알지? 우리가 거기서 뭐하는지 알아? 비행장 활주로 청소한다."

"명수야, 비리비리 네가 군대를 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요새 군바리 숫자가 모자라나 보다."

"무슨 소리야? 나도 당당히 신검통과한 검증된 몸이라고. 옷 벗고 한 번 보여줘?"

"컥컥,, 큰일 날 소리 하네. 절대 안 돼. 눈 버려서 술맛 떨어진다 야."


우리는 그들의 주특기가 무엇인지 보직이 무엇인지에는 관심 없었다. 건강하게 있다가 때 되면 휴가와 외박을 나오고 그럴 때마다 밥과 술을 사주고 때 되면 우르르 몰려서 면회 다니는 것으로 동기애를 발휘했다. 가끔 휴가 나온 군바리에게 미팅을 주선하는 엄청난 특혜를 베풀기도 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Y는 학기 내내 예전처럼 조용히 보냈다. 솔직히 그가 뭘 하고 보내는지 파악이 안 되었으니 그가 조용한가 보다 했다. 여전히 동아리방에서 어쩌다 한 번 마주쳤개강모임과 월악산 가을 MT에 참석했다. 주로 동기 위주로 끈끈한 학우애를 유지했던 내게 Y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동아리에서 그는 단체 행사의 배경 어느 한 언저리를 차지하는 후배 중 하나로 존재했다.


학교에는 봄, 가을 두 번의 축제가 있었다. 봄에는 주로 가두판매와 예술제 행사 위주로, 가을에는 가두판매와 체육대회 위주로 진행했다. 축제기간에는 미팅, 소개팅이 넘쳐났다. 외로운 청춘들은 사랑의 작대기를 하나씩 쥐고 누구에게 들이밀지를 고심하며 미팅 주선자가 되었다가 소개팅 대상자가 되었다가 분주했다. 그러다 펑크 난 소개팅의 땜빵이 되기도 했다. 아침부터 종일 교정의 스피커에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이승환, 신승훈, 김건모, 푸른 하늘, 015B, 무한궤도, 강수지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마음은 헬륨가스를 빵빵하게 채운 풍선처럼 가을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포토스폿으로 인기 있던 공대 앞 플라타너스나무 아래 벤치에는 커플들이 다정했고 학생회관 앞에서 의대로 올라가는 이쁜 오솔길도 연인들이 줄지어 걸었다. 억새풀밭에는 손잡은 커플들이 한없이 둘레길을 거닐다 나왔다. 정작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인문대 옆 대운동장은 헐렁했다. 이렇듯 축제 기간의 만남은 분위기에 휩싸여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로 진전될 가능성이 평소보다 높았다.


축제를 며칠 앞두고 여후배 K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관심 있는 동기가 있는데 이번 축제기간에 고백하고 싶다고 조언을 구했다. 그녀의 관심 있는 동기는 다름 아닌 Y였다. 솔직히 수영장 사건으로 Y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그 후로 모종의 사건이 전혀 없었기에 후배의 한 때 흔들림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나는 흔쾌히 그녀의 SOS를 접수했다. Y의 하숙집에 전화를 걸었다.


"Y야, 나 서연이야.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어때?"





섬진강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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