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테 Nov 18. 2024

김장을 마치고

누굴 위한 김장인가??

몇 해 전부터 '김장하지 말자. 사 먹자. 힘들다.' 이번 김장을 마지막으로 내년엔 꼭 그렇게 하자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친정식구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다. 5년 전쯤부터 해마다 하는 이야기다.


우리 집 김장 구조는 이렇다.

아버지께서 마당 텃밭에 배추를 200 포기 정도 심으신다. 김장배추 외에 얼갈이나 경종배추, 갓배추는 별도로 심으신다. (무슨 배추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딱 봐서 육안으로 구분을 할 수 있긴 해도 정확한 용도를 저는 잘 모릅니다.) 양념으로 쓸 대파, 쪽파, 양파, 마늘도 직접 농사하신다.

내년부터는 김장김치를 사 먹든 직접 담가먹든 각자 도생하자고 했건만 이듬해 아버지는 어김없이 늦여름에 배추모종을 심으신다. 그러면 마당에서 자라는 배추를 어떻게 하고 사 먹느냐고 자연스레 일이 진행된다.


배추 농사를 지으셨으니 어쩔 수 없이 김장 준비를 해야 한다. 주로 아버지, 어머니, 내 몫이다. 주말이고 새벽이고 뭐고 틈나는 대로 마늘을 미리 까서 찧고 고추 수확철엔 좋은 고추를 알아봐서 구매해야 한다. 재래시장과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서 너 차례 다니면서 부재료를 사다 나르고 더 넓게는 생새우를 사다가 젓갈을 직접 담가서 쓰기도 한다. 때론 젓갈과 액젓을 강경까지 가서 사 오기도 한다. 편리한 온라인 구매는 어머니 김장사전에는 없는 얘기다.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고 맛을 보아야 믿고 구매하신다. 이 모든 전반적인 일을 어머니 모시고 다니면서 한다. 사용할 고무장갑과 당일에 드실 식재료 관련 구매 등은 온오프라인으로 한다.

11월 셋째 주 토요일이 김장날이라고 해마다 못 박아 놓았다. 셋째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라서 토요일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염체 없게도 김장 때문에 몇 해째 일손을 보태지 못했다.


셋째 주는 평일에도 바쁘다. 새벽이고 밤이고 업무시간 외에 김장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틈틈이 준비를 한다. 김장 전날에는 휴가를 내서 새벽부터 일한다. 이 날은 새벽기도회도 가지 못한다. 예수님도 우리 집 김장에게 밀려나셨다. 지난 금요일엔 휴가를 내고 새벽 두 시 삼십 분에 일어나서 시골 가서 배추 간절 이를 했다. 그 와중에 서울에서 내려올 두 자매가 가져갈 쌀을 미리 체크한다. 이제 연로하셔서 우리 집 논농사를 동네 선배가 운영하는 고은영농조합에 일임하셨으니 그 정미소에 가서 쌀도 미리 가져다 놓아야 한다.

친정 집 며느리되는 올케언니는 초등교사라서 학교일과가 끝나야 합류할 수 있는 데다 며느리보다는 딸이, 게다가 남편 없는 딸과 일하기 편하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어떠한 이유 불문하고 내가 해야 하는 게 맞다.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되면 당일에 김치 통 들고 와서 각자 들고 갈 만큼 버무려서 가져간다.

작년부터 고맙게도 서울 사는 여동생이 전날에도 휴가를 내고 와서 도왔다. 4남매가 모두 뻔뻔하게 그러지는 않는다. 당일에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언니는 언니대로 물심양면으로 차에 뭔가를 잔뜩 싣고 내려온다.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껏 한다고 하지만 해가 갈수록 김장 준비하는 일정이 벅찬 것은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 주특기는 '지금 당장, 지금 바로'이다. 미리 말씀을 하시라 해도 그게 잘 안되신다. 그러니 내가 좀 답답할 때가 있다. 내 스케줄을 변경하고 약속을 취소하고 어머니 말씀을 따를 때가 많다.

지척에 사는 아들 며느리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 어머니에게는 나만큼 만만한 자식이 없다.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비롯해서 뭐든 부르신다. 나머지 두 딸은 서울에 있으니 부르실 수도 없거니와 눈에서 안 보이면 관심도 사라지는 법. 우린 4남매. 어떨 땐 이게 벅차서 분담하면 좋겠다 싶을 때도 많다.

아마도 내가 남편이 없으니 부리기도 쉽고 시간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지 않을까 한다.

한 번씩 답답한 마음에 오빠랑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리면 "그럼 내버려 둬라. 나 혼자서 갔다 와야지." 풀이 죽어 말씀하신다. 그러면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가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계절인데 가을과 겨울 사이에 콕 끼어있는 김장철은 조금 우울하다. 일이 많아서 벅차다. 물론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기회 닿을 때 효도하자는 기본 양심은 장착하고 있다. 신앙적, 도의적 측면에서도 그래야 하고 그것이 내 마음도 편하고 두루두루 다 평안한 줄 알고 감당한다.  


깨끗하고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직접 김치를 담가먹는 게 좋긴 하다. 그렇지만 주로 일을 하게 되는 입장과 그렇지 못한 입장 차이가 있다. "내년부터는 진짜 김장하지 말고 김치 사 먹자." 이 말은 서로 심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입장에서 비롯된 발언임을 안다.

친정과 가까이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다 할 발언을 못하는 입장이다.

아버지께서 텃밭 놔두고 김치를 사다 먹는 게 말이 되냐 하신다.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두 자매의 입장도 이해가 되니 그렇다.




한 달 만에 내려온 아들. 화요일 오후수업이니 화요일 오전에 서울에 올라가겠다는 아들을 등 떠밀어 올려 보냈다. 동생이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올라갈 짐이 김치며 쌀이며 채소며 도저히 언니 차로 함께 다 갖고 갈 수 없었다. 아들은 집에 더 머물며 쉬다 올라가겠다는데 동생 짐을 싣고 가라고 다독였다. 김장준비로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해먹이지 못했다. 주일엔 아침부터 추수감사절기 교회일정으로 바빴다.

졸업논문과 임관종합평가와 국정원과 전방부대 탐방 등의 분주한 일정으로 피곤했는지 감기와 배탈증세가 있는 채로 집에 내려온 아들이다. 김장과 오빠 집들이 일정으로 바빠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들을 챙겨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김장 뒷심부름에 " **아, 이것 좀 도와줘." 하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를 불러댔다. 거기 조카 둘이 더 있었지만 만만한 게 자식 아닌가. 어머니가 내게 그러시는 것처럼 나도 내 아들만 일을 시켰다.


일요일 늦은 오후 짬이 났는데 피곤했는지 아들은 늦은 낮잠을 자고 나는 브런치에 댓글달기를 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저녁을 굶고 올라가겠단다. 고속도로 장거리 운행 중 급히 화장실에 가야 할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죽을 끓이겠다니 그것도 불안하다고 안 먹겠단다. 급히 따끈한 매실차를 먹이고 지사제를 찾아 먹였다. 김치는 볶음김치나 겉절이만 먹는 아들인데 김장 겉절이도 싫다 해서 새우전과 장조림만 챙겨 보냈다. 마음이 씁쓸하고 무거웠다. 누구를 위한 김장인가. 그렇게 아들은 빈 속으로 밤 9시에 동생네 짐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온 가족 김장을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이야기지, 어머니 건강이 더 나빠지시거나 소천하시면 이런 김장은 추억 속에서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나는 김장김치를 사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니 해마다 김장을 하게 되겠지.


북적북적 그때가 좋았는데 하면서 후회할 날이 올 줄 알면서도 피곤한 몸과 울적한 마음이 재빨리 회복이 안된다. 이럴 때 좋은 일 하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서 어지간한 크기의 김치 두 통을 팔 다친 협업동료에게 선물했다. 팔도 아프고 원래 김장도 안 하는 분이라서 요긴할 거다. 입맛에 맛든 안 맞든 그건 그 집 사정이다.

맘 같아선 이 분도 퍼주고 저분도 퍼주고 다 퍼주고 싶은데... 아직 그럴 용기가 없다.


글 쓰는 일을 일주일이나 쉬었더니 글이 우툴우툴 거칠다. 그런데 머리가 꽉 막혀 아무것도 안 써진다.

억지 쓰기로 간신히 한 편 썼다. 이걸 글이라고 발행해야 옳은 것인가 아닌 것인가 판단도 서질 않는다.


김장양념 섞는 아들
김장하는 세 자매
당귀와 황칠(나무)을 넣고 삶는 수육
매거진의 이전글 어설픈 솜씨 낡은 재봉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