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게임
칠십리 감귤 5kg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성능 좋은 선별기를 거쳤는지 균일하고 껍질과 과육 부분에 적당한 틈이 있어 껍질을 벗기기에도 수월했다. 마침 귤이 똑 떨어져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귤. 앙증맞고 동글한 모양부터 마음을 이끄는 데다 껍질 한 줄만 벗겨도 공명이 되어 울리는 향기의 향연이 온기를 부드럽게 풀어놓는다. 그날 먹은 어떤 음식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반응. 혀의 돌기마다 침이 충만해지고 만다. 생김생김을 눈에 소묘하듯 그리면서 손으로는 껍질을 정성 들여 한 줄 한 줄 벗겨낸다. 과육에 달라붙은 귤락을 제거하는 일은 어림도 없다. 최대한 귤락도 많이 붙어있게 껍질을 벗기는 데 온 마음을 쏟는다. 귤 알맹이를 양낭이라고 부르는데 이 양낭들이 대체로 10개씩 한겨울밤 아랫목 이불속 어린 우리들 발처럼 꼭 붙어 있다. 이걸 쪼개서 반으로 만들고 그다음부터는 양낭을 하나씩 떼어먹으면서 우주의 신비를 입으로 먼저 느끼는 것이다. 입안에서 한 번 침으로 굴리고 나서 상하악 치아 사이에 넣고 힘을 주어 누르면 톡 하고 터지는 양낭 속 사낭들. 사낭들이 분리되면서 입 전체로 퍼지는 새콤달콤한 맛. 어린 입에서 이루어졌던 화학반응, 사계절의 바람과 비와 이슬과 햇빛이 양낭 한 개에 옴팡지게 담긴 환상의 맛. 어릴 때 귤이 주는 감흥이었다. 귤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내가 자란 동네는 면소재지이지만 시내로 나가는 길목에 있어서 면사무소, 보건소, 우체국에 가려면 족히 30여 분은 걸어야 했다. 면내에는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비슷한 거리에 두 개의 국민학교가 있었고 그중 한 곳은 내가, 또 다른 한 곳은 이종사촌이 다녔다. 면사무소 근처에 이모가 살고 계셨다.
이모는 어머니의 셋째 언니다. 이모는 가구점을 운영하셨는데 우리는 그런 이유로 이모를 '농방 이모'라고 불렀다. 안채는 가구점 길 건너편에 있었고 안채 마당을 지나면 목공소가 있었다. 목공소에서 목수들이 제작한 가구를 농방에 진열해서 판매하는 구조였다.
이모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한 이모부의 둘째 부인으로 시집가셨다. 이미 2남 4녀의 자녀가 이모부에게 있었고 재혼하셔서 딸 셋을 더 낳으셨으니 모두 9남매를 키우셨다. 게다가 목공소의 목수들, 가구 배달하는 직원까지 합하면 열다섯이 넘는 대식구의 끼니를 챙겨야 했다. 끼니가 아닌 때에는 가게를 지켜야 했으니 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늘 화장을 곱게 하시고 정갈한 차림새를 하셨다. 정이 깊고 눈물이 많은 분이다.
신발가게나 약국, 재래시장에 가려면 이모 가게를 지나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이모가 앉아계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심부름을 다녔다. 이모가 가게 유리문 안쪽에 앉아계시면 인사하러 들어갔다. 그러면 이모가 찐빵이며 튀김, 만두, 꽈배기 등을 얼른 사다 주셨다.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손에 들려주기도 하셨다. 그 먼 거리까지 심부름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반색하며 좋아했던 이유다.
이모의 막내딸이 나와 동갑내기다. 이모가 늘 바쁘신 걸 어머니도 잘 아시는지라 자주 놀러 가지 말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그럼에도 몰래 놀러 다녔는데 반갑게 맞아주고 또 놀러 오라는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이모가 안 계시고 사촌 혼자 있을 땐 숨바꼭질을 과감하게 했다. 신발도 벗지 않고 진열해 놓은 장롱 속을 마구 드나들었다. 매장 안쪽 진열공간으로 깊이 들어가면 어두컴컴했다. 어둠과 술래의 발자국 소리가 장롱 안에 숨은 내 심장을 방망이질하는 긴장감. 재미가 쏠쏠했는데 워낙 진열된 가구가 많다 보니 어느 정도 찾다가 어둠이 슬슬 무서워질 때면 슬그머니 장롱문을 열어서 술래가 얼른 찾도록 빌미를 주고 놀이를 마쳤다. 팔려고 진열해 놓은 가구가 망가지는 것은 장난꾸러기들이 걱정할 몫은 아니었다. 주인의 딸이 주도한 놀이였으니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그날은 이모가 가게에 앉아계셨고 사촌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이모가 간식으로 귤을 주셨다. 당시 귤보다 더 맛있는 간식은 없었다. 날마다 물리도록 먹는 고구마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몫을 따로 주지 않으셨기에 사촌보다는 더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양심이 작용했다. 귤을 먹는데 자꾸 빨라지는 내 손과 입이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다. 마침 사촌이 놀이 제안을 해왔다. 세상에 이보다 더 쉽고 재미있는 놀이는 없었다. 바로 '귤 빨리 먹기'였다. 부잣집 막내딸과 가난한 집 둘째 딸의 귤 먹기 대결은 해보나 마나였다. 부잣집 막내딸은 놀이, 가난한 집 둘째 딸은 생존게임 같았다. 귤을 먹다가 구토할망정 많이 먹고 싶었다. 게다가 대결이라니 눈치 볼 필요 없이 무조건 많이 먹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날 게임에 등장하게 된 귤은 크기가 탱자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처음엔 한 개로 시작했다. 그다음엔 두 개. 세 개. 개수가 늘어갔다. 귤의 크기가 작아서 부담 없었다. 매번 필사적인 나를 이길 수 없으니 사촌이 점차 개수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더 이상 배가 불러서 먹을 수 없을 때 슬그머니 사촌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사촌은 속셈을 모르고 이겼다고 해맑게 웃었다. 모든 게 기분 좋게 충만했다. 그렇게 귤 봉지에 있던 귤을 몇 개 남겨두고 껍질만 수북한 놀이가 끝났다.
썰매를 타다 물에 젖은 양말을 농수로 둔덕에 지핀 불에 말리거나, 뉘 집 마당에서 편을 갈라 앙감질로 돌차기를 하고 있을 오빠가 생각났다. 골목 어디선가 벌게진 손가락에 까만 고무줄을 잡기도 하고 팔랑팔랑 뛰어오르며 고무줄을 넘나들거나, 윤기 잃은 머리카락이 모두 엉켜 빗질도 안 되는 낡은 바비인형을 갖고 놀이를 하는 언니와 동생 생각도 났다. 귤로 배가 부른 후에 혼자만 양껏 먹은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또 그런 날엔 어김없이 기름이 스며들어 얼마쯤 투명해진 튀김 봉투나 꽈배기 봉투를 손에 들려주시는 이모의 투박하고 다정한 손길이 어린 내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얼었다 풀려 질척이는 길에 사뿐사뿐 발자국을 남겼다.
그 작고 둥근 열매 속에 추운 날의 고요와 잔잔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