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봄바람은 처녀들의 치마폭에 스며든다는 말이 있다. 예전 우리나라 처녀들이 통치마를 즐겨 입었는데, 봄나물 뜯으러 들녘으로 나가면 휘 몰아치는 거친 바람에 통치마 자락이 흰 속살을 드러낸 금낭화처럼 부풀어 오른다 하여 생겨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무렵 부는 바람을 어머니는 갓난쟁이에 비유하셨다. 어스름이 내리면 어김없이 칭얼대다가도 밤중이 되면 어느새 잠드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가을걷이로 벼를 베어낸 밑동이 겨우내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살얼음이 지던 자리에도 봄볕이 스며든다. 해거름까지 종일 찬바람을 맞으며 구슬치기를 하던 소년의 거친 손등에도 마침내 오돌토돌 튼 흔적이 서서히 사라질 즈음이다. 그때 단비를 머금은 벚나무와 다소 성급한 목련이 한껏 정갈한 옷매무새로 단장하고 간지러운 햇살과 노닥거린다. 마치 꽃을 시샘하듯 뒤늦게 몰아친 바람처럼, 바람이 뒤섞이지 못한 노여움을 마구 풀어내면 죄 없는 나무들은 그저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몸살을 앓는다. 그 바람에 꽃 향이 흩어지고 여린 꽃잎들이 날리며, 사람의 마음마저 하릴없이 빈틈을 찾아 휘돌게 하니 그 심술이 참 얄궂다.
샛바람의 노기도 잠잠해질 즈음이면 고향으로 가는 길, 벼를 심었던 논마다 여린 초록 싹이 올라온다. 벼를 베어낸 자리마다 땅속 뿌리가 겨우내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싹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보리밭인지 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부러 논길을 가로질러 달리며 저대로 두어도 모내기 없이 벼가 자라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가보면 어느새 기계로 쟁기질을 마친 논마다 붉은 흙이 고깔처럼 뒤집혀 있고, 여린 초록 싹들은 말라 비틀어져 있다. 새 봄에는 새것을 심는 것이 옳다는 듯하다.
한창 봄볕이 물오르고 한낮에는 얇은 외투 없이도 제법 따뜻해 나른해지기 쉬운 어느 날, 배가 달라붙지 않게 A라인 면 원피스를 입은 내가 논두렁 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점심상을 물리고 막 논으로 나선 참이라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다. 논 한가운데 고속철 교각이 없던 때라 멀리 지방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스물아홉의 나는 어미 소를 졸졸 따라다니는 송아지처럼 친정 엄마를 따라나선 길이었다.
응급실에서 며칠을 사투하시던 시모님께서 중환자실 문 앞에도 이르지 못하고 끝내 응급실에서 떠나셨다. 결혼한 지 한 달 반 만이었고, 첫 설 명절을 코앞에 둔 때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아직 상복도 입지 못했는데 아랫배가 짜르르 저려 오더니 속옷이 젖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피가 비쳤다. 급히 시누이와 함께 장례식장을 나와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첫 아이를 임신한 지 이제 막 4주가 지났다고 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장례 절차는 막 시작된 참이었다.
급작스러운 시모님의 죽음에 몸도 마음도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새 생명이 찾아온 기쁨보다 막막한 내일이 먼저였다. 입맛 까다로운 시부님과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어린 내 어깨 위로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철없던 새댁이었던 나는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시댁 식구들의 아픔을 헤아릴 여유도 너그러움도 없었다. 종일 시댁 대문간에 묶인 강아지 같은 신세였다. 아침 여덟 시, 점심 열두 시, 저녁 다섯 시 삼십 분이 시부님의 식사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맞춰 하루가 흘러갔다. 사무실에 나가 점심을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하혈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 휴대폰도 없던 시절,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토요일 친구의 전화를 받고 시댁 거실에 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안방에는 시부님이 계셨지만 부끄러움도 잊은 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앞으로 펼쳐질 내 가시밭길이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눈물 같았다. 울어도 마음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눈물에 잠겨 있을 때 뱃속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혈은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약을 함부로 먹을 수 없어 고민 끝에 친정 식구들이 보약을 지어 먹던 한의원을 찾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을 맞고 한약을 지어 들었다. 아직 따끈한 한약 꾸러미를 안은 채 곧장 친정으로 향했다. 그제야 챙겨야 할 사람이 시댁 식구들이 아니라 내 아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고무줄 통바지를 입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친정엄마의 뒤를 따라 반질반질한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내가 사뿐사뿐 논둑길을 걸었다. 원피스 아래로 맨다리를 드러내면 살이 탄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답답하던 숨통이 트이고 깊은 숨이 절로 나왔다. 그날 엄마는 논 한쪽 모서리에 낮은 진흙 둑을 둘러 물이 드나들지 않게 만든 못자리를 살피러 가는 길이었다. 물꼬를 트고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게 조절하며 싹이 잘 자라는지 살피고 비닐을 덮었다가 걷었다. 나는 그 사이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제비꽃과 냉이꽃을 뜯어 향을 맡고, 토끼풀 사이를 헤집으며 네 잎 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하혈하는 몸에 쪼그리고 앉으면 좋지 않다고 말리면서도, 엄마는 그 말 외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반대하던 결혼을 무릅쓰고 한 딸의 삶이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짐작되지만, 끝내 아무 말도 보태지 않으셨다.
그저 봄나물을 뜯어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셨다. 나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입덧을 억누르며 서툰 손으로 차려 시부님께 올리던 밥상과는 달랐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겸상해 먹는 따뜻한 밥상이었다. 참기름 냄새가 그릇 둘레에 옴팡지게 묻은 반찬을 다음 끼니를 생각해 아끼지 않고 남김없이 비웠다.
아버지는 푸성귀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수돗가 옆 텃밭에 씨앗을 아낌없이 뿌려두셨다. 때마침 빽빽하게 돋은 어린 상추가 보드랍게 자라고 있었다. 상추를 솎아 씻어 물이 채 빠지기도 전에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쑥갓과 마늘대궁의 여린 풋내를 즐기며 한약도 빠짐없이 먹었다. 그렇게 딱 일주일이 지나자 하혈이 멎었다.
바람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아기의 낮잠 같고, 햇살은 막 쪄낸 쑥개떡처럼 따뜻하고 말랑했다. 하혈하던 몸으로 쪼그리고 앉아 땅의 기운을 들이마시던 그 논두렁의 흙 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어떤 색의 원피스를 입었는지, 어떤 낮은 굽의 신발을 신었는지까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하혈이 멎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뒤, 시부님이 세상을 떠난 지도 스물다섯 해, 남편이 떠난 지도 다섯 해가 지났다. 길고 질척이던 시절이 지나고 나는 어느새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도, 고무줄 통바지도 아닌 어설픈 중년의 모습으로.
다시 그곳에 가 그 논두렁에 앉아보고 싶어도, 이제는 교각 위로 쉴 새 없이 지나가는 고속기차가 그 시절을 불러오는 일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이다. 그 논두렁을 매만지던 손으로 토끼풀꽃을 따 꽃시계를 만들어 손목에 걸어보면, 그 허전하고 아릿한 마음이 어스름 바람처럼 조금은 잦아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