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방지턱을 넘어-2

by 라이테

꿈속인 듯 걱정에서 비롯된 가상체험인 듯 온갖 상황이 혼란스럽게 펼쳐졌다. 잠이 든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겨우 20분이 지나있고 기를 쓰고 잠이 들려고 뒤척이다 보면 다시 30분이 지나있었다. 밤새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다 쉬다 하는 귀뚜라미처럼 내 옅은 잠은 분침과 시침 사이에서 수면과 불면을 비벼 둥둥 떠돌다 아침이 되니 달아나버렸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월요일 아침,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가까운 피부과로 출발하려는 중이라고 했다.

피부과 대기실 의자 첫 줄 가운데에 어머니가, 맨 뒷 줄에 오빠가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앉아있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사람 같다.

어머니 옷차림부터 훑었다. 머플러, 장갑, 따뜻한 외투로 잘 입고 오셨다. 어머니도 나를 보자마자 당신 외손녀가 그 엄마에게 사줬다는 롱패딩을 말씀하셨다.


"날 추운디 따숩게 잘 입었구먼. 이게 우리 채린이가 사 준 옷이여?"


둘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의 옷차림을 붙들고 서로 마음을 포갰다.

이번에는 의사에게 발을 내놓듯 양말을 벗어 내게 보이셨다.


"내가 테레비에서 봤는디 당뇨 있는 사람 발가락이 이렇게 까맣드만. 딱 내 발톱마냥 똑같이 생겼어."


엿가락에 붙은 통깨처럼 목소리에 걱정이 진득하게 묻어있다.

발가락을 맨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육안으로만 살폈다. 밤새 뒤척이며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였다. 다른 발가락에 비해 유독 붉은색이 돌고 발톱과 주변 피부가 까맣지만 얼핏 보아도 괴사가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어제 바로 어머니를 뵈러 다녀왔으면 걱정을 덜어냈으려나.


"어디 부딪히거나 상처가 생겨 그러지는 않고요?"

"발이 아퍼서 보니 처음부터 이렇게 생겼드라. 근디 처음에만 아펐지 지금은 아프지도 않어."


통증이 없다니 감각이 없는 건가. 어머니는 손으로 새끼발가락을 누르시더니

"감각은 있어. "

그제야 나는 조금 안도하며 어머니께 곱지 않은 투로

"아니, 왜 바로 말을 안 하셨어? "

" 너 걱정할까비 그랬지. 어차피 토요일 인천 결혼식 가는디 그때 말할라고."

"어디가 불편하면 바로 얘기하시라고, 특히 발은 항상 조심하고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바로 말하라고 했잖아요."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 먹는 약도 많은디 거가다 약 더 먹어야 할까 비. 아픈 디가 한 두 군데여야지. 어이구, 웬수같은 약 먹는 거. 그거 세상 귀찮어."

"엄마, 이게 약만 드셔서 치료되는 거라면 걱정도 안 하겠네."


지병이 많은 어머니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고 일을 키웠다고 오히려 통박이었다. 대학병원 외래 갈 때마다 진료실 앞에서 어머니의 검사 결과치를 기다리던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피부과 의사는 돋보기처럼 생긴 도구를 발에 들이대며 진찰하더니 육안으로 봐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부상태가 어떨지 모르니 규모가 있는 정형외과로 가보기를 권했다.




근처에 여러 진료과를 운영하는 제법 큰 병원으로 이동했다. 5년 전 어머니 교통사고 때 치료받은 병원이다. 그 사이 오빠는 사무실에 잠깐 일 보러 다녀오겠다고 병원 앞에 내려주고 갔다.

담당의사 진료실 앞에 앉혀드리고 원무과 접수를 진행했다. 접수를 마치고 어머니 옆에 앉았다. 표정을 보니 많이 긴장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딸들은 애정 있게 잘 허긴 허는디, 그만큼 잔소리가 많어."


평소에 어머니 말씀이 이랬다. 어머니 생활습관과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날도 나는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겨울철 건강을 위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귀가 어두워지신 어머니께서


"응? 뭐라고?"

"응? 뭐라고 말허는지 통 하나도 못 알아먹겠네."


거듭 물으신다. 유독 둘째 딸 목소리만큼은 잘 알아듣는다고 당신조차도 신통해하시던 어머니가 오늘은 영 신통치가 않다. 사람 붐비는 대기실에 앉아서 큰 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대신 핸드폰을 꺼내 어머니께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 그 사이에도 어머니가 얼마나 알아들으셨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한 물건 사용에 대한 내 잔소리는 간간이 이어졌다.


어머니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이 아니라 처치실로 들어오란다. 처치실이라면..... 다시 긴장이 되었다. 간호사 안내에 따라 처치실 침상에 어머니를 올려드리고 양말을 벗겼다. 알록달록 어두운 색배열 양말에 하얀 각질이 묻어 나왔다. 샤워 후 바디로션을 바르지 않으니 피부가 푸석하다. 뭘 사다 드려도 도무지 귀찮다고만 하신다. 잔소리가 또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까만 거 피떡이 뭉쳐서 그런 거 같은데?"

간호사끼리 서로 주고받는 말이다. 피떡이라면 까만 멍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괴사가 아닐 가능성이 짙다.

'제발, 괴사가 아니기를.'

침상 뒤로 창문 버티컬에 창 밖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운 게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 동쪽을 향해 나있었다. 어느 댁 바람벽에 걸어두어도 좋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의사가 들어와 딱 한 마디 했다.


"상태를 보니 2주 이상 지난 것 같은데요? 일단 엑스레이 찍어보고 다시 얘기합시다."

"20일쯤 되었어요."


어머니를 부축해서 촬영실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방사선 쏘이면 안 좋다고 나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다시 진료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오빠가 돌아왔다.

다시 어머니 이름이 불렸다. 오빠는 대기실에 앉아있고 어머니를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모니터에는 엑스레이로 찍은 어머니 발가락 사진이 두 장 떠 있었다. 의사는 그중 오른쪽 사진 위로 커서를 동그랗게 움직였다.


"골절이네요. 여기 보세요. 왼쪽이랑 다르지요? "

"골절이요?"


괴사가 아니라 발가락 골절이란다.

"벌써 살짝 휘어져서 진액이 나온 걸 보니 2주 이상 되었어요."

"근디 처음만 아팠지 별로 안 아프던디."

통증을 심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의사가 친절히 설명했다.

"특별히 크게 부딪힌 적이 없거나 넘어지지 않았는데 골절이 된 거면 골다공증이 있을 수 있으니 골다공증 검사하고 약을 드시는 게 좋겠어요."


처방이었다. 의사는 코반테이프(접착 물질이 없는 주름진 압박 테이프)를 발가락에 직접 감아주면서 집에서 처치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미 시간이 경과되어 깁스할 시기가 지났으니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코반 테이프를 선물이라며 다정하게 어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거 참, 신통한 양반이네. 어떻게 내가 발 다친 지 2주 넘었다고 딱 알아맞힌댜."

어머니는 진료실을 나오시며 나무그림자 풍경 위로 들리던 새소리처럼 맑게 웃으셨다.


"엄마, 발 아픈데 주차장까지 업어 드려요?"

"야가 뭔 소리를 헌디야? 넘어져서 고관절 깨지믄 어쩔라고."





기독교 십계명 중 대인(對人) 계명의 으뜸은 제4계 명인 '부모님을 공경하라'이다. 또 본문에도 효도에 대해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 말씀이 신명기에 나온다. 효도는 전능자의 명령이자 축복의 약속으로 제시했다고 이해했다.


불교에서는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에 수미산의 비유가 나온다.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을 백 번, 천 번 돌고 돌아 살이 닳고 뼈가 드러나도록 돌아도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효심이 깊어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비유이다.


지하주차장 근처 화단에서 말라비틀어진 국화를 보았다. 지난가을 오며 가며 내 시선을 붙잡던 꽃이다. 찬란했던 시절의 노란빛은 애초에 없었던 듯 흑갈색으로 변했다. 줄기 끝 꽃 형태는 곤두박질치듯 땅을 향해 한껏 구부러져 있다. 손만 대면 바스러질 것 같이 삭았다. 국화는 향기와 노란빛으로 내 시선을 붙잡던 그때보다 더 오래 내 마음을 붙잡았다.

곤두박질치듯 구부러진 부모님의 뒤를 따라 나도 세월을 밟는다. 최근 퇴행성 질환 증세를 진단받았다. 어쩐지 안 보이던 주름이 입가에 생긴 걸 발견한 때처럼 마음에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 부모님 마음에도 몸에도 찬바람이 숭숭 뚫고 들어갔겠구나 싶으니 울컥했다.

부모님이 지금 내 나이를 지날 때의 내 모습을 반추해 보았다. 저 살기 바쁘다고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다. 그때의 나는 부모란 화수분처럼 마냥 주는 존재, 자식은 당당히 받아야 하는 존재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무슨 염치로 내 아이들이 엄마인 내게 소홀하다고 섭섭해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의 등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든든하고 대견함보다 어쩌면 서쪽으로 기우는 석양처럼 쓸쓸하게 마음 붉히는 일이 아닐까. 헛된 기대를 하고는 이내 도리질하는 일, 어설픈 말에 자식에게 통박 받는 일은 생채기만 생길 뿐 듣고 흘려 넘길 굳은살 따위는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내가 쏘아댄 거친 말들이 어머니 마음에 태산처럼 쌓여서 잔소리섬 하나를 이루었을 것이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와 구순이 코 앞인 아버지를 지척에서 봉양하는 일은 쉬우면서도 버겁다. 연말 해프닝은 다행히 가짜 방지턱처럼 지나갔다. 골절 회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가짜 방지턱도 없이 나타날 수 있다. 연세가 고령이시니 늘 조마조마한 마음은 기본이고 부모님께서 뜬금없이 하시는 전화에도 마음이 덜컥한다. 해가 더할수록 허리도 더 굽으시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 드시는 약이 많은 만큼 세심하게 주의해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당신 몸을 당신 스스로 관리할 능력 범위는 이미 한계를 벗어났다.


주변에 조문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 생존해 계신 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그런데 또 일상에 젖어 살다 보면 어느새 번거로운 마음이 고이고 한 번씩 심통이 난다. 부모님 봉양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좋지 못한 성정이 어디 이뿐이겠나. 효녀가 되는 일은 고사하고 코스프레만 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둘째 딸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 올 한 해 부모님 일로 어떤 방지턱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부모님은 고단한 계절을 달려 인생의 겨울 안에 계신다. 그러니 더 자주 들여다보는 수밖엔 없다. 동시에 자꾸 내 마음을 단속하고 단단히 다져놓으려 한다. 월동하는 보리밭의 보리밟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