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난 마늘을 오래 바라보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by 라이테

주말 오전, 오랜만에 집에 온 라이언과 함께 마트에 들렀다. 점심 메뉴는 오겹살 통구이. 고기와 버섯류, 사이드 메뉴로 도토리묵사발 재료와 딸기를 구매해 돌아왔다.

곁들여 구울 통마늘을 고구마, 감자 틈새에서 찾아냈다. 지난여름 마늘 수확철에 아버지께 받아 온 것이다. 종자씨 몫으로 선별해 둔 것 중에서도 눈에 띄게 좋은 것으로 따로 골라주셨다. 무더위에 힘든 훈련 앞둔 라이언에게 토종닭백숙이라도 해먹이라고 챙겨주신 통마늘이었다. 썩지 않고 다섯 통 정도가 남아 있었다. 껍질은 이미 바짝 말랐고 겉에서 만져보니 살짝 말랑하긴 해도 구이용으로는 쓸만했다. 라이언을 불러 마늘을 까달라고 부탁하고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엄마, 마늘에 싹이 돋았어."

껍질 벗긴 마늘 중 몇 쪽은 1.5cm 정도의 싹이 돋아있었다.

싹 난 마늘을 따로 빼두었다. 마늘 싹을 오래 바라보았다.




종자(식물의 씨앗)의 발아는 씨앗이 물. 공기. 적정온도(및 일부는 빛) 조건을 만나 내부 대사가 시작되고, 저장된 영양분이 분해, 활용되면 뿌리와 새싹이 나오는 과정이다. 종자 발아의 첫 단계는 수분 흡수이다. 종자가 그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려고 제 몸에서 수분을 내놓지 않는다면 발아는 일어날 수 없다.


혼자 품는 향기는 멀리 갈 수 없다.

품은 향기가 아까워 봉오리를 열지 않는 꽃은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웹 신문을 읽다 마음을 사로잡는 기사가 있어 한 기관을 소개한다.


14년 전 은평구 구산동 골목에 살림의원을 세우면서 출발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살림의료사협)은 재택의료센터, 데이케어센터(노인 돌봄 기관), 한의원, 치과 등을 소유한 지역의 통합 돌봄 거점으로 거듭났다. 통합 돌봄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14년 전부터 통합 돌봄을 실천해 왔기 때문에 통합 돌봄의 원조 격으로 평가된다. 창립 당시 348명이었던 조합원은 현재 5100명에 달한다. 누적 출자금은 약 30억 원으로 전국 1위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병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서 삶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며 “진료만으로는 충분한 돌봄을 달성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의료 지원만으로는 거동 불편, 고립, 치매, 임종 등 삶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제기됐다. 이에 사업은 재택의료, 요양, 운동모임, 노인 일자리, 서로 돌봄, 웰다잉 등으로 확장됐다.


추혜인 원장은 2019년부터 서울 은평구의 80대 할머니 백 모 씨 집을 방문해 진료했다.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에 산다. 추 원장은 방문진료에서 할머니가 평소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점을 단번에 파악했다. 할머니와 처음 만났을 때도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당시와는 견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를 6년간 보살핀 추 원장은 어느 의사보다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추 원장은 할머니의 삶의 끝이 가까워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할머니의 임종 준비를 위해 편지 한 장을 썼다. 할머니 사망 시 집으로 올 119 대원과 경찰에 남긴 편지였다. 추 원장이 직접 사망진단서를 쓰겠다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추 원장은 편지에 ‘가족의 학대나 방임 흔적은 없었으며 충분한 의료적 조치를 해 왔다’고 적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의 죽음은 ‘변사’로 분류되고 경찰 수사와 검안의 검토 등을 거쳐야 한다. 추 원장은 할머니가 가시는 마지막 길이라도 편안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추 원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며 쪽잠도 쉽게 들지 못했다.

추 원장이 다녀간 바로 다음 날 새벽 3시 30분쯤. 추 원장은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은 뒤 15분 만에 사망진단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유족들은 곧바로 할머니를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세상을 뜬 뒤에도 그의 돌봄을 받은 셈이다.
백 씨 할머니의 사례는 은평구 살림의료사협이 구축해 온 통합 돌봄의 단면이다.


살림의료사협 산하에는 살림의원 외에도 은평구 유일의 공식 재택의료센터인 살림 재택의료센터가 있다. 재택의료센터는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가정에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뤄 월 1회 진료, 월 2회 간호를 제공한다. 병원이 아닌 살던 집에서 지속적인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 거주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통합 돌봄의 핵심 인프라다.


오전 11시, 재택의료센터 임센터장은 중증 뇌병변장애가 있는 88세 여성 이 모 씨 집 방문을 첫 일정으로 하루 진료 스케줄을 시작했다. 정상적인 거동이 불가능해 바닥을 기어 이동하는 이 씨 집은 10여 개 계단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임 센터장은 “이 정도 계단은 건강한 노인에게도 버겁다”며 “이 씨는 사실상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력 저하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 씨에게 임센터장은 큰 목소리와 작은 목소리로 번갈아 말을 건네며 반응을 체크했다. 혈압, 혈당 검사에 이어 약 복용을 지도했다.
욕창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임 센터장은 간호사와 함께 이 씨의 엉덩이에 생긴 욕창을 치료하며 바닥에 욕창 방지용 이불이나 패드를 깔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요양보호사는 이 씨가 오줌 등 배설물에 젖는다는 이유로 거부한다고 전했다. 임 센터장은 “의식이 있는 당사자가 거부하는데 강요할 순 없다”면서 “해법을 찾아보자”라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방문진료를 통해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진료 편의만을 위해 환자 삶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집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엑스레이, 내시경 등 병원 장비를 그대로 들고 가는 것보다 집에서 가능한 범위의 진료와 돌봄을 제공하며 병원 진료와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임 센터장은 의료가 돌봄 공백을 메우는 데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피부과, 성형외과 대신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통합 돌봄과 재택의료는 몇몇 선도기관의 헌신에 의존하는 구조”라며 “이 헌신이 소진되기 전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 있게 받쳐주는 구조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살림의료사협이 힘 쏟는 노인 일자리 사업 ‘건강이웃’도 통합 돌봄 개념을 토대로 한다. 이 사업은 노쇠 단계에 진입하지 않은 100여 명의 노인이 짝을 이뤄 고립 위험이 있는 초고령층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들은 고립 위험 노인들과 함께 의료진이 설계한 근력·관절 가동 운동을 하고 대화, 색칠놀이 등 정서·인지 활동을 수행한다. 지역 일자리와 돌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나 홀로 노인 안전망’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살림의료사협은 집에서 삶의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환자들의 임종을 지원하는 등 삶의 마지막 단계도 돌본다. 살림의료사협은 공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도 지정돼 있다.




지난가을, 해외아동결연 기관에서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초대장을 받았다. 결연 20년 이상 된 후원자에게 자격이 있는 특별한 초대다. 파주 지역 외국인노동자 자녀 돌봄 센터 소속 아이들과 <테마파크에서 함께 놀기> 이벤트 행사였다. 초대된 후원자들은 이벤트에서 진행요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본인 참석이 어려운 경우 가족이나 친구 대리참석도 가능했다. 필요 인원이 모집되지 않을 경우 행사는 취소된다고 했다. 꼭 행사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봉사활동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고속열차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편도 4시간이 넘는 거리에 왕복 교통비용이 상당했다. 차선책으로 테마파크가 속한 행정구역에 사는 친구에게 대리참석을 부탁했다. 무리한 요구였다. 그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잠깐 인사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진행요원 역할까지는 어렵다고 했다. 결국 나는 교통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을 다른 긴급구호에 지출하는 것으로, 친구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대신 돌봄 센터에서 일정시간 봉사활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봉사활동이나 기부도 습관이라 생각한다. 좋은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나 경험이 마중물처럼 반드시 필요하다. 마중물을 만들어 내려면 내가 쓸 수 있는 몫을 내놓아야 한다. 내게 필요하다고 마중물까지 차지하면 다음 사람에게 남는 건 말라버린 우물뿐이다. 같은 공간,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에서 내놓는 판단은 제각각 다르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장 1절.


친애하는 글벗 앙티브작가님은 댓글에 가끔 이런 말씀을 올려놓는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것은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의 말은 위 성경구절과 일맥상통한다. 전능자의 손길이든 기(氣)의 운행이든 결국 선을 내면 선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내가 체험한 바도 그렇다.

나는 이타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남녀 불문하고 형편과 상황에 따라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나누고 베푸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 이런 사람은 꽃이 봉오리를 열어 향기를 퍼뜨리는 것과 같다. 그것이 물리적이거나 추상적 형태라도 관계없다. 그런 분과 오래 교류하고 싶다. 더불어 나도 그런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나눔과 베풂은 그것을 돌려받지 못할 대상에게 하는 것이다. 내게 돌려줄 수 있는 분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베풂이 아니라 품앗이다."



덧)

통합 돌봄에 대한 기초를 마련한 좋은 기관이 있어서 소개글을 올렸습니다.

덧붙인 에피소드는 결코 선행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옅은 색(재색)으로 기록된 부분은 국민일보 기사를 참고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