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가는 길에 선 엄민정작가
지금은 거둬들인 매거진 '우기면 다 시'에 어쭙잖은 시를 써서 올린 적이 있다. 시를 한 편 발행하면서 대문사진으로 지역의 민간정원 내 메타세쿼이아 사진을 불러왔다(민간정원은 연재북에 소개된 곳).
사진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댓글에 "여기 제 친정이랑 가까운 곳이에요."
더 이상 이어 쓸 수 없는 내 매거진 글(남편 간병기)에 응원금을 보냈던 분이다.
앗, 내가 사는 지역을 들켰다. 본명도 출신지역도, 얼굴도 감추고 익명 그늘에서 부담 없이 브런치 글방을 드나들 때였다. 마치 나만의 아지트가 발각된 것 같았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우리의 소통이 시작되었다.
긴 머리를 묶어 내리고 파란 짧은 소매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의 브런치 프사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세련되고 깔끔했다. 그녀의 글은 사진만큼이나 정갈하고 야무졌다. 국내에 거주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내가 브런치 살이를 시작한 지 석 달쯤 지나던 때 일이었다.
특전사 부대를 인근에 끼고 있는 산에 올랐다가 스마트 워치를 잃어버렸는데 기적적으로 찾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분명 내 집 북쪽 창으로 멀리 뵈는 들판 건너 그 산이었다. 이게 한국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그녀가 지금 지척에 머물고 있는데 식사하자는 제안을 하기엔 아직 서먹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고 상하이로 날아갔다.
다시 계절이 바뀌고 겨울방학 기간에 입국했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우린 그 새 어지간히 끈끈해졌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첫 만남이었다.
세 번째 만남은 지난 늦가을 그녀가 있는 상하이에서였다. 막 출간된 브런치 작가님 몇 분의 책을 들고 건너갔다. 그녀 왕국의 국빈 대접을 내게 했다. 그렇게 사랑을 퍼부으면서도 6시간 남짓밖에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녀와 브런치 송지영작가님 북토크에 함께 했다. 네 번째 만남이었다.
본명 뒤에 붙은 작가명은 새벽소리다. 작가님은 소리에 유독 민감하다. 온갖 높은 데시벨 소리에서도 그녀만의 소리를 뽑아 올리는 재주가 있다. 꽃잎이 지는 소리, 노른자가 부패하는 소리, 네 발 가진 떠돌이 개가 다친 한 발을 접고 세 발로 껑충껑충 뛰는 소리, 서리 입은 홍시가 푸드덕하고 떨어지기를 준비하는 소리.
특히 작가님이 놓칠 수 없는 소리는 우물에서 새벽에 스며 나오는 참신한 맏물 같은 글쓰기의 갈망이다. 이 갈망은 여러 형태로 발산되었다. 작가님의 '100 일 쓰기'를 그중 최고로 뽑고 싶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했는데 심지어 명절 당일에도 글이 올라왔다. 아, 이 분은 분명 해내겠구나. 그 때 알았다.
밥상을 차리는 손길은 밥상에 오른 음식이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지 안다. 막바로 손질해야 하는지 몇 시간이고 우려내어 쓴 맛을 빼내야 하는지를 안다. 어느 때에 불을 키우고 줄이고 꺼야 하는지를 잘 안다. 작가님은 언어를 이리저리 뽑고 뜯고 씻고 우리고 묵혔다가 때로는 막 무쳐낸 겉절이처럼 싱그러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어이 100개의 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완성했다. 나는 댓글로 동참하면서 그 영양가 높은 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야금야금 먹었다. 먹기만 한 이는 밥상 차리는 이와는 조리 실력을 견줄수 없는게 당연하다.
줄곧 침잠해버리는 나를 끌어올린 건 누군가의 뻔한 위로도 눈물도 아닌 아주 서툰 위로였습니다. 그것은 울상을 한 얼굴과 울먹이는 목소리의 가장 반대편에 있었어요. (P.34-위로의 말은 누가 해 주나요)
첫 만남에서 엄민정작가님의 작가 선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마음에 뭉친 갈증을 톡 건드려 준 이는 다름아닌 작가님의 예쁜 딸.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친구들과의 사소한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늘 뭔가를 쓰고 있는 엄마 모습을
"우리 엄마 저자야."
친구들 엄마의 직업에 당당히 맞서 이렇게 말했더랬다. 딸의 선언이 엄마의 선언으로 이어졌다.
실체도 없이 공중에 흩어질 말이 씨앗이 되어 지금 내 손안에 있는 231페이지의 '작가 선언' 책으로 꽃을 피웠다.
꽃은 피우는 일로 그 몫을 다하지 않는다. 그윽한 향기를 바람에 싣고 꽃가루를 옮겨 줄 매개체를 부르는 일은 다음에 이어질 역사를 쓰는 사투와 같다. 아껴두지 않고 남김 없이 발산하는 것이 곧 꽃의 사생결단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디로 날아오를지 모르는 끝간데 없는 곳을 향해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 꽃의 사명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사명을 발견했다. 사명이란 죽음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더라도 맡아야 하는 것이 사명이다.
엄민정 작가님의 책 뒷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살아있는 한 쓰고, 쓰는 만큼 살아있으리라."
실제로 작가님은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암투병을 견뎌왔다. 사투를 벌이면서 글쓰기에 기대었다. 그녀를 살린 것은 어쩌면 그녀가 처방받은 약물이나 방사선 치료보다 글쓰기의 힘이 더 크지 않았을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책은 다음 책을 끌어왔고 무한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어느새 책을 만져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매거진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중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럼에도 그 일이 여전히 무섭다고 한다. 암투병이 아니라 글쓰기.
고백하자면, 여전히 무섭습니다. 무엇을 내놓든 그것이 나의 초라한 밑바닥일까 봐 뒷걸음질 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핍니다. (중략)
그때부터 나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쓰는'것이 그저 백지를 향해 내지르는 일이라면, '짓는' 것은 글 안에 나를 정성껏 세우는 일입니다. (p.57-도둑맞은 언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손에서 내려놓기를 수 차례. 여기엔 서툴더라도 서평을 써야 한다는 다짐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단단한 문장들에 기가 꺾여서였다. 익히 읽어 온 글들이었음에도 차돌처럼 단단한 문장들이 손만 대도 툭 부서질 듯한 내 필력을 쪼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빈틈이 없었다. 겨우 찾아낸 흠은 조사 '은'을 '을'로 써야 더 부드러울 것 같은 문장. 나는 문장에 찔렸다.
내가 모은 토막글과 제목만 적힌 메모장도 다 습작이었습니다. 완성을 피한 게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잘하려는 마음은 종종 해가 됩니다. 최선의 모습을 보이려 할수록 평소보다 더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나는 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배우고 있어요. 완벽하지 않기에 용기 내어 적을 수 있고 오히려 쉽게 적을 수도 있으니까요.(P.148-연습 말고 다른 길)
이렇듯 단단하고 매끄러운 몽돌문장인데 작가님의 몽돌은 단번에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숱한 파도에 맞고 또 맞아서 숱한 시간동안 둥글게 모서리가 깎여나간 결과였다. 그녀의 글 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단단하다. 생사를 가르는 질병 파도, 생소한 이방나라 문화와 언어 장벽 앞에서의 파도, 제도권 글공부와 혼자 끄적이는 고독사이 몸부림의 파도를 끝내 이겨낸 작가님은 잘생긴 '작가 선언'몽돌을 빚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각오는 더 단단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단다. 천천히 지금처럼 꾸준히 다음 책을 향해서 요란하지 않게 걷겠다고 한다.
엄민정 이라는 원석을 알아보지 못한 출판사들이 몹시 안타깝다. 나는 작가님의 보석같은 책이 김영사나 문학동네, 민음사나 창비 등 이런 대형 출판사에서 태어나도 전혀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두 번째 책은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길 바란다. 출간과정은 말씨앗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출간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독자들 품에 안겨야 하는 숙명이 책에 있기에 팔아야 한다는 어색하고 어려운 과정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반듯하고 정갈한 분이 이런 지난한 과정을 징검다리 건너듯 즐기며 건너겠다니 안심이 된다.
그녀의 100일에 댓글로 함께 한 것이 동행이라면 나는 꾸준히 그녀와 동행하려 한다. 아주 미미한 존재로.
글을 쓴다는 것은 숨겨진 본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글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한 내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를 이해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있어요. 분인으로 살아가며 흐릿해진 나를 다시 하나로 모으는 작업, 그것이 내게는 글쓰기입니다. 가장 나다운 글이란 어쩌면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증명하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172-넌 얼굴이 몇 개야)
출간 강연회 안내
행사명 - [작가 선언] 출간 강연회
일시 - 2026년 2월 21일(토) 오전 10시-12시
저자 - 엄민정
출판사 - 미다스북스
장소 - 책과 강연(서울 중구 퇴계로26길 15, 충무로)
형식 - 저자 강연, 질의응답, 사인
https://m.blog.naver.com/writingin180days/224172729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