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가 뱀을 이긴 이야기
꼰지발 선 꽃샘추위가 물러나면서 헤싱헤싱하던 햇살이 빽빽해졌다. 봄볕에 목마른 목련이 잘 다듬은 붓끝처럼 꽃봉오리를 옹동그리고 속살을 아꼈다. 그러더니 소녀의 초경처럼 두근두근 설레게 꽃잎을 터뜨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선 목련은 푸른 비단 위를 유영하는 백조처럼 우아했다. 겨우내 꽃봉오리를 지키느라 뵈지 않는 물밑에서 안간힘을 썼을 송이송이 백조. 비로소 자리를 찾은 봄이 몸치장을 시작했다.
보건소 갈 일이 생겨 점심시간을 덜어내 걷기로 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신분증과 카드 한 장을 챙겼다. 스카프로 둘러싼 목덜미와 이마가 눅눅해졌다. 도시의 가장 번화한 중심지, 대형마트를 지나 길을 건너면 그런 골목이 있었나 싶은 내리막길이 나온다. 좁은 보폭으로 내리닫으면 왼편에 청년식당이, 오른편에 낯선 이를 보고도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가 물류창고를 지키고 있다.
여기까지 와 본 이라면 놀랄만한 뜬금없는 곳이 나타난다. 뒷길은 어쩐지 흥미로운 일이 도사리고 있을 듯한데 도심 번화가 자락에 논이 있다. 잡풀이 무성한 방치된 논이 아니라 지난가을까지 경작을 했던 땅이다.
마른 벼 밑동이 겨우내 눈비와 볕에 젖었다 말랐다 했으니 땅을 갈아엎으면 제법 좋은 거름이 되겠다. 논두렁에 자운영을 몇 포기 떠다 심으면 좋겠다. 한 시절엔 봄 논을 수놓았었는데 이제는 꼭꼭 숨어 좀처럼 찾기 어렵다.
이즈음 둥치둥치 붉은 흙과 버무려지던 자운영 추억 한 뭉치가 굴러 나왔다.
흙담 아래 머위꽃을 따서 소꿉놀이를 준비했다. 꽃송이가 크고 두툼해서 사금파리 칼로 써는 손맛이 있었기에 소꿉놀이에 꼽사리 끼는 식물이었다. 어른들에게 식물의 쓸모는 식재료인지 아닌지에 있었다면, 어린 우리에겐 소꿉놀이재료의 쓸모였다. 더구나 열무꽃이나 아까시나무꽃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언니가 나부죽한 돌멩이를 골라 아궁이를 만드는 동안 나는 사금파리 큰 조각에 쌀을 한 줌 올려 물을 부었다. 동생은 화장실에 걸려있는 얇은 달력을 몇 장 뜯어왔다. 불 지필 준비가 다 되면 비사표 사각 성냥 한 면에 성냥개비를 힘껏 내리쳐 불을 일으켰다. 얼른 종이 한 장에 불을 붙여 사금파리 솥 아래 놓았다. 우리의 목적은 쌀을 익히는 것. 정성을 들이고 있던 그때 집 앞 골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긴장되고 높은 소리가 다급한 발자국들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떠다녔다. 뒤이어 오빠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 손엔 콜라와 오렌지맛 환타가 한 병씩 들려있었다.
"이거 어디서 난 줄 알아?"
"영문이 오빠 만났어? 오빠가 사줬어?"
영문오빠는 삼촌 같은 사촌이었다. 상점이 있는 큰길에서 만나면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가 사줬다고 하기엔 뭔가 부실했다. 과자도 없이 음료수만 보낼 리 없었다. 가진 것을 당당히 말하는 것은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아닌, 횡재에 가까운 거라 대놓고 자랑이었다. 우린 음료수 출처 보다 그걸 똑같이 나눠주느냐가 더 중요했다.
방금 전까지 불 지피느라 곡진하던 소꿉놀이에 등을 돌렸다. 오빠는 음료수병을 든 채 호기롭게 말했다.
"이거 과수원 아랫길 논에서 주워왔어."
과수원 쪽이라면 시내로 나가는 방향이었다. 시내는 남쪽을 향했지만 남쪽 정류장은 논길을 가로지르는 데다 상점도 정류장 표지도 없는 오솔한 곳이었다.
음료수를 논에서 주워오다니 어림없다. 모내기철이 아니니 못밥 낸 논에서 받아 온 것도 아니었다.
"너희들도 얼른 가봐. 몇 병 안 남았을 거야."
오빠가 급히 쏟아내는 말이었다. 시내로 나가는 길은 과수원을 지나 얼마 안 가서 급하게 왼편으로 휘어진다. 동네 앞 들판에 만경강 지류인 탑천이 흐르는데 음료수를 가득 실은 트럭이 급하게 휘어지는 길에서 탑천을 건너지 못하고 논으로 굴렀다. 트럭이 전복되고 적재함에 실려있던 상자에서 음료수병이 쏟아져 나왔다. 논바닥에서 깨지고 엉킨 것들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꾸러기들 눈에 띄었다. 만류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기어이 음료수병을 쥐고 달아났던 것이다.
오빠의 무용담을 듣자마자
"막내는 오빠랑 있어. 언니들 후딱 갔다 올게."
동생만 남겨놓고 사건의 논을 향해 달렸다. 우리 집은 하필 논 반대쪽에 있었다. 뭔가 불리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지름길 농수로 쪽을 택했다. 뱀이 논두렁에 기어 다닐지도 모르는데 환타가 뱀을 이겼다. 바람소리 나게 언니 뒤를 따랐다.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아이들 몇이 두세두세 모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향하는 곳을 등지고 걸어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언니의 발이 차차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아이들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벌써 다 주워가고 없어."
그래도 언니는 내 손을 붙잡았다. 한창 보글보글 익어가던 소꿉놀이와 오빠 손 오렌지 맛도 포기하고, 뱀이 드나드는 좁은 농로를 달렸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끝내 확인한 자리에는 깨진 음료수 병 주위로 흘러내린 달달한 냄새와 철없는 우리와 달리, 버슬버슬한 논흙 사이 철든 자운영 꽃이 오보록했다.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늘고, 단작 중심의 집약농업이 확산되면서 녹비식물의 재배 면적이 줄어들었다. 녹비식물은 흙에 생명을 스미게 하듯 유기물을 더하고 질소를 고정하여 토양을 비옥하고 부드럽게 가꾸고 잡초와 병해충을 누그러뜨린다. 이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땅과 사람이 함께 숨 쉬게 하는 고요한 숨결과도 같은 존재이다. 봄이면 들판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농촌의 숨결을 전하던 자운영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풍경은 몇 병 음료수를 손에 쥐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아련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는 특유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정원이나 화분에서 많이 키운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운영을 찾으러 논밭을 헤맬 일이 아니라 잘 가꿔진 정원을 찾아다녀야 하나. 있어야 할 곳에서 자리지킴을 할 때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자운영도 그렇다. 언젠가 다시 들판마다 녹비식물이 잔잔히 자라나, 자연의 온기와 따뜻한 풍경이 천천히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지나는 길 담장 밑으로 봄까치꽃과 광대나물이 웅긋중긋하다. 꽃이 귀한 계절에 앞서 나와 제 할 일 하는 걸 보니 대견하다. 담장 안 주인 손이 게을렀으면, 꽃이 다 질 때까지라도 뽑히지 않길 바라며 가던 길을 서둘렀다.
그 트럭 운전기사는 어찌 되었으며 모내기 철이 다가오는데 깨진 유리조각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관심 밖의 일이었으니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내기하다 유리조각에 발이 찔려 다친 분은 없었는지 굴러 떨어져 파손된 트럭과 음료수로 손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런 일은 전혀 안중에 없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지천이던 자운영이 뜬금없이 보고 싶어 몇 해째 애태워도 자취를 감춰버렸다. 못내 아쉬워 빈 입을 쩍쩍 다시며 이른 아침 작가님께 자운영 좀 찾아달라 말을 넣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