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낮 최고 기온섭씨 26도 예보가 나왔다. 날씨 탓에 행사 시간을 앞당겨 8시 30분에 집결하기로 했다.
52 패밀리에서 모집한 자원봉사자들이 보육원에 가서 운동회를 함께 하는날.
맨 땅 운동장에서 행사를 진행하니 햇빛을 가릴 수 있게 준비하라고 했다. 운동화와 모자를 챙겨 동행할 친구와 함께 행사장으로 갔다.
운동장 한쪽에서 스텝들이 벌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접이식 천막을 펼치고 그 아래에 가족 마트에 사용할 물건을 진열하고 있었다.
더가족마트 물품진열대
톤을 높여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먼저 온 스텝들과 보육원 선생님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 때 없어서 못 샀던 포켓몬 빵을 친구가, 나는 헤어슈슈(일명 곱창 머리끈)를 직접 만들어 가져갔다.
9시 30분부터 행사시작. 스텝들은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포지션을 파악하고 행사준비를 했다.
9시쯤 되니 벌써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스텝들은 52 패밀리에서 준비한 앞치마를 착용하고 스텝과 학생 모두 이름표를 부착했다.
저학년들 인기 코너는 페이스페인팅.
돌고래, 라이언, 들꽃, 고양이, 하트, 토끼.. 원하는 대로 얼굴과 손에 페인팅을 해주니 수줍은 듯 햇살 같은 미소를 날려주었다.
한 여학생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해바라기 싹 났어요."
"그래? 직접 심은 거야?"
"제가 심었어요. 함께 볼래요?"
행사준비 공간으로 쓰려고 설치한 긴 테이블 뒤쪽 화단에 콩싹 같은 게 4개 올라와 있었다.
아무런 표시도 없고 소나무 아래 있어서 거기에 그런 싹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싹이다.
그게 해바라기 싹이란다.
"우와, 귀엽네~~~. 은지가 직접 심은 거야?"
"제가 심고 물도 줬어요. 그랬더니 싹이 났어요"
"정말? 잘했네. 대단한데? 은지처럼 이쁘게 꽃 피우라고 잘 가꾸고 이름도 붙여주면 좋겠네."
여린 싹 4개를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나중에 보니스텝 두 분도 은지와 새싹 앞에 서 있는 걸 보았다.
게임이 막 시작될 무렵 다시 은지가 내게 왔다.
"싹이 없어요."
아니 싹이 없다니, 일부러 뽑아냈을 리도 없고
그 싹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함께 소나무 밑으로 가보았다. 싹이 안보였다.
대신 접힌 야외용 매트가 놓여 있었다.
깜짝 놀라 매트를 들어보니 거기 싹이 보였다.
부러지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게 싹이 여기 있다고 표시를 해보자."
우린 화단의 돌멩이를 주워다가 싹 주변에 동그라미를 만들어 주었다.
여린 싹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은지 같아서 더 꼼꼼히 울타리를 쳐주었다. 돌멩이가 남아서 동그라미를 더 크게 해서 주워온 돌멩이를 다 썼다.
이 돌멩이 울타리를 벗어날 만큼 해바라기 싹이 자라면 울타리가 없어도 여기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겠지.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크게 쭉쭉 자라서 잎그늘도 만들고 꽃도 피면 밟히지 않고 잘 살아남았다고 해바라기 스스로를 칭찬해 주면 좋겠다. 키 크게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웠다고 은지가 칭찬해 주면 좋겠다. 은지가 은지를 칭찬해 주면 좋겠다.
은지가 심은 해바라기 싹과 돌멩이 울타리
기분이 좋아진 은지가 컵에 물 한잔을 가져와 건넨다.
"싹에 물 줄까요? 선생님이 주세요."
"싹아, 물 먹고 은지처럼 이쁘게 잘 자라라."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이름표 부착한 걸 생각 못하고 이름을 불러주니
은근히 좋았나 보다.
아이들 얼굴은 5월 햇살처럼 찬란했고 모두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뿌연 흙먼지 올라오는 운동장을 구르고 뛰고 달렸다.
열정 넘치는 아이들은 변칙을 쓰기도 했지만 그걸로 누구도 기분 상하지 않았고 싸우거나 불평하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장기자랑 시간엔 미리 연습한 춤을 보였다.
뉴진스도 누를 수 있을 춤사위로 초딩 준후는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소질 있는 학생은 그냥 둬서는 안 될 일이라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한다, 미리 사인을 받아 둬야 한다 등 폭풍칭찬이 뒤따랐다.
개성도 제 각각, 생김새도 제 각각 다르지만 어느 누구 예외 없이 귀한 아이들이다.
모든 게임을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하였다.
(더구나 슬리퍼를 신고도 계주를 그렇게 잘하다니 놀라웠다ㅎㅎ)
드디어 나누어 준 달란트로 물건을 구매할
더 가족마트 시간이 되었다.
경기 승리팀 청팀이 먼저 구매 시작.
손에 쥔 달란트는 많은데 물건을 선뜻 고르지 못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이 망설이는 사이 큰 아이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했다.
나중에는 물건은 소진되고 달란트만 남아버렸다.
스텝들이 자원하여 준비한 물품이었는데 가격을 낮게 책정했거나 달란트 발행이 물품보다 많았거나 했겠지.
다 못쓰고 남은 달란트를 진열대에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는 그 아이의 손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얼른 차에 가서 뭐라도 따로 챙겨다가 주고 싶었으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었기에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꽃들이 남쪽을 향해 구부러져 피어있다. 사람도 사랑을 향해 구부러지겠지.
각자 숙소에 물품들을 갖다 두고 1층 식당으로 모여 식사를 했다. 반찬이 푸짐했다. 오늘 어린이날 행사여서 별식이 나온 건지 평소 그런 건지 어쨌든 반찬구성이 좋은 식단이었다.
식사 후에는 식기를 설거지하여 식기건조기에 갖다 넣고 식사 자리를 정리하는 것까지 스스로 했다.
오늘 하루라도 대신해 주고픈 마음이 들었지만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이들은 오후에 청와대 초청으로 서울 일정이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숙박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려올 거라고 했다.
그들만의 특별한 초청. 아이들은 그 초대를 어찌 생각할까 궁금했다.
이런 궁금함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그들만의 고충이 있을 거라는 나만의 프레임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거리낌 없이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저 맑고 귀한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맘껏 나래를 펼칠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순도 100%의 에너지를얻어왔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두껍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