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어깨를 넘어 등의 절반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카락 길이다.
통통하지 않은 갸름한 얼굴형에는 긴 머리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목이 유난히 길고 키도 내 나이대 평균 키보다 8~9cm 크다.
딱 보면 전반적으로 긴 느낌이다.
이목구비 얼굴 윤곽 어느 면을 보더라도 귀여운 스타일의 얼굴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늘 둥글둥글한 인상이 부러웠다. 오죽하면 대학 2학년 때 학교 앞 인쇄소(그땐 지금처럼 프린터가 일반화되어있지 않아 학교 도서관이나 학교 앞 인쇄소에서 복사를 했었다)에 복사하러 갔더니 근처 중학교의 교사냐고 물을 정도였겠나. 21살 나이에.
그만큼 차분하고 지루해보이는 얼굴이란얘기.
이런 얼굴형은 긴 머리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긴 머리카락 끝부분에 굵은 펌을 해서 포니테일을 하거나 길게 풀어놓거나 반묶음을 주로 했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처럼 긴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머리카락 길이가 내 자존심이라도 되는 듯, 얼굴에 화장을 하듯 건강한 모발로 나를 치장했다.
모발이 굵고 머리숱이 적지 않은 것은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 지금도 팔순 노모는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염색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다. 내게 엄마 닮은 구석이라고는 몇 안되는데 그게 큰 키와 모발이다. 감사할 일이다.
생각해 보니 자의가 아닌 타의로 머리스타일을 강요받아 본 적은 없다. 학창 시절도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세대였기 때문에 머리 스타일에 대한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기분 대로 길게 짧게 변화를 주었다.
체중과 체형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크게 없는 편이라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면 지인들이 뒤태를 보고 달콤한 얘기들을 한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바꿔 말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지.
더 버텨서는 안 될 때가 왔나? 긴 머리 고집하다가 뒤돌아서는 내 모습이 대반전이라 크게 실망감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근래에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것 같고 굵기도 가늘어지는 느낌이 자꾸 든다.
미용실에는 1년에 한 번씩 펌하러 가는데 (진짜 나 같은 손님만 있으면 큰 일이지. 신기한 것은 1년 한 번 가도 내 얼굴을 기억한다) 그때 머리카락을 10cm씩 자르곤 한다. 상하고 갈라진 끝머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미용실 원장님께 물어보니 나이 먹어 가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여기란다. 그래도 머리숱이 아직 많고 건강 모발이란다.
매년마다 올 해가 마지막이야, 긴 머리는 올해까지 만이야 생각하곤 했는데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하다가 4~5년이 지나버렸다.
긴 머리카락을 한 번 짧게 자르고 나면 이제 더는 긴 머리를 못할 것 같다. 그래서마지막 긴 머리는 머리카락 기부에 불태우리라 결심을 하고 2년 가까이 미용실을 가지 않았다.
그즈음나보다 더 긴 머리를 고수하던 조카(20대 중반 남자)가 공시준비를 본격적으로 한다고 짧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리고 자른 머리카락을 기부했단다.
그래, 나도 더 미루면 안 되겠어. 이번에 스타일 한 번 바꿔보지 뭐. 고민은여기서 끝.
어머나운동본부/대한민국사회봉헌재단에 회원가입을 한 후 지퍼팩과 줄자와 고무밴드를 챙겨미용실로 갔다.
30cm 길이만큼 줄자로 잰 후 고무밴드로 묶고 밴드 윗부분을 잘라달라 부탁했다.
잘라낸 머리카락
동네 미용실 원장님은 머리카락 기부손님은 처음이라는 반응이었다. 학생들 결 좋은 긴 머리카락을 그동안 잘라서 다 버렸는데 이제부터는 모아야겠다고 한다. 잠깐 머리카락 기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만큼 설명을 해드렸다.
기부용 머리카락을 자르고 거울을 보니 어색하다. 거울 속에 내 친정언니가 앉아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머리카락 길이가 비슷하니 진짜 많이 닮았네? 나이 들수록 더 닮는다더니 빈 말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