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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라이테
May 08. 2024
내친소?? 내아소!!
달콤 치사량 초과 스위트가이 아버지
1938년 초여름에 태어나신 우리 아버지.
올해
10
1
살이신 큰 고모가 태어나고 8년을 수태하지 못했던 할머니께서 두 번째 낳은 자식은 딸.
아들을 바라며 세 살 터울로 낳은 셋째도 딸.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그리하여
할머니께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낳은 넷째가 우리 아버지다.
(현재 아버지는 교회 다니신다)
그 시절, 딸보다 아들 귀한 대접은 살림이 넉넉한 집이나 아닌 집이나 매한가지. 게다가 위로 딸 셋을 내리 낳고 얻은 막둥이가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금지옥엽 귀한 사랑을 받았겠나.
얼마나 귀한지
어릴 때부터
고모님
들이 막둥이인 아버지 이름조차도 함부로 부르지 않고
"
동생, 동생"
하며 부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으니
" 너무 일찍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
다. 우리 아버지 두 살 때.
아버지가 살아계셔도 절제된 사랑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을 텐데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할머니의 외아들 사랑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된다. 남편을 일찍 잃은 할머니의 세상은 아버지가 중심이었고 전부였을 것이다.
할머니는
하루 세끼 밥을 매번 그때마다 지어서 아버지만 드시게 했고 아버지 역시 할머니 사랑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일찍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에 형편이 좋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이 배움의
끝이었지만
필체도 좋으시고
점잖은 아버지
.
그러나 집안을 책임지고 건사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적이 없었기에 성실하셨지만 융통성이 적고 생활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낭비하거나 흥청망청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
와 결혼 후 이런 부분에서 어머니의 원망을 많이 들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듬뿍 받았으나 과묵하신 아버지는 표현이 없으셨다. 심부름이나
가사는 모두
고모님
들
몫이었고 그저 홀어머니의 사랑만 받고 자라셨기에 이런 태도 또한 결혼한 후
엄마의 복장 터지는
삶의
넋두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였
다.
평생 욕이나 점잖지 못한 말들은 입에 담지 않으셨고
남 탓을 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없다.
우리 4남매를 훈계하시려 회초리를 대셨어도 맨 손으로는 단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다.
내게 조금이라도 좋은 면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
외모도 그렇다. 딸들은 나이가 들수록 친정엄마의 얼굴이 나온다는데
나는 갈수록 아버지 얼굴이다. 내가 내 사진을 보고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나 손발이 차가운 것,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이 외에도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참 많다.
내가 자랄 때는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
다. 아버지가 안아주거나 토닥이거나 머리를 쓸어주거나 하셨던 기억이 딱 한 번 있다.
아버지가 안 하셨는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이 그렇다
.
자식을 사랑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셨던 내 아버지. 그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하는 것이 자식 사랑의 전부이고 아비의 역할인 줄 아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요즘은 너무 달달하다.
고백도 잘하신다.
고맙다 애썼다. 네 덕이다. 잘했다. 맛있다, 잘 왔다, 그 정도면 딱 알맞다...
예순이 다 되는
아들 생일에는 용돈을 넣어 겉봉투에
"사랑해 아들. 항상 고마워
." 이러신다.
자라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을 잘도 하신다. 전화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다음날 다시 전화하셔서
"
괜찮냐? 밥 잘 챙겨 먹어야 혀. 몸 안 아픈 게 제일이여"
이러신다.
쑥갓이 먹고 싶다 말하면 쑥갓을 심고, 감자가 캐고 싶다 하면 감자를 심는다.
가끔 용돈도 주신다. 한사코 안 받는다고 하면
"
받어, 기름값 보태
. 내가 뭐 돈 쓸 일
있냐?"
이러신다. 자식 주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어 지금은 주시는 족족 받아 챙긴다. 연로하신 아버지께 용돈 받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세 딸 중 둘째 딸인 나를 젤 이뻐하신다. 꿀 뚝뚝이다. 내 착각이라도 좋다.
(
아, 아버지는 누님 세 분에 외아들 막내지만 아버지께서 낳으신 우리 4남매는 아들, 딸, 딸, 딸이다.)
나는 지방 소도시에 살고 아버지도 같은 행정구역이지만 면소재지에 사신다.
아버지랑 평균 주 2회쯤 만나는데 꽁냥꽁냥 재미있다.
오늘도 아버지에게 다녀왔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 즐겁다.
언제까지나
아버지께 가는 이 길 끝에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이 길 끝에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그런 일은 오지 않기를,
나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꾼다.
아랫목처럼
은근하고 따뜻한 내 아버지.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둘째 딸이랑 꽁냥꽁냥해요.
달달한 스위트가이 백발 내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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