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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May 11. 2024

강남 스타일?? 텃밭 스타일!!

아버지의 봄을 책임지는 것들

                            대문 사진은 둥굴레



아버지의 텃밭에도 봄이 한창이다.

초봄엔 겨우내 찬바람 맞고 버티다가 주인님 입맛을 찾아준 쪽파와 시금치가 효자였다.


지난가을 김장 때 쓰고 거두지 못한 갓도 민들레처럼  죽었네 하며 납작 엎드렸다가  봄볕에 쭉쭉 자라 노란 꽃을 서둘러 낸다.


그것들이 물리기 전에  아버지도 서둘러 파종을 하신다.

둘째 딸이 좋아하는 적상추와 쑥갓  항상 빠지지 않는다. 봄이 본격적인 기세로 올쯤이면

"아버지, 쑥갓 심었어요?

사다 먹는 쑥갓은 향이 별로예요.

 아버지 쑥갓만큼 맛있는 쑥갓이 없어요."

"아버지, 내가 좋아하는 상추 심었어요?

 자주색 상추요. 그게 맛있어요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는

 "그럼~~~.  벌써 씨 뿌려놨다."

"아버지 많이 심으면 다 못 먹으니까 쫌만 심어요. "


쑥갓 상추 어린 대파



때론 아버지에게 이모작도 명령한다.

"아버지, 오이 일찍 심어서 초여름부터 따먹게요.

 아버지 좋아하는 오이냉채 만들어 올게요.

 근데 오이줄기가  이렇게 금방 바스러져요?"

"안 주니까 그런다. 농약 안 하면 오이가 크다 말고 끝이 구부러져 풍신 나다 "

"그니까 다른 데에 한 번 더 심어서 추석 때까지 따먹게요."

그러면 아버지는 오이 모종 사러 나가신다.

"아버지 차로 모셔다 드릴게요."

"뭘~, 너 바쁘니까 자전거로 갔다 오면 된다."

며칠 후  텃밭에 가보면 오이 모종이 자라고 있다.




지척에 오빠와  내가 살고 있지만 텃밭 소산물을 다 소비하지 못할 때가 많다.

퍼주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버지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채소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먹어 소비하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를 때는 수확하고 나누는 게 번거롭기도 하다. 사흘에 한 번 꼴로 가야 텃밭이 정갈하다.

 한 번이라도 거르면 일이 많아져 종내는 속수무책 일 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직 수확을 더 해도 되는 것들이 싹 뽑아져서 말라비틀어져 있기도 하다.


알뿌리 열매 중 내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게 있으니 하지에 거두는 감자다.

아버지는 수미감자, 자주감자 두 종을 캐고 두 평 남짓하게 남겨 놓으신다. 말씀 안 드려도 내 마음을 아신다. 감자 캐는 재미를 보라고 남겨놓으신 거다.

캐놓은 감자는 현관 테라스나 자전거 보관하는 곳에 다소곳이 놓여있다.

처음엔 쪄서도 먹고 조림도 하고 강판에 갈아 전을 부쳐먹고 볶음도 하고 갈치찜에도 넣고 감자샐러드도 하고 된장찌개에도 넣어 먹는다.


간식과 반찬으로 만날 감자만 먹을 수 있나?

잘 먹다가도 여름이 지날 쯤엔 물린다.

그러면 감자가 마르고 점차 썩어간다.

저온창고에 보관하는 감자 같으랴

그러면 아버지는

"종자  사다가 심어도 먹지도 않고 다 썩어서 버리는걸, 다음에는 안 심는다." 하신다.

대답할 말이 없다.

이듬해,  아버지는 둘째 딸 겁박에도 끄떡없다. 둘째 딸 말이라면 다 수긍하시는데 감자는 예외다.

그래서 아버지의 텃밭에 감자는 오~~~~ 동안  뿌리내리지 못한다.




겨우내 뽑아먹고도 남은 대파는 씨받이로 남겨 둘 것만 따로 구분해 놓는다. 그 옆 고랑에는 이미  대파인지 실파인지 파종에 어설픈 딸은 도저히 구분 못하는 대파싹이 꽤나 올라와 있다.

이렇게 같은 종이라도 뿌려 자란 여린 싹과 열매 내는 일에 마지막 힘을 쏟아내는 늙은 것이 공존하기도 한다. 

씨받이 대파와 뒤쪽 여린 대파, 상추


늦더위 때 심어 4계절을 땅속에서 버텨야 땅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마늘은 말이 없다. 매서운 추위에도 나른한 햇볕에도 눈 한번 깜짝 않고 버틴다.  다른 고랑에서 여리거나 쇠어가는 것들이  들고 나는 동안에도 그저 잠잠하다. 

툇마루에 앉아서 봄볕에 졸고 있는 할머니 같다.


파종 외에도 새 식구를 모종으로 들여오기도 한다. 가지, 오이, 고구마, 고추 모종이 그렇다.

모종으로 들여온 것들은 자리 잡느라 몸살을 앓는다. 몸살 할 때는 단비가 특효약이다. 비실비실거리다가도 비를 흠뻑 맞고 나면 발딱 일어난다.

며칠 지독한 감기로 앓다가 보양식 드시고 기운차리는 할아버지 같다.

연휴 때 비를 흠뻑 맞은 돌미나리가 싱그럽다.

딱 알맞게 자라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가지 모종

아버지  눈 밖에 난  채소가 있다. 피망이다.

피망을 셋째 딸이 좋아해서 두 해를  심었지만 재미를 못 봤다. 열매는 많이 열리는데 자라고 나면 잘 익지도 않고 썩어 말라비틀어진다.

"아버지, 피망이 왜 그래요?"

"그러니까,  약을  안 줘그런갑다." 

그래서 시중에 나오는 피망은 얼마나 농약을 많이 기에 튼실한지 모른다며 절대 사 먹지 말라 신다.

농약을 안 치는 이유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아버지는 그리 생각하시고 피망, 파프리카는 영영 퇴출이다.





겨울에 먹고 남은 감자 두 알에 싹눈이 올라오기에 염좌 화분 한쪽에 던져두었다. 오며 가며 별다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감자를 들어내려니 화분에 그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었나 보다.


이러다가 객식구가 주인 몰아내겠다 싶어서 막 뿌리내린 감자를 뽑아서 아버지에게 가져갔다.

 아버지 텃밭 구성을 알 리 없는 나는 감자 두 알을 비닐에 싼 채로 현관 앞에 던져두고 왔다.


 지난 연휴 때 비 그친 다음날 텃밭 구경 하다가 잊고 있었던 감자가 생각났다. 감자싹을 찾아보았더니  돌미나리 옆에서 당당하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 텃밭에 감자를 다시 들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통하면 내년에는 열 알쯤 해  볼 생각이다. 그게 먹혀들어가면 해마다 더 수를 늘리고..

감자 두 알이 나란히 자란다 새싹은 무슨 씨앗이지?





차차 감자 개수 늘리는 동안 아버지가 점점 쇠약해져 가는 일은 꿈에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감자가 다시 아버지의 텃밭에 당당히 입성하는 그때가 꼭 오면 좋겠다.

또다시 퇴출되는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가 여전히 텃밭에서 삽질을 하시고 쪼그리고 앉으셔서 호미질로 감자를 심었으면 좋겠다.


내년부턴 감자만 갖다 놓지 말고 아버지랑 함께 감자를 심어야겠다. 아버지가 삽으로 단단해진 땅을 찍어내면 내가 쭈그리고 앉아 흙덩이를 호미로 잘게 부숴야겠다.


아버지랑 도란도란 얘기하며 일하다가 배가 고파지겠지.

그러면 흙 묻은 옷을 입은 채로 손만 씻고 마당에 아버지 좋아하시는 청국장 냄비를 내놓아야겠다.

비췻빛 나는 애기 얼갈이 시래기를 넣고 큼지막하게 썬 고깃살도 넣고 두부도 넣어 보글보글 끓여야지.

둘째 딸의 간절한 소망도 듬뿍 넣어 담장너머로  온 동네에 청국장 냄새가 풀풀 퍼져나가도록 오래오래 끓여야지.

사랑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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