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최애 교통수단
아버지가 사시는 집은 지은 지 40년이 넘었는데 수리를 두 번 했다. 그 와중에 구석구석 참 많이 바뀌었지만 딱 한 군데 그대로인 장소가 있다. 어릴 적 돼지우리였던 자리인데, 이제는 농기구와 밀짚모자 같은 밭일 용구를 보관하신다. 창고가 따로 있지만 요긴한 도구는 꼭 거기 걸어두신다. 갓 캔 양파, 감자, 마늘 같은 알뿌리 채소도 늘 거기 널어놓으신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제치고 떡하니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게 있으니 바로 아버지의 자전거다.
아버지는 운전면허증이 없고 원동기면허증만 있다. 한때 소형 오토바이를 타셨던 때도 있었다. 오토바이에 삽을 걸고 논길을 달리거나 손자를 태우고 동네 앞 들판을 누비시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들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면소재지를 벗어나 조금 더 멀리 시내까지 타고 나가시기도 했다. 이른 새벽 텃밭에서 푸성귀를 뜯어 오토바이에 싣고 가까운 도시에 사는 딸네 집까지 다니셨다.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푸성귀를 딸 집 현관문 앞에 소리 없이 두고 가셨다. 출근 준비로 바쁜 딸에게 행여 방해라도 될까봐 초인종도 누르시지 않고 그냥 돌아선 아버지 모습에 눈물이 찡하곤 했다. 그런 날은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다음엔 꼭 출발 전에 전화하세요. 아침밥 챙겨놓을게요.”
“애들 챙기고 출근하기도 바쁜데. 너나 밥 굶지 말고 다녀.”
그러던 어느 날, 쓸모 많던 오토바이가 일을 당했다. 시내로 씨앗을 사러 나오신 김에 손자 얼굴 보러 아들집에 들렀다가 귀가하시는 길에 사고를 만났다. 큰 수술을 하고 6개월 넘게 병원 생활을 하셨다. 그 뒤로 오토바이는 절대 안 된다는 가족들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지금은 다시 자전거를 타시는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다 보면 자전거를 타시던 아버지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기찻길이 지나는 동네 끝자락에,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는 반대쪽 끝에 있었다. 큰 도로까지 가려면 동네 뒷길을 잰걸음으로 한참 걸어야 했다. 그 길을 따라 아버지는 일을 다니셨고 우리 오누이들은 시내 통학을 했다.
큰 길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둘째 딸 뒤로 석공인 아버지가 돌가루 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루를 지탱한 묵직한 발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200보쯤 앞에 걷는 둘째 딸이 반가워도 다정히 부르시는 소리가 없다.
“끼이익.”
말 없는 아버지 대신 자전거 제동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땀 절은 수건을 목에서 내려 뒷자리 돌가루를 탈탈 털어냈다. 귀한 손님 맞는 인력거꾼처럼 자전거를 딸 앞에 대령했다. 타라는 말도 타겠다는 말도 없었다. 둘째 딸은 아무렇지 않게 뒷자리에 타서 돌가루 입은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갔다. 과묵한 아버지를 닮아 살갑지 못했던 딸. 일하시느라 애쓰셨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한마디 없이 자전거에서 내렸다. 부녀는 왜 그렇게 데면데면했는지 삶의 무게만큼 침묵도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면 먼 들판 둑길에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자전거를 달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일하시다가 점심 드시러 자전거로 돌아오시는 모습. 면소재지의 친목모임을 위해 친구분과 나란히 자전거로 나서시는 모습, 취해서 비틀거리며 자전거에 의지해 귀가하시는 모습. 아버지와 자전거가 한몸인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자전거가 아버지의 그림자 같았다.
지금도 면사무소나 재래시장, 병원이나 종묘사, 약국에 가실 때는 자전거를 타신다. 미수 연세에 자전거를 타시고 노년층 일자리창출 사업에 참여하신다.
“아버지 힘드시잖아요. 그만 다니시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 동갑 친구들도 다 떠났고 나보다 나이 많은 영감은 하나도 없다. 운동 삼아 소일하는 거지. 일하면서 얘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셔야 시간 금방 간다.”
노신사의 중형세단 못지않게 역할을 잘 해냈던 자전거다. 뒤에 안장도 있고 앞에 수납공간도 있는 전동자전거를 사드리겠다고 하니 손사레를 치셨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거면 충분해. 고장 나면 고쳐 쓰면 된다.”
아버지도 자전거도 갈수록 삐걱댄다. 늙은 아버지가 낡은 자전거에 해줄 수 있는 일은 바퀴에 바람 넣고 기름칠하고 먼지 털어주는 일뿐이다. 삐걱대는 아버지께 둘째 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텃밭 채소로 반찬 만들어 드리고 필요한 물품 채워드리고 관공서 출입 봐드리는 일뿐이다.
등이 굽어 키가 둘째 딸만 해지셨지만, 여전히 텃밭에서 쇠스랑을 다루신다. 무겁다 싶은 걸 들어 올리려는 딸을 얼른 막아선다.
“무겁다 놔둬라.”
굽은 등을 하시고도 여전히 힘이 센 줄 아시고 둘째 딸 아픈 어깨를 먼저 걱정하신다.
자전거가 가르던 바람에 밀려 아버지의 세월에 주름이 졌다. 바퀴가 굴렀던 만큼 아버지의 머리카락도 빠져나갔다. 숱 많고 검던 머리가 이제는 헤싱헤싱한 백발이 되었다. 반백을 넘은 딸은 미수의 아버지에게 그 시절 그때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허리춤을 부여잡고 태워달라고 조르고 싶다. 들판 길을 달려 국민학교까지 가자고 재촉하고 싶다. 운동장에서 뱅글뱅글 몇 바퀴 돌다가 짜장면 사달라고 말하고 싶다. 입가에 짜장 자국 묻히며 맛나게 먹고 돌아올 때는 아버지 등에 머리를 기대고서 아버지 냄새를 마음껏 새기고 싶다. 뒷자리에 앉아서 발을 동동거리며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고 싶다. 기다려 준 아버지가 고마워서 들으시든 말든 말문 트는 아이가 되어 이 얘기 저 얘기 주절거리겠다.
자전거 탄 부녀 사이가 투명한 햇살에 퍼지는 탱자열매 향내로 가득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