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간에 들어서면 아버지의 자전거가 있다. 지금 살고 계시는 집은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지은 집인데리모델링을 두어 번 했다.
그 집 이전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죄다 바뀌고 딱 세 가지 남아있는 게 있다.
사람, 자개수납장, 자전거가 놓인 공간이다.
자전거를 보관하는 곳이 내 어릴 적 돼지우리다.
벽체는 두 면이 무너져 없고 남은 두 면과 바닥면이 그때와변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곳에 아버지는 각종 상자, 비닐봉지, 호미, 낫, 밀짚모자 등 밭일에 필요한 도구들을 보관하신다.
작은 창고가 따로 있지만 거칠게 다뤄도 괜찮은 물건이나 흙이 묻는 농기구들, 갓 캐내어서 건조가 필요한 양파, 감자, 마늘 등 알뿌리 열매들을 걸어두시거나 널어놓기도 한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그것들을 제치고 떡하니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물건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의 자전거다.
아버지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원동기면허증은 있다. 한 때 용량이 적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신 때도 있었다.
오토바이에 삽을 걸고 논길을 달리시거나 손주들을 뒤에 태우고 동네 앞 들판을 누비시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생인 내 아들도 할아버지께서 태워주신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던 기억을 회상하곤 한다.
조금 더 멀리, 면소재지를 벗어나 시내까지 타고 나오시기도 하고 이른 새벽 푸성귀를 뜯어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싱그러운 것들을 딸이 잠 깰까 봐 살며시 문 앞에 두고 가시기도 하셨다.
아버지의 큰손자운동회 때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셔서 일찌감치 그늘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자리지킴이를 담당하셨었다.
그 쓸모 많던 오토바이가 일을 당했다.
금요일 오후시내로 종자씨앗을 사러 나오신 김에 아들집에 들러 손자 얼굴 보고 간식 좀 드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사고를 만났다.
승용차가 아버지를 발견 못하고 그만 들이받았다.
그 사고로 아버지의 다리뼈가 완전히 부러져서 큰 수술을 하시고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다.
그 이전에도 막걸리 드시고 음주운행을 하셔서 가벼운 접촉 사고도 여러 번 있었다.
큰 사고 이후 오토바이는 절대 안 된다는 아들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다시 자전거를 타셔야 했다.
자전거를 타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많다.
우리 집은 기찻길에 맞닿은 동네 끝자락 쪽이고 신작로는 반대쪽 끝에 있었다. 시내로 나가는 출구에 동네가 자리해서 버스는 참 많았다.
그렇지만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걸어서 가려면 동네 뒤쪽으로 난 길을 잰걸음으로 10여분이 넘게 걸어야 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문제없지만 급할 때나 우산 없는 우중에나, 뜨거운 여름날, 추운 겨울엔 그 길이 그렇게 길다.
그 길을 따라 아버지는 일을 다니셨고 우린 시내 통학을 하거나 출근을 했다.
운 좋게 버스에 내려 집에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시는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는 말없이
자전거를 내 앞에 멈춘다. 타라는 말도 없다.
멈추는 것 자체가 "뒤에 타." 이 말이다.
그러면 딸은 또 아무 말 없이 뒷자리에 타고 아버지 허리춤을 잡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는 부녀지간.
그땐 그랬다. 왜 그렇게 과묵했는지. 침묵의 무게만큼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 그랬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보면 저 멀리 들판 둑길에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자전거를 달리시는 모습. 일하시다가 점심 드시러 자전거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면소재지에 계모임 하시러 친구분과 나란히 자전거로 나서시는 모습,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자전거에 의지해 귀가하시는 모습.
마치 아버지와 자전거가 일체인 것 같은 때가 그렇게 있었다.
자전거가 아버지의 그림자 같다.
지금도 교회에 가실 때나 면소재지 5일장이나 병원이나 약국에 가실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신다.
또 87 연세에 자전거를 타시고 15분이나 달려서 노인일자리창출 사업에 참여하신다.
그만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넌지시 얘기를 꺼냈더니
"이 동네 내 친구들 다 떠났어. 나보다 나이 많은 영감은 하나도 없어야. 두 살 아래 영근이, 세 살 아래 종택이만 남았다. 남출이도 엊그제 갔다. 그래도 거기 가야 얘기라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시간도 금방 간다."
이러셔서 그만두었다.
어느 중형세단 못지않게 역할을 잘 해내는 낡은 자전거.
뒤에 안장도 있고 앞에 수납공간도 있는 새 자전거 사드리겠다니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거면 썼다 벗었다 충분혀. 괜한 짓 하지 말어. 고장 나면 고쳐 쓰면 돼야." 이러신다.
아버지도 자전거도 갈수록 삐걱댄다. 늙은 아버지가 낡은 자전거에 할 수 있는 일은 바퀴에 바람 넣고 기름칠하고 먼지 털어주는 일이다.
내가 삐걱대는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텃밭 채소로 반찬 만들어 드리고 영양제 사다 드리고 필요한 물품 채워드리고 관공서 출입 봐드리는 일이다.
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다.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서 그때처럼 허리춤을 부여잡고 태워달라고 조르고 싶다.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 운동장까지 가자고 재촉하고 싶다. 운동장에서 뱅글뱅글 몇 바퀴 돌다가 짜장면 사달라고 말하고 싶다.
입에 짜장 묻히며 맛나게 먹고 돌아올 때는
허리가 굽어 키가 나만해진 아버지 등에 머리를 기대고서 아버지 냄새를 마음에 새겨 넣고 싶다.
뒷자리에 앉아서 발을 동동거리며 재잘재잘 아버지랑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때 아버지와 내 입에서는 투명하게 닦인 햇살에 퍼지는 싱그러운 아카시 향기가 풀풀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