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속의 시간

그 시절엔 아버지 생계의 흔적이었다.

by 라이테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모자는 두 가지였다. 초록빛이 선명한 새마을 모자와 챙이 넓은 밀짚모자였다. 두 모자는 멋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쓰임을 위한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늘 땀 흘려 일하실 때 모자를 쓰셨다.

밀짚모자를 쓰실 때는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검은 장화를 신으셨고, 새마을 모자를 쓰실 때는 바짓단을 투박하게 걷어 올린 채 검정 고무신을 신으셨다. 장화에 묻은 흙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젖어 있던 날들이 많았고, 고무신은 뒤꿈치가 눌려 항상 약간 비틀어져 있었다. 논일에는 밀짚모자, 밭일이나 석공일, 장터에 나가실 때는 새마을 모자였다. 그 두 모자만으로도 아버지의 하루가 구분되었다.

여름날, 더위에 뒤척이다 늦잠이라도 자고 나면 이미 아버지는 논두렁을 한 바퀴 돌아오신 뒤였다. 녹슨 자전거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 소리는 마치 하루가 이미 한참 진행 중이라는 신호 같았다.

방 안까지 햇살이 깊이 들어오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마루로 나와 눕곤 했다. 나무 마루는 아직 밤의 서늘함을 조금 머금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다시 눈을 반쯤 감았다.

그때의 시선은 늘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아버지였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아버지를 따라가던 시선. 그날 내가 완전히 일어날지, 다시 잠 속으로 미끄러질지는 아버지의 모자에 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헛간에 세워두고, 밀짚모자를 뒤집어 손잡이에 걸어두셨다. 챙이 위로 향하게 뒤집힌 모자 안에는 새벽 공기가 잠시 머물렀다. 새벽에 밴 땀이 마르도록 두는 것이었다.

모자로 옷을 타닥타닥 털어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안심하듯 다시 몸을 말았다. 그 소리는 더 자도 된다는 신호 같았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더 크게 떴다.

모자 안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까맣게 익은 까마중이 줄기째 담겨 있기도 하고, 터져 붉은 물을 흘리는 산딸기가 가득 담겨 있기도 했다. 모자 가장자리에는 열매 즙이 묻어 있었고, 그 냄새가 먼저 마루까지 올라왔다.

아버지가 모자를 들고 툇마루로 올라오시면 나는 뜨거운 냄비에 볶아지는 참깨처럼 벌떡 일어났다. 손보다 먼저 입이 반응했고, 입보다 먼저 냄새가 다가왔다.

아버지는 새벽 논길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그 열매들을 따 오셨다. 한 줌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모자 하나를 채웠을 것이다. 그 짧은 손길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을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밀짚모자는 늘 깨끗할 수 없었다. 흙 묻은 손으로 수시로 만지셨기 때문이다.

장맛비가 지나간 뒤 들풀은 며칠만 손을 놓아도 논둑길을 덮어버렸다. 길인지 풀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금세 자라났다. 호미로는 감당이 안 되어 낫으로 베어내야 했다.

억센 여름 풀을 베다 보면 새벽에도 땀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는 허리를 펴며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셨다. 그때마다 모자의 안쪽은 더 축축해졌고, 손에 묻은 흙은 그대로 모자에 옮겨 묻었다.

모자는 점점 색을 잃어갔고, 가장자리는 닳아 밀짚이 삐져나왔다. 실처럼 풀린 밀짚 끝이 바람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 모자를 버리지 않으셨다.

새마을 모자는 마른 일을 할 때 쓰셨다. 텃밭에서 수확한 것을 손질하거나 저장할 때, 종묘상이나 면사무소에 가실 때였다. 그럴 때 아버지는 평소보다 단정한 옷을 입고 자전거에 오르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전거 뒷자리를 자꾸 들여다보곤 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실려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비어 있었다.

그 비어 있는 자리 위로 기대만 자꾸 쌓였다가, 어느 순간 다시 사라지곤 했다.

세월이 흐르자 농약상과 종묘상에서 나눠주는 모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농약 이름이나 씨앗 회사 이름이 적힌 모자들, 정수리가 그물망으로 된 감색 모자를 아버지는 즐겨 쓰셨다.

그 모자들은 이전보다 가볍고, 바람이 잘 통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밀짚모자가 더 익숙했다.

아버지는 농사일 외에도 석공 일을 하셨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모자에는 하얀 돌가루가 내려앉아 있었다. 손으로 털어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가루였다.

어떤 날은 그 가루가 더 두텁게 쌓여 있었고, 어떤 날은 얇게 퍼져 있었다. 그 차이를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하루의 무게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 모자가 지닌 의미를 모른 채 자라났다. 모자에 밴 땀방울이 늘어날수록 집안의 지출도 함께 늘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렸다. 머리숱은 줄어들었고, 한동안 검은 염색을 하셨다. 그러나 여든을 넘기면서 그마저도 멈추셨다.

그 무렵부터 아버지는 멋내기 모자를 쓰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사다 드린 것이었고, 이후에는 직접 고르신 것이었다. 계절과 옷차림, 나들이 장소에 따라 모자가 달라졌다.

모자는 더 이상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출을 위한 것이 되었다.

이제는 새마을 모자도, 밀짚모자도 아버지 곁에 없다. 논농사는 맡기셨고, 밭일을 하실 때는 밀리터리 모자를 쓰신다.

현관 테라스 기둥에는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모자들이 걸려 있고, 거실 벽에는 외출할 때 쓰는 모자가 따로 걸려 있다.

모자마다 자리가 따로 있는 집이 되었다.

자식들은 모자가 생길 때마다 아버지께 드렸다. 작년에 내가 사다 드린 빨간 모자는 아직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얼마 전 벚꽃을 보러 구례와 하동에 다녀오셨을 때도, 아버지는 모자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다.

모자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다른 모자를 쓰셨다가 거울을 한 번 보고, 다시 벗어보는 손길이 천천히 이어졌다.

그 손이 예전보다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손 위에 얹힌 모자가 아니라

그 모자 위에 얹혀 있던 시간들을 함께 보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외출용 모자. 주로 재킷 입으실 때 쓰신다.
밀리터리룩 일모자
함부로덤부로 이 계절 모자들
힙한 그 모자
둘째딸이랑 열무 다듬기


*헤성헤성하다 -

전라북도 방언. 이쪽 지역에서는

머리숱이 적을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