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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May 29. 2024

지금은 패션 아이템

그 시절엔  아버지 생계의 흔적이었다.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의 모자는 초록초록한 새마을 모자와 챙이 넓은 밀짚모자였다. 두 모자는 멋 내기 패션과는 전혀 관계없는 실용적인 모자이다. 쓰임대로 아버지가 모자를 쓰시는 경우는 대부분 땀 흘려 일하실 때였다.

밀짚모자를 쓰시고 정강이까지 오는 검정 장화를 신으셨거나  새마을 모자를 쓰시고 바짓단을 투박하게 접어 올려  검정 고무신을 신으셨다.

논일에는 밀짚모자, 밭일이나 석공일, 장터 나가실 땐 새마을 모자다.




밤늦도록 더위에 뒤척이다 늦잠이라도 자는 여름날에는 벌써 논두렁을 한 바퀴 돌아오신 아버지의 녹슨 자전거가 삐걱삐걱 내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날 때가 있다. 동향으로 이 난 방안까지 햇살이 따갑게 들어오면 더 버티지 못하고 부스스 일어나 마루로 나온다. 그리고는 그늘진 마루 구석에 다시 모로 누워  실눈을 뜨고 아버지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둔다. 내가 벌떡 일어날지 그대로 늦잠의 여운 속에 빠져있을지는 아버지  모자에 달려있다.


아버지는 조용히 자전거를 헛간에 세워두고 밀짚모자의 챙이 위를 향하게 뒤집어 자전거 손잡이에 걸쳐두신다. 새벽 논길이지만  더위에 송골송골 흘린 땀이 모자에 축축이 밴 걸 말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모자로 타닥타닥 옷을 털어내시는 소리가 들릴 땐 늦잠을 좀 더 붙들고 누워있어도 된다.


어떨 땐 모자를 벗어서 뭔가를 담아 오시기도 하는데 이럴 땐 옷 터시는 소리가 없다.  새까맣고 앙증맞은 까마중열매가 줄기에 달린 채로 들어있거나 과즙이 터진 채 빨간 물을 흘리는 산딸기 열매가 들어있기도 하다. 아버지가 모자를 마루 쪽으로 들고 오시면 뜨거운 냄비에 볶아지는 참깨처럼 톡 튀어 일어난다. 벌써 새콤 달달한 냄새에 침이 고인다.

새벽부터 일하셨으니 덥고 시장하셔서 아침 밥상이 간절하실 텐데도 자식들 생각에 자전거를 멈추시고 까마중, 산딸기 줄기어오신 것이다.




아버지의 모자는 깨끗할 리가 없다. 일하시다가 흙 묻은 손으로 모자를 자주 만지시기 때문이다.

장맛비에 야속하게 자라는 잡초는 며칠만 손을 안 대면 논둑길이 안 보일 정도이다. 호미로는 감당이 안되고 낫으로  쓱쓱 베어내야 한다. 여름풀은 억세서 베어내는데 힘도 더 들다 보니 새벽 논길이라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면 허리도 펼 겸  한 번씩 모자를 벗어서 부채질을 하신다. 그러니 손에 묻은 흙이 모자에도 옮겨 묻는다.

오래 쓰신 모자는 테두리가 낡아져서 밀짚이 삐져나온다. 영 볼품없다. 그럴망정 낡은 모자 한 개라도 쉽게 버리시않았다.


새마을 모자. 이건 주로 마른 일 하실 때 쓰신다.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저장하기 좋게 손질할 때 쓰신다. 햇빛 가리기보다 먼지가 머리에 내려앉지 말라고 쓰신다.

면소재지 종묘상이나 약국, 면사무소 가실 때도 쓰신다. 이런 곳에 가실 때는 허드레 옷이 아닌 것을 입으시고 자전거에 오르시기 때문에 금세 출타하시는 목적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아버지 자전거 뒤쪽 안장에 무엇이라도 간식거리가 좀 실려오려나 기대하건만 대부분 빈 채로다.

아마도 아버지 생각엔 그런 일은 당신 몫이 아니라 엄마 몫이라 여기신 듯하다. 그렇더라도 우린 섭섭하다. 그러고도 어린 마음에 또 기대를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조금 흐르니 농약상이나 종묘상에서 판촉용으로 나온 모자들이 아버지 두 모자를 침범하기도 했다. 농약이름이나 씨앗회사 이름이 적혀 있는 모자이다. ​ 주로 초록색이  많았고 농약이나 씨앗회사에 따라 빨간색에 하얀 바탕인 모자도 있었다.

 특히 정수리 부분이 그물망처리 된 감색 모자는 아버지께서 애용하셨다.


농사 외에도 아버지는 석공으로도 일하셨었다.

고모부님 따라 우체국에서 근무를 조금 하시다가 당시 월급이 너무 박봉이라 그만두시고 석공일을 하셨다고 한다. 세월이 이렇게 변할 줄 아셨다면 그때 우체국 일을 계속하시는 게 좋을 뻔했다고 엄마의 푸념을 한 번씩 듣지만 아버지는 암말도 없다.

석공일은 먼지가 많이 생기는 직업이라 일 다녀오신 아버지 모자에 뿌연 미세돌가루가 내려앉았던 게 생각난다. 일의 강도가 세고 작업 시간이 길어져 밤에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의 모자엔 더욱 많은 흰 가루가 앉아있었다. 삶이 고단할수록 모자에 분진이 많이 쌓였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다행인 것은 진폐증이 있는 석공들이 지역에 많은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서 정말 감사하다.


우리 남매는 그 모자가 지닌 의미도 모른채 장마에 풀자라듯 쑥쑥 자랐고 모자에 밴 땀방울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지출할 일이 많아졌다.




연세가 드시니 아버지 머리에도 어김없이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세 고모님도 그렇고 유독 흰머리가 빨리 생겼다. 게다가 정수리에 머리칼이 *성헤성하다. 피부는 매끄럽고 팽팽하신데 머리카락이 피부를 따르지 못하니 처음엔 검정물도 손수 들이셨다. 그러다가 80 연세가 넘으니 검정물을 끊으셨다. 가끔 2대독자  아들이 하수오제품을 사다드리기는 했다.


점차 탈모가 심해져 가자 그때부터 멋 내기 모자를 쓰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들이 사다 드린 모자, 아들이 안 쓰는 모자를 주로 쓰시다가 나중엔 직접 모자를 구매하셨다.

방 안에 있는 외출용 모자. 주로 재킷 입으실 때 쓰신다.

계절에 따라  모양에 따라 또 옷차림에 따라 나들이 장소에 따라 아버지 멋 내기 모자가 달라진다.


더 이상 새마을모자도 밀짚모자도 아버지 손에서 떠난 지 오래다.

지금은 논농사는 맡겼고 밭일하실 땐 밀리터리룩 모자가 아버지랑 함께 한다.

밀리터리룩 일모자


모자를 걸어두시는 장소도 각각 다르다. 현관 테라스 기둥에 걸어놓으신 것들은 지금 계절에 함부로덤부로 쓰시기 좋은 모자다. 빨리 손에 잡히는 모자.

함부로덤부로 이 계절 모자들

현관 안쪽 벽에는 청바지 차림으로 외출 시 쓰시는 최애템이 걸려있다. 아버지 판단으론 아마도 가장 힙한. 가장 패셔너블한 모자?

힙한 그 모자

모자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자식들은 모자가 생기는 족족 갖다 드린다. 사진 속 빨간 모자는 둘째 딸이 작년에 갖다 드린 모자다. 청바지에 코디하시라고 드린 건데 구순 앞둔 노인에게 너무 과했는지 쓰신걸 한 번도 못 봤다.

4월 초, 벚꽃구경하러 구례, 하동 여행 다녀올 때도 최참판댁 앞 모자가게와 화개장터를 한참 구경하셨다.

나는 이런 아버지 모습이 좋다.

사람이 건강해야 멋 부릴 마음도 생기는 거니까.

병환일 땐 세상 아무리 멋진 것도 귀찮고 소용없는 일이라 여겨지니까.

그만큼 아버지가 건강하시다는 방증이다.




젊을 땐 멋 내기 모자는 생각도 못하실 만큼 녹록지 않은 세월이었는데 멋좀 부리시려니 허리는 굽고 다리도 아파 나들이 길을 참참이 쉬셔야 한다.

아버지의 세월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모자가게 모자 전부라도 사드릴 텐데. 아무리 비타민제 칼슘제 건강보조식품, 공진단을 사다 드려도 세월을 비껴설 수 없는 건강이다.

내 아버지의 일상을 더 자주 들여다보고 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밖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브런치작가를 신청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아버지의 세월을 세상 속에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딸의 간절함이다.

엊그제 아버지께 다녀오면서 핸드폰을 꺼내 브런치에 쓴 아버지 이야기를 보여드렸다. 작은 화면 속 글이 침침한 눈에 얼마나 보이겠냐만 사진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아버지 이야기를 둘째 딸이 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허허, 참. 이 늙은이 얘기를 누가 궁금혀 헌다고 그려? 너 하고잡픈데로 혀라."

둘째딸이랑 열무 다듬기


*성헤성하다 -

전라북도 방언. 이쪽 지역에서는

머리숱이 적을 때 사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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