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놀이 숨바꼭질
아침 햇살이 논밭 위를 기어가면 흙냄새와 풀 향기가 뒤섞여 숨결처럼 퍼졌다. 멀리 산 그림자가 논둑 위로 천천히 내려앉으면 굴뚝에서는 아침밥 짓는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아침을 서두르는 농부의 소달구지 바퀴 소리와 닭 울음이 하루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름이 다가오고 해가 길어질수록 우리의 놀이도, 부모님의 하루도 길어졌다. 모내기를 마치고 난 논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말라버린 모를 다시 교체하는 모 때우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밭에서는 감자, 양파, 보리를 거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작물을 심는 시기이다. 부모님의 귀가도 늦어졌다. 어두워질 때까지 논에 계시다 마루 끝 백열등이 켜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침 밥상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하교 후에 해야 할 일들을 줄줄 읊어주셨다. 첫 번째인 숙제하기는 대체로 잘 수행했다. 숙제가 끝날 때쯤 친구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급하게 숙제를 마무리하고 친구의 부름에 이끌려 나갔다.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더운 줄도 몰랐다. 집을 지키는 것은, 하다만 숙제와 어질러진 집안일과 강아지 흰둥이뿐이었다.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 남도로 이어진 철길이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곳에 있었다. 나는 기적 소리와 땅이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자랐다.
동전을 선로 위에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멀리 굽은 들판 너머로 기차가 보이면 선로에 귀를 대고 다가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놀이였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했다.
위험한 철길 놀이를 두고도 동네 어른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철길을 건너 소달구지나 경운기를 끌고 논으로 나갔고, 머리에 점심밥이나 새참을 이고 들길을 오갔다.
철길 바로 옆에는 동네 개울로 이어지는 생활 오·폐수 도랑이 있었다. 물은 거의 말라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정도였다. 여름이 되면 도랑과 철길 사이 둔덕에는 족제비싸리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철길은 우리 놀이터 가운데 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우리만 아는 숨바꼭질 요새가 있었다. 우리의 숨바꼭질 본부였다.
평소에는 숙제를 먼저 하고 놀았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우리 남매가 숙제를 미룬 채 책가방만 마루에 던져놓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언니 오빠들의 놀이에 끼고 싶어 정신없이 따라나선 것이다.
숨바꼭질도 또래끼리 하는 것보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하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끼워주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조르곤 했다.
동생들과 놀 때는 즐거움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더 많았다. 함께 놀다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이 돌아왔고, 거친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기분이 틀어지면 괜히 지난 잘못까지 들춰지곤 했다. 그래서 동생들은 놀이에 있어 번거로운 존재였다.
동생들은 종종 술래를 맡았다. 하지만 움직임이 느려 금세 잡히거나, 반대로 숨은 사람을 잘 찾지 못해 놀이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다. 겉으로는 양보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답답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생들이 숨어도 일부러 찾지 않을 때가 많았다.
족제비싸리 나무가 우거진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앉으면 밖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덕에 토굴 속에 들어온 듯 그늘이 서늘했다. 숨바꼭질을 하지 않을 때에도 심심하거나 울적하면 찾아가 앉아 있기 좋은 곳이었다.
더운 날, 놀이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으면 서늘한 공기 사이로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그곳은 어느새 우리만의 상쾌한 요새가 되었다.
그날도 나는 그 요새에 몸을 숨겼다. 술래가 바뀌어 가며 숨바꼭질은 계속되었지만, 족제비싸리 나무 그늘 속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처음에는 술래의 움직임을 좇아 시선이 따라다녔지만, 어느 순간 시야에 해 저무는 하늘빛이 스며들었다. 고운 빛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피곤함이 몰려오자 눈이 자꾸 감겼다. 서늘한 기운과 잔잔한 공기가 몸을 감싸 안았다.
한참이 지나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잘 숨어 있겠거니, 그러다 지쳐 먼저 집에 갔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초저녁잠 이 많아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먼저 잠들어 버린 적이 많았다. 밥 먹고 자라며 깨우는 소리겠거니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런데 눈앞에는 칠흑 같은 밤뿐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그곳에 숨어들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멀리서 언니 오빠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상황이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언니를 불렀다.
잠시 뒤, 나를 발견한 언니가 달려와 손을 잡아끌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언니는 숨을 고르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일러주었다.
언니는 숨을 고르며 상황을 전해 주었다. 우리가 숙제도 하지 않은 채 놀러 나왔다는 것, 아침에 엄마가 시킨 일도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것.
게다가 내가 사라지는 바람에 저녁밥도 포기한 채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걱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가 단단히 난 엄마에게 이미 언니와 오빠가 먼저 매를 맞았고, 집에 돌아가면 또 한 번 혼이 날 거라는 것이었다.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2차전’이 기다리고 있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의 부재는 다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일이었다. 3차전을 막아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2차전을 치르고 나면, 우리는 대문간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아빠 없이 3차전을 맞이했다.
엄마는 회초리를 마당에 던져두고, 밤이슬에 눅눅해진 빨래를 서둘러 걷어 들였다.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문 밖으로 쫓겨나 담벼락에 기대어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만 쫑긋 세운 채, 아빠의 자전거 소리를 기다렸다.
한참 뒤, 저 멀리서 자전거 바퀴가 보였다. 아빠는 우리 앞에 서서 말없이 바라보시더니 짧게 말씀하셨다.
“들어가자.”
자전거 손잡이에서 우리 손으로 옮겨 쥐어진 아빠의 손은 거칠고 따뜻했다. 먼지가 묻은 손등과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말없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아빠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엄마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아빠를 보자마자 우리의 잘못을 쏟아내며 또다시 매를 들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애들을 안 때리니까 저렇지!”
그러나 아빠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밥 먹고 숙제해라.”
그 한마디에 엄마의 속이 다시 뒤집힌 듯했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의 4차전은, 그렇게 끝내 시작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마음으로 자식을 품던 분.
그 시절에는 삶의 고단함이 자식에게로 향하는 집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서 단 한 번도 비난을 들은 적이 없다. 그 말 없는 사랑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배움은 중학교에서 멈췄고,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라는 이유로 고향을 떠날 수 없었던 아버지. 그렇게 건너온 세월이 어느덧 미수에 이르렀다.
어두운 밤,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던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 시선. 그날의 아버지는 우리의 길이었다.
아버지의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른다면 좋겠다.
굽어진 등과 가늘어진 팔다리로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환한 마당으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셨던 것처럼, 덥고 피곤하고 무료한 삶의 저물녘에서도, 우리를 족제비싸리나무처럼 포근히 감싸 안아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