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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테 Aug 04. 2024

에필로그

마음을 여미고 봉인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매거진을 만들고 프롤로그도 없이 글을 발행했어요. 15회로 매거진 스토리는 마쳤고 이제 봉인의 마지막. 단단히 마음을 여미며 봉인합니다. 편지로 에필로그를 대신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하고 침묵으로 수고를 격려해 주셔서, 댓글과 라잇킷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아들이 7월 한  달 학생군사훈련을 잘 마치고 건강하게 귀가했어요. 이번 훈련이 학생 때 받는 마지막 훈련이라고 꼭 엄마 편지를 받고 싶다고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편지를 썼는데 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은 댕댕이나 줘버릴 만큼 형편없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편지를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편지를 받은 아들의 감상평이 '너무 내용이 부실하다' 였어요. 브런치 심사는 어떻게 통과했는지 ㅎ ㅎ

그러니 지금 이 편지도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아들은 지금 베트남 여행 중이에요. 하필 더운 때 땡볕 훈련을 받고 나서 더운 나라를 가느냐고 TT

여기 이웃 작가님 여행기를 읽고 시원한 몽골을 추천했더니 젊은 오빠들이 즐길만한 곳이 아니라고 단번에 후보지에서 탈락되었어요. ㅎㅎ


그때 고3이던 아들이 어느새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빨라요. 지금까지 펼쳐진 아들의 삶을 보면 만남의 축복받았음을 여실히 느껴요. 앞으로도 얼마나 멋진 삶이 될지 기대가 되어요. 주변을 돌아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따뜻한 사회구성원이 되었으면 해요.

여름이 가고 나면 번째 가을이 다가오겠지요.

가을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쁜 딸의 생일이 있어요. 친탁을 해서 엄마 닮은 구석이라곤 큰 키 외에는 없는 딸을 참 많이 이뻐했는데. 딸이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기 때부터 울음 다 끌어모아도 그때보다 적을 만큼요. 늘 헤헤거리고 밝고 명랑한 딸이 조금 과장되게는 눈물로 강을 만들 만큼 울었어요. 딸바보였는데 그 캐릭터를 맘껏 못한  알아요. 이젠 그곳에서라도 맘껏 딸바보 해요.


가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해요. 난 추위는 싫어하지만 어쩐지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과 쓸쓸함이 공존해서 좋아요. 오래전부터 쓸쓸함이 낡은 내 옷처럼 편하게 느껴졌거든요. 다른 계절에도 가을만 생각하면 설렐 정도예요.

우리가 서로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는 했는지요.

사는 게 힘들어서 무형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마음 둘 여력이 없었겠지요. 육안으로 보이는 것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삶이었는데 우리가 서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겠지요.

우린 20년이 넘는 세월을 법이 인정하는 가족으로 묶여 있었지만 서로에 대해 무심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핑계일까요? 그 시절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었을까 싶어요. 서바이벌게임처럼 예측 없이 나타나는 돌발상황들을 헤쳐가는 것만으로도 숨쉬기도 벅찼으니까. 그 연단의 끝에 결국 당신이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끝내 천국행을 가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조금 더 늦었으면 아들 2차 시험 응시가 어려웠을 거예요. 천국 가는 날짜조차도 하나님 계획 가운데 적합한 때로 인도하셨지요. 마지막에 천사의 손을 붙잡으라는 내 말을 들어줬어요. 남자들은 아내들의 말을 잘 들어야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데 당신은 내내 안 그렇다가 마지막 한 방을 날렸어요. ㅎㅎ

떠나던 순간의 그 평온한 얼굴. 숨이 좀 차다고 말을 하기에 산소 보충을 해야겠다 싶어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러 1분도 안되게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지요. 이내 내 눈앞에서 잠드는 아기처럼 너무도 평안하고 고요하게 영원의 길을 떠날 준비를 했어요. 미처 vital sign Monitor를 부착하기도 전에 서둘러 떠났어요.

치열하게 몸부림치다 떠나지 않기를 늘 기도했거든요. 그건 내가 도저히 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많아서 병동 복도를 오가며 영면실 문이 열려 있는 틈으로 보이는 그 상황이 끔찍이도 싫었어요. 미처 아들 딸을 부를 새도 없이 영면실로 갈 새도 없이 병실에서 고요히 빠져나간 당신. 유언을 따로 들을 수도 없었고, 나 혼자서 임종을 지켰지만 괜찮아요. 이 땅에서의 소망은 오직 구원이니까요.

그곳은 어떤가요? 가장 건강하고 가장 젊고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있으니 안심이에요.

천국길은 황금길이라는데 맞는 말인가요? 그곳에 가면 돌멩이나 다름없는 황금을, 가져갈 수도 없는 돌멩이에 매여 기를 쓰고 살고 싶지는 않아요. 여행 떠날 때 무거운 돌멩이를 챙겨갈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세상 소풍을 마치고 떠날 무엇을 가져가야 하나 생각해 봤어요. 이름 자면 그걸로 충분해요. 이미 이름은 그곳 생명책에 예약되어 있으니 가서 이름만 대고 신분 조회만 끝나면 같아요. 그런 후에는 아름다운 그곳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영원히 살아가겠지요. 결혼식 입어봤던 스팡클이 콕콕 박힌 드레스를 날마다 평상복으로 입고 황금길을 산책하며 내 브런치 프사처럼 우아하게 때론 빨간 머리 앤처럼 발랄하게 살아가겠지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요.

그럼 소풍 떠나기 전에 무엇을 남겨놓고 가야 하나 생각해 봤어요. 나를 닮은 아들과 딸을 남겨두었으니 그거면 족해요(그들이 쓸 것들은 스스로 마련해야지요). 더 욕심을 내자면 썼다가 지우개로 지운 흔적 같은 내 이름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공부가 하고 싶은 아이, 배가 고파 음식이 필요한 아이, 목이 말라 마음껏 물이 마시고 싶은 아이, 비바람을 막아 줄 집이 필요한 아이, 몸이 아파 치료가 필요한 아이,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내 이름이 스며들어 실루엣처럼 남았으면 좋겠어요.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결국 태어나는 일은 죽음을 향해 가는 일임을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아름다운 세상에 죽을 일만 생각하며 살기엔 너무 억울하잖아요. 죽을 죽더라도 죽음이 내 것이 아닌 양 죽음의 그늘에서 비켜나서 화사하고 밝게 살 거예요. 산책하는 댕댕이 목에는 주인 손에 붙들린 긴 줄이 채워져 있잖아요. 똥꼬 발랄하게 꼬리를 흔들고 뛰어다녀도 결국 댕댕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주인이 있는 곳이지요.


나는 지금이 참 행복하고 좋아요.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가 끝나고 내가 나 혼자만 책임져도 될 상황이 오면 글쓰기에 대한 제도권 공부를 좀 해보고 싶었어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을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방법을 몰랐거든요. 만학도가 되어 대학원을 진학해야 하나, 평생교육원을 다녀야 하나, 문화센터를 다녀야 하나... 가끔 고민을 했었는데 이젠 고민이 필요 없어졌어요. 그냥 쓰면 되더라고요. 어차피 출간 목적도 없고 목마른 내게 물을 주는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요. 쓰다 보니 내게 행운이 왔어요. 너무도 좋은 분들과 이웃이 되는 만남의 축복이 있었어요. 이 분들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고백해야 할 한 가지가 있어요. 음...

지역 응급실에서 첫 번째 간성뇌증으로 치료받던 날 목사님께서 찾아오셨어요. 이미 발병 사실을 알게 된 때가 말기암이었으니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겠어요. 늘 나를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고 언니처럼 엄마처럼 아끼고 사랑하셨던 분이었으니. 내 상황을 목사님 자신의 상황처럼 여기고 저녁 금식을 한 달 넘게 하시며 새벽으로 밤으로 특별기도를 많이 해주셨어요.

응급실 앞으로 오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생명연장이 하나님 계획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계획을 세워놓으셨다고요. 목사님 당신 혼자만의 응답인가 싶어 함께 도고기도를 하시던 다른 두 분께도 기도부탁하셨다는데 동일한 응답을 받으셨다고 해요.

두 번째 인생. 성경에 나오는 룻처럼 보아스(유력자)를 만날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요. 당시 상황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서 목사님도 얘길 전하시면서 미안해하셨어요.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완치에 마음을 내려놓고 영혼구원에 집중을 하라는 말씀이셨겠지요. 그리고 그 계획대로 4개월의 투병이 끝났어요.


내 뜻과 달라도 선택해야 할 영적인 일들이 있어요. 내 상식과 소견을 넘어서는 믿음의 결단. 순종이고 복종이지요. 결국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게 순종이지요. 그러면 언젠가는 보아스를 만나게 되겠지요.

내게 어떤 소명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소명이 보아스와의 합력을 통해 이루어야 할 일이 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어요. 그때가 언제일지,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 질지 알 수 없어요.

혹은 단순히 그동안 수고했으니 남은 인생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한 번 살아보라는 보너스 계획일 수도 있고요.ㅎㅎ

어떤 계획을 이루실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지금 내가 할 일은 봉인을 잘하고 내 마음도 단단히 여미는 일이에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때 일을 추억하며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찬양을 들어도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어요.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모두를 위한 일이고 앞으로 이루실 계획을 준비하는 일이에요.


갑자기 등이 간지러워요. 아마도 날개가 나오려나 봐요. ㅎㅎ(천사날개는 아니고요), 내 안에 날개가 있는지 몰랐는데 알았으니 이제 날개를 펼 준비를 해야겠어요.


우리 세 식구는 보통의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보통의 날.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배웅과 마중을 하면서 모두 정해진 그 길로 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싶어요.

잘 지내요. 안녕!!



https://youtu.be/9aBsWKW2cSM?si=9Qm8NMdDLAjqEhCj



https://youtu.be/okBJGWGM9-U?si=e12re2dpv1KmRC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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