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격지심이 있는 소녀였다. 우리 반에 1등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 했다. 내가 1등일때는 전교 1등과.
'걔는 한 번에 할 텐데. 나는...'
나는 한 번에 이해하는 류의 학생은 아니었다. 미술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은 각각 나에게 와서 '혹시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물이 별로인.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많이 노력하는 편이었다. 내가 못하는 것에 집중하는.
그것이 어리석었다는 것은 대학입시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
그것을 못했던 나의 말로는 처참했다.
반면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잘하는 것에 제대로 집중 하는 사람이었다. 못하는 것은 쿨하게 포기했다.
"나는 원래 못해!"
*
자신의 특기에 있어서는 옹골차게, 앙팡지게 해내고는 했다. 그 중에 하나는 뜨개질이었다.
엄마는 정말 순식간에 무엇을 떠냈다. 내가 샤워하는 사이에 자투리 실로 목도리를 하나 떠서 그 날 나갈 때 그 목도리를 두르고 나간적도 있다.
코바늘 대바늘. 상관 없었다. 같은 클래스에서 같은 선생님에 같은 도안으로 같이 만들었는데도 엄마가 뜬 가방은 특별했다.
당대 유행하던 아크릴 수세미도 단순한 과일 모양이 아니었다. 무늬가 들어간 드레스 모양의 수세미. 엄마는 손쉽게 떠냈고, 나는 손 쉽게 들고 나가 선물했다.
"엄마가 뜨신거에요"
사람들은 엄마의 솜씨를 칭찬하며 고마워했다. 인사를 전할 떄 마다 엄마는 어꺠를 으쓱했다.
그래서 파킨슨 증후군으로 엄마의 글씨체가 무너지고, 뜨개질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엄마는 빨리 무너졌다.
병원에서는 점점 퇴화하는 기능을 조금이라도 잡아두기 위해서는 운동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필사 책과 뜨개질 거리를 사다드렸다. 엄마 대학 논문 주제였던 윤동주의 시가 적힌 필사용 책이었다. 엄마는 한 장도 쓰지 않고 집어던졌다. 자신의 망가진 글씨를 보기 싫다고 했다.
뜨개질도 그랬다. 엄마는 가까스로 컵받침 두 개를 떠놓고는 다시 바늘을 집어 던졌다. 엄마의 컵받침은 삐뚤빼둘한 모양으로 조악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나는 철저히 선택과 집중을 했다. 남들 다 따는 MOS자격증도 따지 않았다.
피포페인팅, 컬러링북? 절대.
남들 다 등록하는 헬스장도 안했다. 운동은 못하니까.
그래서 필사나 뜨개질이라는 '취미'는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
나는 엄마에게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가르치려면 어찌됐든 바늘을 잡아야만 하니까.
내가 못하거나 어렵거나. 결국에는 아무것도 안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
오늘 하루도 그랬다.
-이거는 대체 어떻게한거야?
-음? 나야 모르지.
엄마가 어이 없어 해도 웃음부터 나왔다.
-너는 파킨슨 있는 엄마보다도 못하냐.
-그러게 진짜. 나도 어이가 없다.
엄마가 바늘을 잡고 잘 돌아가지 않는 손을 돌려 한 코 한 코 떠내는 것이 기분이 좋다.
여전히 나보다 잘 하는 것이 기분이 좋다.
물론 나도 진지하게 배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 코를 지나지 못하고 "엄마 이거 왜 이래?" 라고 물으면 한숨을 쉬고 다 풀어내셨다.
오늘의 결과는 네 코.
그나마 엄마가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뜬 것이 전부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며칠이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건강했던 엄마가 5분만에 만들어 낼 것보다 훨씬 이상하겠지.
그래도 난 괜찮다.
뜨개질은 내가 잘해야할 무언가가 아니라서.
그냥 날 보고 웃으며 엄마가 한 코라도 더 떠내는 것이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