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송어 Jan 03. 2021

당신의 가정을 파괴시켜서 미안해

엄마에게 부치는 편지/독립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울며 물었다. 

정말 날 버려두고 갈 거냐고. 


4년 전과, 3년 전과, 2년 전과 같은 질문이었다. 

"날 버릴 거야?"


그러면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매년 점점 두터워졌으니까. 


아빠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아빠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다 나를 걱정했다. 


'집에서 독립해볼 생각은 해봤니?'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으로 와' 


나를 걱정하지 않은 사람은 당신과 당신의 아들뿐이었다. 

그리고 

나. 


그래서였다. 

더 이상 이렇게 나를 방치하는 것이 나에게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한 번에 한 명씩 구출하자."

서울에 완벽히 정착한 친구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고향에서 자기 엄마를 구해낼 준비를 끝내고도 자기 자매를 걱정하던 친구에게 했던 말이었다. 

나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나를 구해 내야 했다. 


당신이 마음에 걸렸다. 항상 당신이었다. 나를 다시 거기에 데려다 놓는 것은 항상 당신이었다. 


 

그래서 며칠 만에 당신을 위해, 오롯이 당신을 위해 그곳을 다시 방문했다. 

당신의 아들은 내게 실망했다며, 당분간 집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제깟 것이 뭐라고 누나한테 오라 가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드디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는 그런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었다. 





*



"정말로 어떻게 내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어" 

당신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랬다. 

솔직하게 말하면,

가진 거 없고 초라한 내가  싫어서 이상적인 가족만큼은 가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당신 부부에게 착한 자식만큼은 안겨 주고 싶었다. 


당신도 그렇게 쌓아온 것이 아닐까?

우리 중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당신과 나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겨우 만들어 놓은 이 하나를 내 손으로 깨부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당신의 남편을 내 아들처럼 살뜰히 보살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을 내 아들처럼 돌봤다. 

내가 가지고 싶던 이상적인 가정을 위해서. 


우리는 부당한 것이 없었고 갈등이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당신 남편의 심기를 살폈고, 

당신의 아들이 엇나갈까 두려워했다.


그랬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의 투정을 한 시간 정도 들어주면 

그게 정말 진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진실이 아니다,라고 싸워내는 과정이다. 


우울증이나 정신병에 유전적 요인이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나는 당장 정상인들에게로 뛰어들어가 내가 아직 괜찮은지 확인받아야 한다. 정말 천식 환자가 노즐 스프레이를 찾는 그런 갈급함이다. 

나의 노즐 스프레이가, 물 없이 삼켜낸 알약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뭐라고 말리셔?" 


어? 


그랬다. 당신은 한 번도 말린 적이 없었다. 

자식 앞에서 부모가 훈육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이 그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지금 까지 생각해왔다. 

그래서 물었다. 


"솔직히 엄마도 인정하지. 훈육도 뭣도 아니었잖아. 그냥 화풀이지. 

엄마 근데 나는 자식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참고 있어야 된다지만 엄마는 왜 그 말도 안 되는 것을 다 듣고 있어?" 


그렇게 묻는 내게 당신은 그랬다. 자기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서 별 생각이 없었다고. 


아. 나이브하다. 

당신은 내가 참 좋아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책임감 없이. 

내가 항상 선망하는 부잣집 딸 같은 순수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어. 나는 당신을 미워할 수 없어. 

무지는 절대 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무지할 기회를 빼앗은 당신의 남편이 너무 밉다. 

나도 당신처럼 무지할 수 있었을까? 


*


당신에게 내가 최근에 읽은 책 한 구절을 들려줬다. 








그 가족의 화목은 누군가를 짓눌러야만 유지된다. 억눌렀던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깨질 화목이라면 애초에 그건 가짜였던 것이다. 











당신에게 말했다. 


나오길 잘한 것 같다고, 이제 좀 행복 해지는 것 같다고. 

당신이 만들어 온 가정을 깨부숴서 미안하지만

엄마 가정 구성원인 내가 좀 행복해졌다고. 이제 평균이 맞아 간다고. 


*


당신은 이제 내가 오고 갈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가끔 영상통화를 걸고 일상을 나눈다. 


나도 이제 그곳에 있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두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밀히는, 그곳은 당신이 만들어낸 당신의 왕국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안전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