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 충돌
Appetizer_미국 그리고

by 꼬드kim



미국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패키지가 가져다준 도화선(2003)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패키지가 가져다준 도화선

행복을 느낄 때 그 무언가가 좋아지는 것 같다. 계획에 없던 켜켜이 쌓여있는 여행 사이의 사건들이 전해주는 감동들을 느낄 준비가 있어야 여행이 좋아지는 거 같다. 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처음 마주치게 되는 장거리의 비행시간부터 즐길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여행이라는 걸 다른 방향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등 떠밀려 본 사주쟁이 아저씨의 얘기론 내게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처럼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제가요?? 저 아닌데요.”

잘 모르겠다. 기나긴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고, 보름이 되기도 전에 집이 그립기도 하고. 한 달씩 여행을 하는 어린 배낭 여행자들을 보면 더없이 부럽기는 하지만, 과연 내게도 저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기에. 단지 며칠을 일상에서 떠나 오롯하게 나에게 집중하고 켜켜이 그 무언가 들을 채울 수 있고, 온전하게 목적지를 향해가면서 옆을 둘러보는 여유까지가 내가 떠나고 여행하고 싶어 나는 욕구가 아닐까. 더불어 브레이크가 없어 멈추지 못하는 일상의 소소한 걱정과 고민들을 스펙 태클한 여행 모험과 부딪히면 잠시 잊게 돼서 그런 걸 지도.

어쩌면 떠나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그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란 건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건 아닐 수 있으니 더 그리워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이들에겐 망설임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도화선이 필요한듯하다. 친구들 사이에선 내가 그 도화선이 가끔 되어준다. 일명 꼬드kim

내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오래전 친구 집을 가기 위한 여행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 그 당시 비자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그곳. 미국 비자 거절 사유(여자, 나이 많고, 싱글)의 대부분이 나에게 해당되었다. 친구는 보고 싶고, 비자받을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도전을 했다. 오래 기다린 대사관에서의 인터뷰는 영어로만 진행되었는지, 내가 한국어로 답하고 한국 통역자가 통역을 해주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긴장된 몇 분의 시간으로 지나가고, 다행히 비자가 발급되었다. 비자가 생겼으니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여행 준비 시간도 짧은 데다가 바쁜 친구가 여행을 시켜주기엔 좀 무리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엔 운전면허도 없기에 급한 대로 신문 한 귀퉁이에 난 광고를 대충 읽고 어설프게 신청한 패키지 상품은 내게 배낭여행으로의 꿈을 꾸는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패키지라 해도 혼자는 안 된다고 하신 부모님을 설득하고자 친구 동생과의 동행 패키지로 바꾸고 그래도 걱정이 되시는지 공항까지 친구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까지 배웅 나오시는 어마어마한 일이 되어버렸다. 잘 다녀오라고 계속 이어지는 당부를 뒤로한 채 비행기를 탔을 때까지는 몰랐다.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을.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밟고 가이드 아저씨를 만나 관광버스를 타려는 찰나에 여행사 사장님이 나타나 동생과 나는 여행할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쳐다보는 내게 사장님은 우리의 여행비가 송금이 안되었다고 말해준다. 이건 무슨 뜻이지?? 공중전화로 가서 시차도 안 맞는 그 시각에 공항까지 픽업 나왔던 여행사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확인해보겠다고 하는데 서울은 설날이라 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태워서 여행을 시작하자 하시고 사장님은 안된다 하시고.. 나 어찌해야 하나 고민되고... 다행히 가이드 아저씨의 설득이 받아들여져서 여행을 시작했다. 저녁때쯤에야 서울에서 송금해야 하는 여행사 아주머니의 실수로 다른 여행사로 돈이 송금된 것을 알게 되었다. 카드 한 장과 약간의 여윳돈만 챙겨 온 내게 아주머니는 스릴을 안겨줬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을 다 따라가지 않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친구 집인 피닉스로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달라고 얘기해 뒀었는데 정작 이 패키지 무리와 헤어져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들어가 보니 내 비행기 티켓은 LA에서 피닉스 티켓이라고 한다. 데스크에서 한 30분을 실랑이 벌였던가. 공항 약어들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나의 탓인가 하는 생각과 아무래도 서울 가서 청구해야 하나보다 하는 마음을 먹으며 추가 요금을 결제하려 카드를 내밀었지만 카드가 안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결제를 시도해보지만 결국은 얼마 안 남은 현금으로 결제를 한다. 여행이 자꾸만 삐그덕거림에 나만 믿고 따라온 친구 동생한테도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패키지는 나를 맡겨버리는 건데 이건 뭐인 걸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카드가 안 되길래 확인해봤더니 나의 여행 비용을 이 아주머니가 중복 결제를 해서 카드 한도에 걸렸던 거다. 다른 결제비들도 많았던 상황인지라...

결국 아주머니에게 추가 비행기 비용 청구와 더불어 카드 결제 취소를 요청했다. 빨리 취소를 안 해주려고 해서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편하게 가고자 한 여행이 타인의 손에 의해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되어버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잊혔질 즈음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에 호주와 뉴질랜드 패키지에 몸을 맡겼는데, 어딘가에 콱 묶이는 거 같아 답답했다. 편안한 잠자리와 버스가 데려다주는 관광지는 좋았지만 의무적인 쇼핑 시간, 선택할 수 없는 음식, 그리고 동일한 추억 공유로 인해 패키지여행은 관광이라는 단어로 내게 남겨져버렸다. 이러다 보니 하나하나 준비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혼자 짐 싸서 떠나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나자, 무작정 떠나야 할 듯한 기분까지 동반 상승한다. 그러나 내 열망은 그다지 강렬하지 못한 지 여행 준비는 패키지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느슨하다. 이로 인해 사고가 늘 도사리고 있지만 그게 나만의 트렌디한 여행이 되어버린다. 지독한 길치 더하기 누군가가 어딜 다녀왔냐고 물어보면 나라 이름 하나만 덜렁 말할 정도의 부실한 기억력 덕분에 뭉뚱그려지는 추억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좋다. 지리적 공간이 다른 그곳에 내가 켜켜이 남겨둔 추억은 지역 이름은 잊어버렸을지라도 늘 그곳을 떠오르게 하니...



대륙 진입 준비 모드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엔 느낌이 다를 거기에 어떤 여행이 본인에게 맞는지 찾아두는 것이 여행하기에 좋을듯하다. 물론 준비하지 못하고 간다 해서 여행이 주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충돌을 즐기고 싶지 않다면 아무래도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대신 켜켜이 들어가지는 추억이 패키지여행만큼만 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미국을 다녀온 뒤, 혼자 떠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부터 점검을 시작했다. 안동 하회 마을.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라 날씨도 겁이 좀 났고, 생각과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 혼자 떠나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인터넷 서핑도 잘 못하면서 숙소 찾기부터 시작했다. 오래전이라 민박이 많지 않던 시절 어쩌다 고른 그 집은 꽤 오래된 고택으로 참 좋은 느낌을 줬다. 아랫목 한켠에서 오는 그 땃땃함으로 몸이 노곤 해질 즈음에 내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저씨가 시켜준 나름 안동 패키지 상품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자신감에 해외여행을 가보고자 짐을 꾸렸다. 추억은 내가 준비하는 만큼 남는 거지만 늘 충동적으로 떠나왔던 터라 생각보다 준비가 쉽지 않다. 일본은 치안이 안전한 편이지만 내겐 언어장벽이 컸다. 예를 들면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들어갈 동안 기차에서 다음 역은 **역이란 소리를 들어도 역사에 쓰여 있는 가타카나와 빨리 매치를 할 수 없으니 어디서 내려야 할지가 막막했다. 히라가나를 외워간들 아무 단어도 안 떠오르고 물론 외국인에 대한 친절도가 꽤 높아서 여행을 다니는데 불편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본인들이 영어 못하신다고 문전박대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그건 그분의 성향이라 판단해야 할 듯하다. 무사히 일본까지 배낭으로 다녀오니 대륙을 들어가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 졌다.


대륙 진입

2월의 어느 날.

겨울이 길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들 한다. 햇볕을 못 봐서 그런 거라 하던데. 나 또한 예외 없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맘 준비는 벌써 했는데(마음은 비행기 타고 어딘가로 쓩쓩~~) 작년부터 작정해 두었던 일을 아무래도 저질러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 더 이상 먹으면 왠지 유럽이란 대륙이 쉽게 받아들여질 거 같지 않은 불안감도 엄습해오고. 그러고 있을 즈음, 여행사에서 저가 항공권 세일을 알려왔다.. 나한테 어서어서 떠나라 하듯이 말이다. 망설여졌다. 저가 항공권(80만 원)인 만큼 환불이 안 되는 항공권을 가지고 있다가 만약 환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만약이란 문자가 허공을 떠돌아다닌다. 의외로 우유부단한 난 잠깐 눈을 감았다. 카드결제가 완성되는 화면이 나타나고, 한동안 걱정과 여행에 대한 상상을 잠시 휴식기 모드로 접어둔다.


3월의 끝자락

마감 무렵이라 정신없이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의 술렁거림에 일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인사발령이 발표되었다. 만약을 염려하던 그 일이 닥쳐왔다. 영업팀에서 재무팀으로 이동.

여행을 접어야 하는가 하는 낙담한 마음이 재무 쪽 일의 궁금증을 앞질러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음 3월까지 못쓴 휴가 끌어다가 겨울에 떠날걸 하는 후회가 계속해서 머리 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여행이란 것이 워낙에 중독성이 심한 것이라 쉽게 포기 또한 안된다.

상황을 미리 얘기하지 않음 시도조차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할 거 같아서 새로운 팀의 상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봤다. 처음 오는 자리에 여행 가는 것부터 이야기한다는 게 내심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본 뒤에 취소해도 늦지 않으리란 생각에. 다행히도 잘 다녀오라고 얘기해 준다. 새로운 일을 허둥지둥 배워가고 있을 무렵, 봄이 온다.


여행 출발 며칠 전 그리고

4월에 대한 기억은 없다. 가기 전에 미술작품들 본다고 예술의 전당에 들렀던 하루를 빼면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뭘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맘이 급해왔다. 여행책자도 못 읽었고, 일도 해야 하고 짐도 싸야 하고.. 긴 시간 공백을 위해 업무 매뉴얼도 만들어야 하고.. 체력에도 안 되는 일들을 계속 저질러가고 있다. 머리가 빙 도는 느낌과 함께 결국 출발 하루 전에는 코피까지 툭.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음 장학금 탔을 텐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짐을 못 꾸린 현재 새벽 2시.

공항 가는 길. 유난히 따사롭다. 예전 패키지여행 같으면 캐리어 꺽꺽 거리며 끌고 나갈 텐데 요번만큼은 배낭으로 바꾸었다. 영어 선생님인 JOEL이 빌려준 가방. 그의 키가 190㎝이 넘는 상황이라서 그런 걸까? 가방을 메어보니 한참이나 아래로 쑥하고 빠지는 느낌이 온다. 허리에 걸쳐져야 하는 안전끈이 아래로 내려가버리는 상황. 그래도 큰 가방인 만큼 난 담고 싶은 만큼 모든 걸 다 담아보는 시도를 한다. 자고로 여행은 배낭을 메고 떠나야 한다는 JOEL 말을 200%쯤 담아서 ^^. 여행에 가져가려는 기대까지도…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무척이나 졸리고 피곤한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 아직 서울에서의 못 끝낸 일들을 문자로 수없이 두들기고 있어야 해서 그랬을까?

1시간쯤 후 도착. 미리 발권을 하려 섰건만.


동행자

누군가가 그랬다.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면 여자들의 대부분은 누구랑?이라 묻고, 남자들은 어디로?라는 질문을 먼저 한다고 한다. 그만큼 동행자는 여자 여행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 수 있는데 나는 여행 체질이 아니라서(15시간 정도의 이동시간 중 가장 많이 자야 2시간이고, 음식이나 물 바꿔먹음 여지없이 탈이 나는 속과 얼굴. 잠자리 바뀌면 5시간 이상 못 자는 수면 상태. 음식이 안 맞으면 제대로 말라가는 상황) 나하고의 동행은 이런 걸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는 이렇게 긴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 떠나보기 전까지는 몰랐으니 동행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인내심이 필요했다. 많이 다녔다고 자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떠나고 싶어 하는 고마운 지인들이 있다.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다 제각각 나를 판단해서 선택한다. 지도를 잘 볼 거 같아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거 같아 편할 거 같아서, 배려를 잘 하는 거 같아서… 정작 나는 심각한 길치에다가 물어볼 때도 항상 고민하 다물어 보고 이러는 편이라서.. 어차피 혼자 갈 수 있는지를 테스트도 해봤기에 살짝 운만 띄웠다. ”같이 떠나실 분?”

하나. 서른 넘도록 세계 여행을 못해 봤다고 손을 들었다.. 성격이 많이 다른데 괜찮을까? 둘. 지난 일본 여행 때 못 도와준 지도 보기를 제대로 잘하겠다며 파리의 에펠탑을 이번에도 같이 보고 싶다고. 이번엔 길치가 안되길 기도해볼까?

셋이 가려했던 여행은 한 명이 부상을 당해 둘이 떠나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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