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느낌(2005)
경유 대기 시간 40분과 2시간을 놓고 고민하던 중 그래도 안전하다 싶은 2시간짜리를 골라놨던 터라 도착시간이 늦을 거라서 민박집에 픽업을 요청해놨었다. 그런데 독일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그 공항에 비행기가 한참을 지나도 나타날 기미를 안 보인다. 잠을 못 자서 옆으로 몸이 휘어지고 있다. 2시간 40여분의 대기시간 끝에 나타난 비행기. 비행시간 1시간 40여 분만의 파리 도착. 결국 밤 11시가 넘어간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유럽인들이 누리는 혜택이 참 부러웠다. 가까운 나라로의 여행은 큰 맘먹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도 잠시 픽업을 요쳥해 두었던 만큼 맘이 급해졌다. 혹시나 우리를 버리고 그냥 가버리실까봐 서둘러 짐 찾아 나가면서 입국심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반겨주는 파리의 출입국 직원이 없다. 모두 여행객들뿐. 입국심사대가 보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후다닥 나와버려서. 그냥 출구로 나와져 버린 듯하다. 기다리고 있던 민박집 분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한참이나 어두운 파리 하늘은 12시를 향해간다. 몸은 눅진해져 있어서 씻고 싶지만, 규정이 지난 시간이라 간단히 세수만 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어본다. 하루가 뒤바뀌어버려서일까. 먼저 온 같은 방 다른 룸메이트들이 곤히 잠들어있어 뒤척일 수도 없고, 결국엔 그나마 부스럭거려도 괜찮은 화장실에서 파리의 하루를 시작했다. 잡지책 읽으며….
침대엔 1시간쯤 눈감고 있었을까. 먼저 자고 있었던 같은 방 룸메이트가 아침 먹자며 깨운다. 그녀의 긴 여행 얘기 듣고 싶지만 루브르 갈 거면 어서 서두르라는 민박집 아주머니 말씀에 서둘러 챙겨 먹고 파리에서의 아침을 시작해본다.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춥고 비까지 내린다. 민박집에 놔두고 온 우산을 대신해 후드모자를 뒤집어쓰고 추위를 달래 보지만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의 겨울 같은 칼바람은 몸속으로 팍팍 베어 든다. 5월인데도 이렇게 추운 건 타지라서 그런 걸까. 오래도록 기다려 들어간 루브르.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물론 타국의 문화재들이 많으니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벼르고 있던 미술품들이기에 하나하나 꼼꼼히 보려 해보건만, 안타깝게도 프랑스인들은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는 거 같다. 아님 자부심이 너무 강하던지. 모든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태그들은 불어 표시 말고는 없다. 유추해보기엔 불어는 나에게 너무 생소하다. 하는 수없이 그림들만 눈에 가득 새겨둔다. 좋아하는 르느와르 작품과 드가 작품 쪽에는 오래도록 서 있어보았다. 잠깐 점심을 먹기 위해 박물관을 나갔는데. 우리는 음식점을 챙겨두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모험심 발동하여 망설이던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프랑스에서 먹는 스파게티의 맛- 서울의 소스 많은 스파게티가 그리워진다 벌써. 다시 루브르로 돌아와 오후까지 둘러보건만 역부족이라서 욕심을 버리고 루브르를 나왔다. Summer time 중이라 아직 오후 같은 느낌이다. 생제르맹 거리. 뤽상부르 공원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데, 프랑스 가족(?)이 지나간다.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기 시작한 나. 셋 중에 하나는 영어가 가능하겠지라는 핀트는? 완전히 빗나갔다. 모두들 불어로만.. 뭐라 하시는데 절망이다. Go straight? Or turn right? or… um… 나의 이런 짧은 영어 물음에도 절대 영어 단어 하나 나오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그냥 포기하고 보내고 나니 허탈하다. 그냥 돌아서서 민박집으로 갈까? 관람한다고 에너지도 많이 썼는데..
아니지! 한번 더 하자는 나의 결심에 큰 briefcase를 들고 바삐 걸어가는 외국인(아마도 프랑스인이겠지)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뛰어간다.(다리 아프다는 거 정말 이었을까?) 나의 어설픈 영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해주는 그분은(프랑스인중에도 이리 영어를 잘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나의 여행 책자를 봤나 보다. 한국에서 왔냐는 그분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시냐고 했더니.. 몇 번 출장 가봐서 한글을 읽을 주는 몰라도 알긴 한단다. 바로 지도책 들이밀었다. 한참 고민하는 그분. 여기서 거기까지는 걷기는 먼 거리이므로 괜찮다면 자신의 차로 거기까지 데려다주겠단다. 고민하는 나와 오빠. 오빠보다는 용감한 나. ㅎ 난 별 망설임 없이 오케이를 한다. 설마 둘인데 뭐 어쩔라고 이런 맘? 주차장 가는 사이 근사해 보이는 스포츠카에 아저씨가 리모컨을 눌러대셔서 순간 그 차인 줄 알고 잠시 환상에 빠졌지만, 그건 그 아저씨만의 장난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차를 얻어 타서 안을 살펴보니, 와우~ 스틱이다. 물어봤더니 유럽인들은 스틱을 좋아한단다. 한국인들은 오토를 좋아한다면서요?를 물어보는데.. 음 취향 차이 아닐까? 회의하러 가야 해서 바쁠 텐데도 여러 가지 안내를 해준다. 책에 나와있지 않은 명소들을… 아쉬운 마음에 사진 한 장을 요청해본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나의 부탁에 응해주신다. 파리 여행 내내 본 외국인 중에 가장 친절하고 씨익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뤽상부르 공원을 들러 가까이에 있는 소르본 대학을 찾아갔다. 난 유난히도 대학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경비원 아저씨의 허락이 안 떨어진다. 나중에 민박집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학부모도 쉽게 학교라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단다. ㅠ.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노트르담 사원을 갔는데 5분 늦어 관람시간을 놓쳤다. 절대 안 들여보내 주는 그들. 오늘 벌써 두 개나 허탕을 치네. 대신 꽁고르드 광장과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보니 벌써 밤 11시다. 내일을 위해서 자야겠지?
화려한 오르세
일요일이 지나면 로마로 넘어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 티켓 이름 수정을 못했다. 부리나케 챙겨주는 아침 먹고, 아주머니는 불어를 못하는 나를 대신하여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주셨다. 갑자기 나를 부른다. ‘잠깐 전화받아봐요. 영어로 얘기를 해주네..’ 읔. 사실 난 전화영어는 쥐약이다.. um을 몇 번이나 해야 할까 전화를 끊을 때까지를 고민하면서 갔다.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전화 속의 그는 여전히 불어로 이야기한다. 냉큼 아주머니 바꿔주고 아주머니는 유창한 불어로 비행기 티켓 바꿔주셨다. 휴~벌써 오전이 다 지나가네.. 유럽은 영어만으로 생활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오늘은 더 추울 거라는 주인아주머니의 권유로 아주머니의 옷을 나와 오빠는 빌려 입었다.. 뭔가가 웃겨 보인다. 작은 아주머니의 사이즈가 우리에게 맞을 리 없지만 뭐 쇼핑할 시간보다는 여행을 즐겨야 할 시간이고 어차피 난 패션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라서. 걍 패쑤.
오르세 기다리는내내 추위에 떨었다. 그렇게 추웠냐고 묻는다면 난 무스탕 입은 여인을 봤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때 난 무스탕 입은 여인을 얼마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반대편 어떤 여인은 민소매를 입고 서있다. 햇볕에. 햇볕이 여름인 건가, 그늘이 겨울인 건가.
누가 보면 내가 미술학도인 줄 알겠지만 그림은 그릴 줄도 볼 줄도 모르지만 좋은 그림을 바라보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거 같아서 나름의 여유는 미술관에서 느껴본다. 루브르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좀 더 현대적이라고 해야 할까. 오르세 특유함이 또한 맘에 든다. 고흐, 마네, 모네의 작품들. 오후까지의 관람 후에 방돔 광장으로 향해갔다. 저녁이 되어오니 그렇게나 많은 옷(3겹)을 입고도 춥다. 눈에 띄는 베네통 매장. 가격 망설일 거 없이 카디건 하나 샀다. 오빠 말로는 서울보다 싼 거 같다 하는데 서울 옷값 잘 모르는 난 피부로 느껴지지 않고 일단 샀다는데 안심이 된다.
어라~ 7시인데 매장들 문 다 닫는다. 알고 보니 내가 그 매장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나중에 민박집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일요일은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단다. 몇 개의 매장들만 빼고. 대체 파리 사람들은 쇼핑을 언제 하는 걸까?
많은 것을 남겨둬야 하는 날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생각했는데 (대략 9시부터 밤 11시), 그.래.도 여전히 돌아보지 못한 게 너무도 많았다. 베르사유 궁전. 몽마르뜨 언덕과 사크레꿰르 사원, 페르라세르 묘지, 개선문, 에펠탑의 야경, 유람선.
일단 승전 60주년 기념전부터 보기 위해 파리에서 처음으로 전철을 탔다. 전철의 모양 특이하다. 한국의 기차처럼 생긴 형태에 접이식 의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이 탈 수 없지만 많이 탔을 경우에는 모두 서서 갈 수 있게 의자가 접힌다. 강요는 없지만 자유의지(?)에 의해서 모두 서서 가는 분위기. 정오를 향해가는데도 뭘 하려는 기미가 안 보인다. 멀리 개선문만 보이고..어어~.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하나보다 했는데 기마병들의 행진인듯한 행사만 있다.. 1시를 넘어가는 시점.. 이러다간 정말 다 아무것도 못 본채 그냥 로마로 가야 할 거 같은 불안감에 그 자리를 돌아섰다. 우선은 몽마르뜨 언덕을 향해갔다. 공사 중이라서 생각보다 별로다. 왜 이렇게 공사 중인 곳이 많은 건지 제대로 건물이 보고 싶어 진다
한참 떨어진 페르라세즈 묘지를 갔다. 쇼핑의 무덤도 보고,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의 납골묘도 보고 오빠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묘지도 둘러본다.. 으슥하다기보담 공원 같은 분위기다. 이젠 베르사유 궁전만 보면 되는데.. 읔.. 문제 발생..
많이 힘들었나 보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진다. 어지럽고 호흡이 제대로 안 쉬어져서 결국엔 페르 라세즈에서 1시간을 더 지체해버렸다. 베르사유 궁전은 보고 싶었는데 별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 품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휴식이 좀 더 필요할 거 같았다. 느닷없이 스타벅스 커피가 먹고 싶어 졌다. 이상하게도(아니지 정상인 걸 거야) 스타벅스가 안 보인다 파리에서는 하나밖에 없단다. 기어이 찾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먹고 나면 아픈 게 나을 거 같은 꾀병인가? 또 1시간여를 헤맨다. 프랑스인들도 잘 모른다. 스타벅스를 말이다. 젊은이들조차. 오빠는 나보고 information girl이라 불렀다. 하도 현지인들한테 질문을 많이 해댄다 해서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거보다 빠른 게 없는데. 잠깐 신호등에 걸려 자전거에 앉아있는 경찰 아저씨한테 물어본다. 영어 좀 하시면 좋으련만 그분 역시 옹숑숑. ㅠㅠ. 하는 수없이 대신 약도를 그려달라 했다..
한참을 가서야 드.디.어 스타벅스 보인다. 사이즈 한국에서 시켜먹어 본 적도 없는 무지막지한 grande size 주문했다. 커피를 들고 유람선을 타러 간다. 휴식이 좀 더 필요할 거 같아 말이다.. 1년 맞을 바람을 파리에서의 며칠 동안 다 맞아서인지 눈도 뻑뻑하고(모래바람) 다리도 후들후들거려지지만 한국어로 가이드를 해주는 유람선을 타니 기분이 묘하다. 얼마나 탔을까. 여행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작지만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파리.. 점점 이곳이 좋아져 오고 있다. 낼 아침이면 떠나야 하는데 아쉽다. 취소할 수 있는 비행기 티켓도 아니고. 높지 않은 건물들이 너무 좋다. 하늘과의 사이를 가늠해 볼 수 있어 좋고, 푸르디푸른 하늘을 맘껏 올려다볼 수 있어 좋고. 마지막으로 개선문에서 야경을 보니, 제대로 정리가 된 방사형 도시이다 파리는.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가야 하지만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을 거 같다. 파리와의 인연. 아~ 그러고 보니 JOEL이 알려준 친구한테 연락하는 걸 깜빡했다. 파리 구경시켜준다 했는데… 아무래도 파리를 다시. 와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