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왓장? (2005)
새벽 1시, 2시, 2시 20분. 3시. 4시. 4시 30분. 5시. 월요일 오전에 생체시계가 깨운 시각들이다.
아침 9시 비행기인데, 집에서 좀 멀다 보니 서둘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먼저 반응을 해온 거겠지. 저렇게나 많이 깨었으니 오랜 시간 누워있었어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서둘러 도착한 부베이 공항. 공항 치고는 좀 허름하다 못해. 우리나라 고속터미널보다 더 열악하다. 너무 깔꼼하고 편안한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저, 로마 가는 비행기 타야 하는데요’하고 물어보는데 관련 직원이 모르겠단다. 그럼 대체 누가 아는 걸까? 나중에 알고 보니 정기적인 시간에 변경되는 창구를 모니터가 보여준다.
얼마가 지났을까 로마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얼핏 집 지붕들이 보이는데 왠지 한국의 기왓장 모양같다. 저가 비행기인 만큼 떼르미니 기차역까지 다시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민박집 전화를 거니 픽업하러 나오셨다. 서둘러 짐 풀어두고 나갈 채비를 했다. 뭐부터 봐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집 근처부터 둘러보기 했다. 콜로세움,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성당 그리고 여러 곳에 퍼져 있던 정부기관들… 잠깐 쉬기 위해 커피 한잔. 이번 여행에서는 아직 제대로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건만 하루에 한잔은 꼭 커피를 사 먹게 된다. 커피 중독자들 같다. ㅎ 트레비 분수 근처였는데 할아버지가 내다 주시는 커피가 지금까지의 커피와는 달리 제대로 된 카푸치노다… 사실 난 모카가 먹고 싶었지만 이 동네(유럽)는 그런 거 안 파는 모양이다… 달짝지근한 크림 얹은 커피가 먹고 싶단 말이지… 한 박자 쉬었겠다, 다음 목적지인 트레비 분수를 찾았다.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인파다.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수없이 빌었다. 다른 이들은 로마를 다시 오게 해달라고 빈다던데. 나는 시집 보내주세요를 빌었다. 다른 소원이 제발 1위를 쟁탈할 날이 오길 빌기도 하고. 한참 소원을 분수에 던져 넣은 후 트레비 분수 앞은 아이스크림도 유명하다고 해서 사 먹을까 싶어, 아이스크림집에 들어갔는데, 아저씨의 빨리빨리 주문하라는 한국말을 듣다가 놀라 맛보라고 건네주는 아이스크림 떨어뜨릴뻔했다. 한국인 정말 많이 다녀가나 보다. 진실의 입에 가겠다고 내려간 거 같은데 나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외국인이 있다. 나도 외국인인데.. 알리 있나~ 분명히 안 섞어지는 이 동양인의 생김새가 여행을 방해할 때가 있는데 현지인처럼 보였던 것일까. 팔짱 끼고 있던 현지인으로 보이는 다른 이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어디란다.. 그래서 대충 알려주고 현지인의 얘기대로라면 잘못 들어온 길인 이곳을 나가 다시 방향을 틀었는데. 아차차~그 현지인이 잘못 알려준 거다.. 그럼 왜 그는 씨익하고 웃었던가. 결국 진실의 입과는 한참 멀어지고 점차 집이랑 가까워진다. 내가 잘못 알려준 그 외국인은 잘 찾아가고 있는 걸까? 내심 걱정됨과 동시에 '난 진실을 알지 못하고 로마를 떠나야 하나 보다'를 생각하게 된다.
바티칸의 미아
처음의 여행의 계획은 이탈리아의 로마를 보려고 시도한 거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꼭 로마를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헌대 로마에 내린 이후, 왜 와야 한다고 했는지 이유를 까먹었다. 기대만큼의 실망이 컸던 걸까? 그래서 바티칸만큼은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며 40번 버스를 탔다. 트램이라는 두 개짜리 버스도 북적인다.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그 말이 아침부터 긴장케 만든다. 버스에 내려 많은 인파 속에 잠깐 배터리를 교환하는 사이 오빠가 사라졌다. 인파에 휩쓸려버렸나. 한참을 딱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나름 재미난다. 나의 걸음속도에 맞춰 이것저것 둘러보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하고. 모험이지만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나의 카메라를 맡겨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인파에 휩쓸려 피에뜨로 성당 앞까지 와버렸다. 힐끔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향해 hello로 인사하는 직원 할아버지. 유료라서 들어가기를 망설였건만(책도 없고… 여기까지 들어가 버리면 오빠를 정말 못 만날 거 같은 기분) 어서 들어오라는 눈치다. 학생이냐는 질문에 잠깐 고민. 어차피 들통날 거기에 직장인이라 하면서 씩 웃었다.(실은 깎아주세욤. 이 표시였을까?-가끔은 나도 나 자신의 속마음을 모른다) 보조개가 이쁘단다. 엥? 한국말을 어떻게 아시는 걸까? 조금 안다하시네..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디오 가이드 챙겨 들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한참을 둘러보고 있는데 뭐라 하면서 누가 지나간다. 누굴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좀 전의 그 할아버지의 얼굴을 그새 까먹은 거다) 보조개 이야기를 하실 때야 기억났다.. 그러더니 점심시간이라서 시간이 있으니 본격적으로 가이드를 해 주신단다(난 절대 부탁하지 않았다 ㅎ) 나의 예쁜 보조개 전설(?)까지 곁들여가면서(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할아버지 나라에는 아가가 보조개를 가지고 태어나면 천사가 왔다고 생각한단다) 말이다. 믿을 수 없다고 했더니만 조각상 중에 보조개가 있는 천사 조각상을 보여주신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라서 증거는 내밀수가 없다. ㅠ.ㅠ 그냥 나 혼자 믿을 수밖에. ㅎ
레이저 빔까지 쏘면서 일반인은 들을 수 없는 성인들의 치아와 손가락(쩜 많이 슝했다)에 관련된 설명과 더불어 나머지 유물들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오후가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밋밋했을 나의 여행이 조금은 채워지는 듯하다. 또한 성 안젤로 성당까지 들어서서 여러 곳을 둘러보니 로마도 나름의 묘미가 있는 거 같다.
어느새 걱정도 밀려온다. 집에 어떻게 찾아가지? 오빠만 믿고 나온 거라 내게는 지도 한 장도 없다. 걸어가는 방법도 모르고. 하는 수 없이 인포에 들러 지도를 얻고 탔던 반대방향의 버스 정류장을 향해갔다. 돈만 잡아먹고 표를 내놓지 않는 돈 잡아먹는 기계들(이쪽 나라들 기계는 워낙에 낙후돼서 웬만해선 동전 먹는 게 일쑤인 거 같다.)한테서 버스표 사기 위해 헤매는 나. 너무 지쳐버렸던 걸까? 버스를 타자마자 꾸벅꾸벅 존다. 소매치기 조심하랬는데……………
그래도 아직은 감각이 다 죽지는 않았나 보다. 집을 헤매지 않고 찾아왔다. 오빠도 한참을 나 찾기에 헤매다 포기하고 집에 왔단다. 혼자만 재미난 구경을 해서 많이 미안해진다. 저녁 먹고 야경 보러 나간다. 그거에 걸쳐지는 한잔의 술이 아니라 한잔의 커피.
친구의 집으로
아침에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피렌체 친구가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단다. 짐을 맡기고 찬찬히 여행하란다. 잘 못 찾아올 수도 있으니 택시를 타라는 어머님. 거리가 20여 분도 안되는데 10유로가 넘어간다. 교통비 비싼 나라다.
어머님 말씀이 피렌체는 분당만한 도시이니 버스를 안타도 돌아다닐 수 있을 거란다. 두오모, 지오또의 종탑 그리고, 또 미켈란젤로 미술관. 나와서 보는 거리거리가 깨끗한 건 아니지만 아름답다. 신기하게도 쇼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옷가게에 걸려있는 옷들이 참 많이 이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맨날 먹는 파니니, 피자, 햄버거에 길들여져 가고 있나 보다. 맛있는 맛집을 찾기 보담 그냥 요기를 때우는 식이 되어버린다.. 왠지 나는 남자가 되어간다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졌다. 그런 맘을 알았을까? 일 끝내고 들어온 산영씨가 술 한잔 하러 가잔다(사실. 나의 친구는 아니고 오빠의 후배다) 술 못하는 걸 몰랐으니 권했겠지. 이런 문구 싫지만(그는 여자다) 스틱 운전에 정말 능했다. 핸들을 휙휙 돌려가며 식당에 전화까지 하는 운전 솜씨.. 그녀가 내심 부러워졌다. 같은 여자인데. 왜 나는 운전을 못하는 건지!
그녀가 데려간 곳은 정말 멋진 와인바였다. 다른 장식 없이 술병의 진열만으로 벽면이 꽉 차 버리는 그 집.
와인이 조금 상한 거 같다고 친구가 말하니 바꿔다 주기까지 한다. 술과 오가는 이야기 속에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새벽 1시쯤 문 닫아야 한다는 술집 아저씨의 이야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꼬질한 채로 나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정말 집같이 편하게 잘 수 있을 거 같다.
물의 도시
새벽녘인데 일어나라고 산영씨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친구 말로는 내일 기차가 파업이라서 오늘 베네치아를 가야 할 거 같단다. 오늘은 느긋하게 쉬려 했는데 그럴 수 없을 듯하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를 귀 쫑긋하게 세워두고 기차 밖을 구경한다.
베네치아에 내리니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게 비둘기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 한국보다 더 심하다. 얼굴을 때리고 날아가는 비둘기가 정말 무섭다. 무라노 글라스와 싼 마르코 광장을 보기 위해 골목골목을 부지런한 걸음으로 걷는다. 무라노 글라스 유리공예들이 너무 예뻐 한참을 넋 놓고 걷고 있다. 맘 같아서는 다 사들고 가고 싶지만 운반도 어렵고 뭐니 뭐니 해도 가격이 비싸서 눈에 그릇들을 찰칵찰칵. 수상버스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다. 베네치아는 골목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그들만의 미로처럼 예쁘다.
조금 아쉽기도 하고 휴식차 카페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으악! 둘이 합해 20유로다. 커피 두 잔이.. 그래서 팁 없이 20유로만 얹어두고 나왔다..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우리를 위해 산영씨는 여기저기 예약전화를 해보건만 밤 9시를 넘어서는 시간에도 자리가 없단다.. 굉장히 늦은 식사시간인데..
간신히 30여분 기다려서 진짜 이태리식 스파게티와 치즈들을 먹어본다.. 기나긴 수다 속에 오늘도 새벽 1시를 넘어간다
쇼핑 관광객입니다
기차가 파업이라고 해서 피사를 갈 수 없게 되자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쇼핑에 나섰다.
아울렛 매장으로 출발~
마지막 배차 시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버스를 탔다. 아주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서 여러 매장을 둘러본 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어슬렁거리며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막차가 떠났다고 대화하는 한국인 여행 무리의 이야기가 들린다.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보다고 오빠랑 의논하는 사이 다행히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간다. 중간에 갈아타면 피렌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오빠가 아이디어를 주고 우리는 그 버스에 탑승한다. 휴~ 다행이다. 진짜 지쳐있었는지 버스에 내려 슈퍼마켓이 보이자마자 과일이 먹고 싶다는 갈망에 들어갔는데 그동안 사 먹은 물은 물이 아니라 금이었다. 슈퍼마켓의 물은 엄청 저렴하네. ㅠ.ㅠ 그 후론 반드시 근처 슈퍼를 먼저 들러 장을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포도에, 사과며 과자까지. 물은 1,5리터짜리로 두 개나 산다. 사재기의 하루. 고생했다는 우리를 위해 산영씨가 친구들과 놀자며 나가자 한다. 산영씨 덕분에 유럽 생활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구찌에서 일하는 산영씨를 포함해 모두 명품회사의 MD 아니면 디자이너였다. (구찌, 푸찌, 펜디, 스와로프스키) 누구는 불어로 또 누구는 우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외국어인 영어로, 통역해주느라 한국어를 말하는 산영씨도 있고. 토박이 이태리어도 들리고. 아.. 어지럽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니 여기(호텔 테라스였음)가 밖인데 어디 밖으로? 하며 농담들을 건네 온다.
베키오 다리와 궁전 아직 못 본 것이 많았다. 터벅터벅 피렌체의 밤거리를 걷는다. 한참 후. 그녀도 친구들과의 아쉬움을 다음으로 미루고 저녁 먹으러 나왔다. 밤 12시다. 12시에 무얼 먹는다는 건 규칙적인 한국 삶에선 생각도 못해봤던 건데. 여행지에서 아침과 밤 등을 구별한다는 것 자체가 시차로 인해 무의미해졌을 테니 그냥 마음껏 즐겨주기로 했다. 앞으로 이 시간이 오지 않을 것처럼. 서울에서는 먹어본 적 없는 타코를 먹었는데 꽤 맛나다. 마지막 야경을 보여주기 위해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산영씨는 차를 몰았다. 피렌체에서의 밤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밤 2시.
우피찌 미술관
다음날. 이거 안 보면 후회될까 싶어 서둘러 가보건만 체력에 구멍이 난 거 같다. 오빠가 먼저 포기한다. ‘나 먼저 기차역에 가 있을게’라고 말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난 그래도 관람한다. 하루가 걸린다는 그 미술관을 한나절만에 나오기 아쉬워 400여 페이지가 넘어 보이는 미술책 두어 권을 샀다. 배낭의 짐은 벌써 15kg를 넘어서고 있었다. 조각상이며 그림들. 천장에 그려지 벽화들을 보자니.. 걸음이 계속 느려지는 이 황홀함. 정말 좋다. 그냥 살면서 구경하고만 싶어 진다. 밀라노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며 산 책들을 읽는다. 눈은 어느새 반 감겨 있다.
한국의 벅적거림
대충 식사를 하고 밀라노 공항으로 향했다. 루프트한자가 파리로 들어갈 때는 한국인이 적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 타보니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나 또한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이라는 게 창피해질 때가 있다. 상대방 배려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하는 안이함. 앞에 앉은 아저씨의 끊임없는 들썩거림에 내 테이블에서 녹차는 쏟아지고, 수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비행기는 관광버스 같다. 한국이 다가옴이 느껴진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진짜 피곤에 몸이 많이 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시간 반 정도의 수면 밖에는 취할 수 없었다. 별의별 행동의 해보아도 잠은 결코 오지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신문의 부고를 제외한 모든 기사를 읽는다. 아~ 기나긴 밤. 뭔가가 부족했던 여행 같다. 준비를 많이 할 수 없어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잠이 오지 않는 지금 또다시 여행이 가고 싶어 진다. 체력 회복이 끝나지도 않은 이 시점에..
여행 중독증